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 현장은 기이하고도 서글픈 분열의 장이다. 한쪽에는 교실 안 ‘교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숫자와 서류, 그리고 ‘승진 점수’에 갇힌 ‘교육전문직’이 있다. 그 중간지대에는 수업과 학생 대면은 최소화하면서 각종 승진 점수와 성과금은 극대화하려는 소수의 ‘교육전문직 예비 교사’들이 존재한다.
이 글은 <더에듀>에 연재한 여섯 편의 칼럼을 종합해 학교 인력구조의 근본적인 재설계 방향을 제시하는 종합 제언이다.
핵심 기조는 세 가지다.
첫째, 교과지도교사를 대폭 확충하는 것. 둘째, 비교과 생활지도교사를 전면 배치하는 것. 셋째, 교사와 교육전문직 사이의 순환근무제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현행 학교 인력구조의 구조적 병폐
현재 대한민국 초·중등 교육기관의 인력 구조는 심각한 왜곡을 보인다. 영국의 경우 평교사 비율은 46.5%이지만, 교사 보조(TA)·생활지도 전문가·상담사 등 학생 지원 인력이 전체의 40.2%를 차지하며 교실 최전선에 상주한다.
반면 대한민국은 그 인력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교육전문직’이라는 이름의 행정가들만 꾸준히 늘려왔다. 일본 역시 우리와 유사한 직군 구조를 갖고 있으나, 전문직(지도주임)의 정기적 현장 복귀와 유연한 순환을 통해 ‘행정 동맥경화’를 방지하고 있다. 대한민국만이 교육전문직을 영구 고착된 별개 직군으로 운영하는 이례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전문직은 장학사나 연구사로, 교감이나 교장으로, 더 높은 교육청 고위 관료로 전직한 이후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직군에 영구히 머무른다. 이것은 100%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행정이 고정적인 직업이 되는 순간, 교육전문직은 현장을 지원하는 조력자가 아닌 지배자로 변질된다. 현장과 유리된 지 오래된 이들의 정책은 아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온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장 교사들을 질식시키는 차가운 행정 명령으로 작동할 뿐이다.
현행 구조에서 교육전문직은 교사에서 교감으로, 장학사에서 교장·장학관으로 이어지는 일방향적 승진 코스의 유일한 경로로 기능한다. 이 때문에 일부 교사들은 교육의 본질인 아이와의 마주함보다 승진 점수 계산에 생명력을 소진한다. 교육전문직 점수가 인정되는 수업연구대회 출품 수업에만 집중하거나, 교육청 사업과 각종 포상·보직 업무로 가산점을 쌓는 데 매몰된다.
교육전문직은 학교 운영을 최종 결정하고 책임지며, 교무 업무의 중간 관리와 실무를 조정하고 소속 교직원의 업무분장 및 근무 성적 평정을 주관하는 인사권을 행사한다. 교사는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수동적 지위에 있기 때문에, 주당 20시간 수업이나 담임 업무와 같은 지시를 거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권력 비대칭이 수업 노동의 불평등한 배분을 구조화하고 있다.
2001년 도입된 교원 성과상여금 제도는 지난 25년간 학교 현장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과 불합리의 상징이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평가 지표의 왜곡에 있다. 승진을 위해 교육청 활동·각종 포상·보직 업무 수행에 유리하게 가산점 점수표가 짜인 반면, 과다한 수업 시수와 학급 담임 업무 등 교육 본연의 활동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가 부여된다.
구체적 수치를 보면 그 불합리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주당 20시간 수업 교사와 10시간 수업 교사는 39주 기준으로 연간 390시간의 수업 노동 차이가 발생한다. 최저시급(1만 320원)으로 계산하더라도 400만 원이 넘는 노동을 추가로 수행하면서도, 오히려 더 많이 수업하는 교사가 성과금에서 연간 100만~300만 원을 적게 받는 역설적 구조다.
교사 방과후 수업 수당 기준(시간당 3~5만 원)으로 환산하면 1500만~3500만 원 규모의 수업 노동을 하고도 성과금을 더 적게 받는 부당한 차별이 발생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반대 방향의 왜곡이다. 승진 코스를 밟는 교사들은 수업을 적게 하면서도 최고 등급의 성과금을 수령하여 연간 1500만 원 안팎의 부당 이익을 누리는 구조가 구조적으로 방치되고 있다. 이들은 결국 수업도 학생 지도도 최소화하는 ‘교육전문직군’으로 영구히 이동함으로써, 구조적 특권을 반복해서 재생산한다.
교원 전문성 억압: 보신행정과 문서 행정의 민낯
교육전문직의 고정 직군화가 낳는 가장 치명적인 병폐는 ‘보신행정’이다.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학생을 지도하지 않는 전문직은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보신 연구로 권위를 유지한다. 실적을 부풀리고, 고통스러워 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규정이라는 무덤에 매장한다.
그들이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며 익힌 ‘효율성’은 전문직이 된 후 ‘보신의 전문성’으로 진화하며, 이것은 교육계 전체에 동맥경화를 초래하는 치명적인 질병이 된다.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그 전형적 사례다. 학교 현장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사불란하게 강행된 이 정책은 현장 교사들의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현장과 유리된 채 보신에 집착하는 행정이 얼마나 큰 교육적 낭비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보신행정의 실체는 3월 교무실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3월의 교무실은 전쟁터다. 그런데 그 전쟁의 무기는 교재나 수업 자료가 아닌 한글 문서다. 매년 반복되는 교수학습 및 평가 운영 계획서 작성이 올해도 어김없이 교사들을 덮쳤다. 달라진 것은 교육의 본질이 아니라, 문서 내용의 순서와 행정 명칭뿐이다.
최근 3년 동안의 문서를 나란히 펼치면 민낯이 드러난다. 평가 운영 계획서의 뼈대는 동일하다. 평가 유형, 반영 비율, 횟수·영역, 평가 방법. 수행평가 세부 계획의 성취 기준, 수행 과제, 흐름(단계), 평가요소(배점). 이 구조는 3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세부 명칭뿐이다.
지필평가가 정기시험으로, 1차(중간고사)가 중간시험으로, 2차(기말고사)가 기말시험으로 바뀌었다. 2026년 양식에는 성취도 열 하나가 추가됐고, 수행과제는 수행과제 흐름(단계)로, AI활용 항목이 신설됐다.
이 변경을 반영하기 위해 교사는 지난해 작성한 문서를 열고, 달라진 항목을 찾아내고, 수정하고, 교내 검토를 거쳐 다시 제출한다. ‘교수학습-평가 방법’은 한 학기 전 과정을 주간 단위로 정리하는 표인데, 방대한 한 학기 분량의 셀 하나하나에서 바뀐 명칭을 찾아 수정해야 한다.
가르치는 단원도, 성취기준도, 평가의 방향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행정 언어만 교체된 서류를 새로 작성하는 일에 해마다 3월 한 달과 9월 한 달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매년 두 차례 십여 쪽씩 작성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설상가상으로 이 업무를 담당하는 연구부장과 담당 교사는 122쪽에 달하는 문서를 검토하고, 수정 지시하고, 재검토하고, 재수정을 지시하는 과정을 한 달 내내 반복한다. 연구부장과 담당교사 역시 교과수업을 지도하는 교사다.
학교에서 교과수업 지도를 하는 교사들 모두가 최소 한 달 동안 서로를 괴롭히며 고생한다. 2학기 초에도 똑같은 소모전이 반복된다. 내가 30년이 넘는 교직 생활 동안 매년 목격해 온 서글픈 반복이다.
교육청은 서식 변경을 통해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치를 꾀한다고 하지만, 현장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지필평가를 정기시험으로 바꾼다고 해서 시험의 질이 높아지거나, 수행과제 흐름(단계)이라는 칸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교사가 과정 중심 평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지는 않는다.
방대한 계획서는 ‘잘 관리되고 있다’는 행정적 착시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두꺼운 계획서가 곧 좋은 수업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국 교육청은 서식을 통해 교사의 평가 행위를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 수업에서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그 서류 한 장으로 담기지 않는다.
“행정에 쓴 시간은 수업에 쓰지 못한 시간입니다.”
이 짧은 문장은 현재 우리 교육 행정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를 묻고 있다. 중학교 수학 교사 한 명이 한 학급을 담임하며 20명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일곱 학급 140명이 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평가하는 와중에, 3월이면 수업 연구·학생 피드백·학부모 상담·생활교육·각종 행사 준비가 일상처럼 밀려든다. 그 한복판에 평가 계획서 재작성이 놓여 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말하면서 동시에 반복적인 문서 편집을 부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교사를 서류의 늪에서 건져내 학생 곁으로 돌려보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 혁신의 시작이다.
교원 전문성 억압은 연수 체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교육부 교원양성연수과는 방송통신대학교(방통대) 학위 과정의 수강 학점을 직무연수 실적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직무연수는 교육감이 연수기관으로 지정하거나 승인한 기관에서 실시하는 것이며, 대학의 학위 과정은 학위 취득과 자기계발의 내용이라는 것이 그 논거다.
이는 형식주의적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방통대에서 1년에 12과목을 이수하면 온라인 강의 시청만 180시간이며, 출석 수업·과제·시험 준비를 포함하면 연간 230시간이 넘는다. 이는 일반적 직무연수 만점 기준(연간 60시간 내외)의 약 4배에 달하는 학습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지정한 ‘연수원’ 간판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 1시간도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교사가 통계학을 공부해 데이터 문해력을 키우고, 영문학을 공부해 원서 독해 능력을 높이는 행위가 어떻게 단순한 ‘자기계발’로 치부될 수 있는가? 이는 교과 지도 역량과 직결되는 핵심적 직무 수행의 연장선이다.
내용의 전문성보다 기관이 연수원인지 여부를 우선시하는 현행 제도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교사들을 깊이 있는 탐구보다 쉬운 ‘점수 따기’식 단기 연수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하고, 교육의 질적 향상을 오히려 가로막는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