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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 철학] 타인의 생각, '아는 게 답일까? 모르는 게 약일까?'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듀이는 민주주의를 삶의 양식으로 바라본다. 정치 체제나 제도가 아니라, 나와 다른 다양한 타인과 어울리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 그 자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다양성’과 ‘소통’이다.

 

누군가에겐 이 단어들이 너무나 진부하고 당연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두 개념이 동시에 구현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나와 생각이나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진심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와 다른 정치적·종교적·윤리적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고 환대하기보다 배제하고 파괴하려는 충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런 아픈 경험이 있다. 수년 전, 청소년 의회 관련 조례를 만들기 위해 교육청과 시의회 등을 동분서주한 적이 있었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확보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는 믿음으로 진심을 다했다.

 

그러나 곧 청소년 의회를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심각한 모욕과 상처를 받았다. 밤낮없이 학교로 민원 전화가 쏟아졌고, 문자로는 차마 옮기기 어려운 욕설이 날아들었다. 그 핵심은 ‘아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도무지 그들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청소년이 발표하는 공청회 자리에는 욕설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온전한 성인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깊은 회의감이 몰려왔다. 결국 몇 달에 걸쳐 야심 차게 준비한 청소년 의회 조례는 끝내 무산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와 다른 이념과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들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실러의 말처럼, 사람이 사람을 아무리 깊이 통찰하고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려 해도, 언제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은 남아 있다는 말이 새삼 수긍하게 됐다.

 

 

이는 인간이 가진 실존적 딜레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나와 다른 이념과 가치를 가진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소통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레비나스가 말했듯, 타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무한이기도 하다. 무한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는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가 살아온 삶의 맥락 속에서 가치와 이념, 생각과 감정을 헤아린다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걷는 일과 같다. 그렇기에 레비나스는 타인을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적 환대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와 전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을 온전히 환대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오늘 교실에서 아이들과 그림책 ‘노란 샌들 한 짝’을 함께 읽었다.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었다. 폭력과 전쟁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 싶어 골랐다. 그림책을 읽고 난 아이들은 전쟁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성이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지성: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사: 왜 그런 질문을 했어?

지성: 저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어요. 만약 미리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싸움이나 문제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전쟁이나 폭력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또 불편할 것 같기도 해요. 남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타인의 생각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갈등이나 폭력이 줄어들까?’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특히 지성이가 마지막에 한 말이 인상 깊었다.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미리 안다면 과연 도움이 될까?’

 

이 질문은 아이들의 생각을 자극하는 촉매가 되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저마다 토론을 이어갔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토론이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순간이 있다. 절차가 수업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호기심이 수업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적 탐구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주윤: 지성이 말이 맞아요. 저는 불편할 것 같아요.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잖아요.

민성: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교사: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호감을 사기도 더 쉬워지지 않을까?

아름: 맞아요. 아는 게 힘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예성: 돈은 많이 벌 수 있겠다.

아름: 왜?

예성: 고민 상담이나 철학관 같은 거 열면 대박 날 것 같은데!

준이: 맞네!!

주윤: 그래도 사람들은 저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잖아. 그걸 알면 오히려 더 관계가 불편해질 거야.

 

아이들은 타인의 생각을 알게 되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주윤이가 말한 ‘모르는 게 약’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나는 토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반례를 제안했다. 타인의 생각을 미리 안다면, 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거나 취향을 더 쉽게 고려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아름이는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로 반응했다. 하지만 주윤이는 누구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더 불편해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교사: 왜 사람들은 누구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주윤: 좋은 생각만 하고 살지는 않잖아요. 나쁜 생각도 하죠. 물론 그걸 드러내지는 않지만요.

아름: 생각과 겉모습이 다른 건 나쁜 거 아냐?

주윤: 그게 왜 나쁜 거야? 그럴 수도 있지 뭐.

민성: 맞아. 드러내지만 않으면 되지.

준이: 그건 솔직하지 못한 거잖아요. 속으로는 나쁘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교사: 솔직한 게 더 좋을까?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것도 필요할까?

주윤: 저는 솔직함이 항상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잖아요.

수진: 공부를 못하는 친구한테 ‘너는 앞으로도 계속 공부를 못할 거야’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요. 응원을 해 줘야죠.

예성: 우와… 그건 진짜 상처다.

민성: 필터링 없이 솔직해지면 안 될 것 같아요.

 

주윤이는 누구나 좋은 생각만 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마도 인간의 사회적 특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듯, 준이는 생각과 행동이 다른 것이 나쁜 것 아니냐고 반론도 제기했다.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쟁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솔직함이 항상 좋은 것일까?’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생각도 한다. 수진이는 이를 “공부를 못하는 친구한테 너는 앞으로도 공부를 계속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에요”라는 말로 표현했고, 그 말이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와닿은 것 같았다.

 

나는 이 지점에서 '나쁜 생각을 품는 것도 잘못인가?'라는 물음으로 토론을 더 깊이 끌고 가고 싶었다.

 

중세의 한 신학자는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것도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남이 알지 못하더라도 신과 자신에 대해 죄를 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지만, 논의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타이밍을 놓쳤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지성: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건 필터링 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는 뜻이네요.

주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부정적인 생각까지 다 알 필요가 있을까요?

아름: 솔직히 인생이 더 불행해질 것 같아요.

준이: 그냥 각자의 솔직한 생각은 자기만 아는 걸로 해야겠네요.

민성: 그런데 누구나 남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주윤: 인간관계라는 게 그런 거 아닐까? 적당히 서로를 배려해야 하는 거잖아.

수진: 그리고 누군가 내 생각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저는 그 사람 못 만날 것 같아요.

아름: 맞아. 부끄러울 것 같아. 내 비밀까지 다 들켜버린 기분...

 

 

생각은 신체와 달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연적 질서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온전히 주관의 영역이다. 인간은 신체와 정신을 동시에 가진 존재다. 이를 두고 칸트는 자연계와 예지계라는 두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외모, 말투, 옷차림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 큰 스트레스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각의 영역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종종 그 안에서 위안을 얻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름이는 “남이 내 생각을 알 수 있다면 인생이 불행해질 거”라고 했다. 온전한 나만의 세계마저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때로는 감추기도 하고,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주윤이는 이것이 ‘상대방을 향한 배려’라고 보았다.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없고,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내가 이 질문을 던지자, 유진이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유진: 남을 다 알 필요는 없어요. 다 알 수도 없고요.

승우: 친구를 만날 때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도 중요하잖아요.

교사: 왜 그렇게 생각해?

유진: 그래야 재미있죠. 처음부터 다 알면 재미가 없잖아요.

수진: 상대방의 몰랐던 면도 알아가고, 고민도 나누면서 관계가 깊어지는 것 같아요.

아름: 그래도 계속 궁금하긴 해요. 쟤는 무슨 생각을 할까?

교사: 유진이는 그 궁금함이 중요하다는 거니?

유진: 맞아요. 궁금함이 있어야 계속 만나는 재미가 있죠.

예성: 맞네.

교사: 그럼 지금부터 서로에게 궁금한 점 나눠볼까?

주윤: 저부터 할게요. 아름이한테요.

아름: 나?

주윤: 너 어젯밤에 문자 주고받던 사람 누구야?

아름: 쟤 왜 저래?

(다 함께 웃음이 터진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온전히 이해해야만 관계가 성숙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유진이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을 잘 모르기에 더 깊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탐구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모든 탐구가 궁금함과 호기심에서 시작하듯, 인간관계도 서로에 대한 궁금함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역시 하나의 탐구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관계 맺고, 타인과 관계 맺는 모든 과정이 탐구인 것이다.

 

유진이는 그 탐구의 과정 자체를 재미라고 표현했다. 맞다.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깊이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고 재미다. 타인은 우리가 탐구해야 할 무한한 우주이자 미지의 세계다. 그 과정에서 시련과 갈등은 당연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서도 흥미와 재미를 잃지 않고 관계를 더욱 탄탄히 이어가려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 그러한 마음을 아이들의 생각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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