[AI 시대, 새로운 교직 윤리] ③새로운 교육 운동의 문명사적 배경은?

  • 등록 2026.08.11 11: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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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계는, 안으로는 교사들 스스로 자신이 행하는 교육적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스스로 향상해 가고자 하는 용기를 잃어가고 있다. 밖으로는 교육과 교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평가가 낮아지고 있으며, 특히 교육활동 계획은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공격까지 받고 있다. 또한 AI의 진화와 보급은 지식과 문화의 전달자로서 교사와 교직의 가치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AI 시대’ 교육의 가치는 더욱 증대될 것이다. 교육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뢰와 공화의 사회적 기반의 실현을 더욱 넓고 두텁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는 AI를 신뢰할 수 있어야 공생할 수 있다. 자라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체 안에서 존중과 보호를 바탕으로 서로 협력해 함께 가꾸어 가는 공화의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

 

이에 <더에듀>는 ‘AI 시대, 새로운 교육윤리’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 AI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기능과 AI 활용으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살펴보고자 한다.

 


서: 문명은 어떻게 진보하는가?


필자는 문명의 본질을 ‘공동체의 도덕적 질서’에서 찾고자 한다. 문명의 발전이란, 곧 그 공동체의 도덕적 질서가 진화하여 더 큰 차원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운영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이명희, 2025). 이 관점에서 인류문명의 발전 과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고대에는 국가와 공동체가 중심이었다. 이때는 국가(공동체)가 인정하는 ‘정의’나 ‘홍익’과 같은 ‘가치적 질서’가 중요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를 믿는 것이 아니었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얼마나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는가, 즉 탁월함(아레테, Arete)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중심축이 신(神) 또는 자연법으로 이동하였다. 이때는 신이나 형이상학적 질서가 요구하는 ‘사랑’이나 ‘인(仁)’과 같은 ‘덕목적 질서’가 중요해진다. 이것은 고대적 탁월함의 개념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그 목적(telos)을 보다 초월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에는 자유로운 개인과 시장이 사회의 중심이 된다. 초기에는 이 원리가 모든 개인과 민족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즉 여성이나 피지배 민족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점차 자유로운 개인들이 합의하는 사회적 계약과 법적 질서가 대부분의 세계에 자리 잡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고 해서 이전 시대의 구질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치적 질서, 덕목적 질서, 법적 질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존재한다.

 

다만, 인류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새로운 질서는 더 큰 협력을 가능하게 하고 더 큰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결과 21세기의 인류는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지구적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해 왔다.

 


AI 시대는 왜, 문명사적 분기점인가?


AI는 우리에게 엄청난 위기와 가능성을 동시에 가져오고 있다.

 

먼저 위기란,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판단과 행동을 통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인간이 AI에게 종속되거나,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AI가 주는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 AI는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문제해결 능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 질병의 진단과 치료, 기후 위기 대응, 지식의 생산과 확산 등 인류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난제들을 AI와 함께 풀어갈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바로 이 ‘위기와 가능성의 동시성’이 AI 시대를 이전 시대와 다르게 만든다. 산업화가 인간의 근력을 크게 확장하고 대체했다면, 정보화는 인간의 계산능력을 확장했다. 그런데 AI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의 판단·창작·의사결정 영역까지 들어오고 있다.

 

따라서 AI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AI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가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시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는 아직 이 새로운 국면에 걸맞은 도덕적 질서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 근대의 법적 질서로는 부족한가?


근대 사회의 법적 질서는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이 질서 안에서 책임의 단위는 명확했다. 행위하는 개인이 있고, 그 개인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원리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성취였다. 근대의 법치주의와 시민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원칙 덕분이었다. 필자가 첫 번째 칼럼에서 다룬 ‘국민참정권’ 역시 이러한 법적·정치적 질서 위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AI 시대가 되면서 이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글이나 이미지 혹은 판단이 나왔다고 생각해 보자.

 

- 그 결과물은 과연 인간이 만든 것일까? AI가 만든 것일까? 혹은 AI를 설계하고 학습시킨 기업의 알고리즘이 만든 결과일까?

- AI를 교육과정이나 업무에 도입한 기관의 책임도 있을까? 그것을 사용한 개인에게는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을까?

 

이처럼 하나의 결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여러 주체가 동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가 두 번째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교육과정과 평가마저 AI 기업이 설계한 알고리즘에 은밀히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은 오직 행위한 개인에게 있다’는 근대적 원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를 설계한 기업, 그것을 채택한 공동체와 제도, 실제로 그것을 사용한 개인, 그리고 이를 감독해야 했던 기관도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근대적인 법적 질서가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문명의 현실이 기존의 법적 질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빠르게 넘어서고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개인의 책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책임의 범위를 공동체와 관계망까지 확장하는 새로운 원리를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도덕적 질서, ‘연대적 책임’


필자는 AI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도덕적 질서를, ‘연대적 책임’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여기서 ‘연대적 책임’이란 간단히 말하면, 개인뿐만 아니라 AI를 둘러싼 공동체 전체가 그 결과에 대해 함께 책임지는 원리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책임의 단위를 개인에서 공동체로 확장하는 것이다. AI가 만들어 낸 결과와 그 영향에 대해서는 한 사람만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AI를 설계한 사람, 그것을 선택하고 도입한 사람, 실제로 사용한 사람, 이를 감독해야 했던 사람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둘째, 그럼에도 개인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연대적 책임은 모두의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도 책임지지 않게 만드는 논리가 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인의 책임을 공동체적 성찰과 상호 감시의 관계 속에 놓음으로써, 그 책임을 더욱 분명하고 촘촘하게 만드는 원리다.

 

이렇게 보면 연대적 책임은 이전 시대의 질서들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과 중첩되며 새로운 층위를 더하는 것이다.

 

고대의 가치적 질서가 ‘무엇이 옳은가’를, 중세의 덕목적 질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근대의 법적 질서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를 물었다면, 연대적 책임의 질서는 ‘우리는 함께 무엇을 만들었고, 그 결과를 어떻게 함께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첫 번째 칼럼에서 제안한 ‘신(新) 민주화 운동’과 ‘신뢰와 공화’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책임지는 것. 바로 이것이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시민의식이기 때문이다.

 


결: 새로운 교육 운동의 문명사적 필연성


문명은 도덕적 질서의 진화를 통해 더 큰 공동체를 만들어왔다. 고대의 아레테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발전시켰다. 중세의 덕목은 신앙을 중심으로 한 ‘지역세계’를 만들었다. 근대의 사회적 계약과 법적 질서는 국민국가와 시민사회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연대적 책임의 질서’는 인간과 AI가 함께 구성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예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이 남는다.

 

새로운 도덕 질서는 어떻게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가?

 

답은 교육이다. 어떤 도덕적 질서도 저절로 사회에 정착하지 않는다. 새로운 질서는 다음 세대가 그것을 배우고, 연습하고, 실제 삶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사회의 일부가 된다.​​ ​​​​​근대의 법적 질서 역시 시민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삶 속에 뿌리를 내렸다. AI 시대의 연대적 책임도 그것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새로운 교육 운동 없이는 공허한 선언에 머물고 말 것이다.

 

필자가 두 번째 칼럼에서 제기한 교육의 목적론·존재론·관계론의 재정립은 단순한 교육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도덕적 질서를 다음 세대의 생각과 행동, 몸과 마음에 익히게 하는 문명사적 과제​다. 바로 이것이 필자가 첫 번째 칼럼에서 제안한 ‘신(新) 민주화 운동’이 반드시 ‘새로운 교육 운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AI 시대의 문명사적 전환은 새로운 기술을 갖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AI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인간다움을 지키고, 서로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AI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교육 운동이며,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참고 문헌】 

이명희(2025).‘AI시대’로부터 한국 문명사의 새로운 구상―‘문명사의 시대 구분’과 ‘원(原)한국 문명의 제기’를 중심으로―. 세계 역사와 문화 연구, 77: 35-82.

◆ 이명희 = 중등학교에서 역사 교사(8년)를 하다, 일본 문부성 초청장학생으로 파견돼 일본 筑波大学(츠쿠바대학) 대학원에서 6년간 유학하였다. 귀국 후 1998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개원 시 책임연구원과 부연구위원으로서 참여해 주로 전국적인 학업성취도 평가와 교육과정 개발을 연계한 연구를 했다. 2002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의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공주대학교 부설 글로벌인공지능융합연구소의 수석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한국공동체문화연구소의 작은 공부 모임 회원으로서 AI와 인간의 공생(共生)·공진(共進)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한편, 한국문명사 연구에도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 연재 예정

○ 1~4회(도입): 신 민주화 운동과 새로운 교육 운동의 철학적 및 문명사적 배경과 교육적 의의 그리고 방향

○ 5~14회(전개): AI 시대의 인간상, 새로운 교직 윤리의 구체적 항목과 구축 방안

○ 15~20회(심화): 교육 현장에서의 신뢰 구축과 소수자 포용을 위한 실천 방안

○ 21~26회(결론): AI와 공생하는 새로운 학교 공동체의 청사진과 사회적 변화

이명희 공주대 부설 글로벌인공지능융합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공주대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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