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6 (토)

  • 맑음강릉 25.4℃
  • 구름많음서울 27.0℃
  • 맑음울릉도 23.2℃
  • 구름많음수원 27.8℃
  • 맑음청주 29.6℃
  • 맑음대전 28.8℃
  • 구름많음안동 27.5℃
  • 맑음포항 23.6℃
  • 맑음군산 28.7℃
  • 맑음대구 28.0℃
  • 맑음전주 30.3℃
  • 맑음울산 23.7℃
  • 구름많음창원 28.0℃
  • 맑음광주 29.4℃
  • 구름많음부산 26.8℃
  • 맑음목포 27.7℃
  • 맑음고창 29.5℃
  • 구름많음제주 26.1℃
  • 구름많음강화 24.1℃
  • 맑음보은 26.7℃
  • 맑음천안 28.2℃
  • 맑음금산 29.3℃
  • 맑음김해시 26.9℃
  • 구름많음강진군 28.2℃
  • 맑음해남 27.6℃
  • 구름많음광양시 26.8℃
  • 맑음경주시 26.5℃
  • 구름많음거제 24.5℃
기상청 제공

[송미나의 THE교육] '책임에서 면책으로'...학교가 먼저 무너진 방식을 따라가는 국가

 

더에듀 |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단순히 ‘권리구제 확대’나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렀다.

 

오히려 교육 현장을 오래 경험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국가 시스템 전체가 학교가 무너져 온 방식과 놀라울 만큼 닮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강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변모하는 학교의 기능...교육기관에서 분쟁 처리 기관으로


학교는 원래 교육기관이었다.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전문직이었다. 생활지도는 교육적 판단의 영역이었고, 갈등 해결 역시 교육적 맥락 안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과거의 학교 역시 완전하지 않았다. 폐쇄성과 권한 남용의 문제도 존재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통제와 권리구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학교는 점점 교육기관이 아니라 ‘분쟁 처리 기관’처럼 재설계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학교의 기능은 교육을 넘어 돌봄과 복지까지 함께 수행하는 생활 행정기관으로 확장됐다. 교육활동은 생활지도 분쟁으로, 생활지도는 민원으로, 민원은 행정 절차로, 절차는 다시 준사법 구조로 변해갔다. 교사의 판단은 교육적 전문성보다 “절차적으로 안전한가”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학교는 교육의 공간이라기보다 언제든 감사와 소송, 민원으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관리 조직처럼 변해갔다.

 

그 과정에서 사용된 언어들은 학생 인권, 피해자 보호, 참여 확대, 민주적 절차, 권리구제 강화, 투명성처럼 대부분 매우 우아하고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가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 제도 속에서 작동한 방식이다.

 

기준과 원칙을 정교하게 세우며 질적으로 성숙하는 방향이 아니라, 통제와 절차를 끊임없이 추가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학교는 ‘모든 판단이 외부 심사의 대상이 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재심사 구조와 불신, ‘수렁’에 빠진 국가 시스템


그리고 지금 국가 시스템 전체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검찰은 통제돼야 한다. 법원 역시 비판받을 수 있다. 헌법기관 또한 견제받아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 통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지금의 흐름이 단순한 권력 견제를 넘어, 국가 시스템 전체를 끝없는 재심사 구조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데 있다.

 

형사사법은 점점 다층적 재심사 구조로 확장되고, 그 사법은 다시 행정화되며, 행정은 다시 정치화되고 있다. 원래는 형사절차 내부에서 종결되던 문제들이 헌법소원으로 이동하고, 다시 행정소송으로 확장된다. 정치권은 새로운 특별법과 예외 절차를 통해 그 경계를 계속 재편한다. 그 과정에서 국가 판단의 최종성은 점점 약해진다.

 

결국 가장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국가는 어디에서 판단을 끝낼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법률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시스템의 안정성과 직결된 문제다. 모든 결정이 끝없이 재심사되고, 모든 기관이 서로를 불신하며, 모든 판단이 다시 정치적 논쟁 속으로 들어간다면 국가는 결국 ‘결정하지 못하는 체계’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왜 한국 사회가 특히 이런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사회 전체에 확산된 깊은 전문가 불신이 존재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폐쇄적 권력 운영에 대한 반작용 속에서, 이제는 교사도 믿지 못하고, 의사도 믿지 못하고, 판사도 믿지 못하고, 검찰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문제는 불신 자체가 아니라, 그 불신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원칙과 책임을 정교하게 강화하는 대신, 한국 사회는 점점 ‘절차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교사를 믿지 못하니 생활지도를 절차화하고, 검찰을 믿지 못하니 수사 절차를 다층화하며, 법원을 믿지 못하니 또 다른 심사 구조를 만든다.

 

그러나 절차는 늘어나는데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기관이 서로를 감시하는 구조만 강화된다.

 

여기에 정치의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정치권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갈등의 최종 판단을 사법기관으로 넘기는 방식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정치가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하기보다, 특별법과 특검, 헌법소원과 사법 절차 뒤로 물러서는 구조가 반복된다. 정치적 책임의 문제를 법적 절차의 문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정치는 점점 사법에 의존하고, 사법은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끌려 들어간다. 원래 법원은 법을 적용하는 기관이어야 하지만, 이제는 정치적 갈등의 최종 해결자 역할까지 요구받는다. 그러자 다시 법원의 판단조차 불신받으며 또 다른 재심사 구조가 요구된다. 국가 시스템 전체가 끝없는 상호 불신의 순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위축된 학교와 사법제도, 면책에만 급급


행정 역시 비슷하다. 과거 행정은 책임을 지는 대신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권한보다 ‘면책 가능한 절차’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학교는 교육보다 기록을 남기고, 기관은 판단보다 매뉴얼을 만들며, 공무원은 적극적 결정보다 절차적 안전을 우선하게 된다. 책임지는 판단보다 ‘문제 발생 시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구조’가 합리적 선택이 되는 것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변화가 교육 영역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의 기능 해체와 최근 사법개혁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법원의 기능 재편은 놀라울 만큼 닮았다.

 

학교는 교육기관이었지만 점점 분쟁 처리 기관처럼 변해갔고, 법원 역시 법적 판단 기관을 넘어 끝없는 정치·행정 갈등의 조정장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교사의 본질적 직무였던 교수·학습 전문성이 행정과 생활지도 절차, 민원 대응 중심 구조 속에서 약화된 것처럼, 검사와 법원의 본질적 기능 역시 다층적 절차와 정치적 재심사 구조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문제는 다루는 영역의 차이가 아니다. 교육이든 사법이든, 같은 시각으로 설계된 제도는 결국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전문적 판단보다 외부 통제를 우선하고 책임 있는 결정보다 절차적 안전을 중시하며 공적 기준보다 끝없는 이의제기 구조를 확대하는 순간, 제도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도 결과는 놀라울 만큼 닮아간다.

 

학교와 법원, 교사와 판·검사에게 동시에 나타나는 위축과 방어, 기록과 면책 중심의 구조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사유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공교육 기능 약화, 불투명·불평등한 경쟁 불러일으켜


교육 현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이미 그 결과를 먼저 경험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증가하고, 문해력 저하는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으며, 학교폭력 증가와 교육활동 민원화, 교권 침해는 해마다 심화하고 있다. 교육활동은 점점 사법적 분쟁 구조 속으로 들어가고 있지만, 정작 학생들의 학습 성취와 공동체 안정성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더 역설적인 것은 공교육의 기능이 약화하는 동안,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사상 최대 규모로 팽창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조 원 규모의 사교육비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동시에 기초학력 미달과 문해력 저하 역시 계속 심화되고 있다. 경쟁과 낙인을 줄이겠다며 공교육의 평가와 기준을 약화시켰지만, 실제로는 경쟁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장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공적 기준은 약화되었고, 그 빈자리를 사교육 시장과 불안 산업이 채우기 시작했다. 학생 지도는 생활지도로 세분화되었고, 생활지도는 다시 절차화되었다. 절차는 민원과 소송으로 연결되었고,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재정의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남은 것은 위축된 판단과 방어적 행동이었다. 적극적인 교육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평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교육은 오랫동안 서열과 낙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평가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등급을 줄이고, 기준을 흐리고, 경쟁을 완화하면 교육이 더 평등해질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실제로 사라진 것은 평가 자체가 아니었다. 평가의 위치만 이동했다.

 

공교육이 학생의 성취 수준을 명확히 진단하고 피드백하는 기능을 약화하자, 그 빈자리를 사교육이 채웠다. 공교육 안에서 드러나던 학습 수준의 차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학원과 컨설팅 시장으로 이전됐다. 그 결과 사회 전체의 경쟁은 오히려 더 불투명하고 더 불평등한 방식으로 강화됐다. 기준을 없애면 경쟁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기준이 사교육 시장으로 넘어간 것이다.

 

학교는 책임에서 물러났지만,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이것은 단순한 평가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공적 기준을 스스로 포기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준없는 중립이 불러온 책임 회피와 상호 불신


지금 형사사법과 헌정체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원래 민주주의는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절차를 만든다. 그러나 절차가 무한 증식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권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결정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모든 판단은 다시 다툼의 대상이 되고, 모든 기관은 상호 불신 속에서 움직이며, 정치권은 그 틈을 이용해 새로운 예외 절차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대부분 ‘이상적인 언어’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기준을 세우는 것은 권위주의로 비판되고, 원칙을 유지하는 것은 경직성으로 공격받는다. 대신 다양성, 유연성, 참여, 권리라는 이름 아래 제도는 끝없이 팽창한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서 무엇이 국가 운영의 최종 기준인지에 대한 합의는 점점 약해진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립’이라는 언어 역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립은 원래 공정한 기준을 지키기 위한 개념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판단 자체를 회피하는 언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책임 있는 판단을 유보하며, 갈등을 피하기 위해 모든 입장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기준 없는 중립은 결국 공적 기준의 해체로 이어진다.

 

국가 시스템 전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권리구제는 확대되는데 국가의 최종 판단 능력은 약화된다. 절차는 증가하는데 공동체의 신뢰는 줄어든다. 통제 장치는 늘어나는데 국민은 더 큰 혼란을 느낀다.

 

사실 이런 문제는 반드시 법률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은 원래 국민 전체가 이해 가능한 상식 위에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사건을 왜 끝없이 다시 판단하는가’, ‘왜 국가의 판단 기준은 점점 일관성을 잃어가는가’, ‘왜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절차만 늘어나는가’라는 질문은 법률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문제의식이다.

 


학교와 사회에 필요한 것은 '기준과 원칙 하에서의 책임 있는 판단'


국가는 복잡한 제도 위에 존재하지만, 그 제도를 떠받치는 마지막 기반은 결국 국민의 상식적 신뢰다. 그런데 지금처럼 기준과 원칙보다 끝없는 절차 확장과 예외 구조가 우선되기 시작하면, 국민은 점점 국가 시스템을 책임 있게 판단하는 체계가 아니라, 끝없이 다투는 체계로 인식하게 된다.

 

학교는 이미 그 변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먼저 보여준 공간이다. 그래서 교육자의 눈에는 지금 국가 시스템 전체에서 벌어지는 변화가 낯설지 않다. 오히려 학교가 무너져 온 방식과 너무 닮아 있어서 두렵다. 기준과 원칙이 약해질수록 절차는 늘어나고, 책임 있는 판단이 사라질수록 사회는 더 많은 재심사와 예외 구조를 요구하게 된다.

 

끝없이 다투는 체계는 공동체를 안정시키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절차의 무한한 확대가 아니라, 어떤 기준과 원칙 위에서 국가가 책임 있게 판단하고, 그 판단을 어디에서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배너
배너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9명
81%
싫어요
2명
19%

총 11명 참여


배너
2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