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1867년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가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매입했을 당시, 미국의 언론과 정치권은 그를 향해 ‘미친 짓’이라며 포화를 퍼부었다.
쓸모없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를 비싼 돈을 주고 샀다는 비아냥과 함께, 알래스카는 ‘슈어드의 얼음상자(Seward's Icebox)’ 혹은 ‘존슨 대통령의 북극곰 정원’이라는 모욕적인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오늘날 그 누구도 알래스카 매입을 실패한 거래라 부르지 않는다. 무한한 천연자원과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가치를 내다본 슈어드의 선견지명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행정적 결단이자 미래를 향한 투자의 모범으로 칭송받고 있다.
눈앞의 손익에만 매몰된 대중과 정치인들의 무지한 비난 속에서도 미래 세대를 바라본 한 지도자의 안목이 국가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
이 역사적 사건은 오늘날 대한민국 교육감 후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교육감 선거판의 풍경은 160년 전 슈어드를 비웃던 무지한 선동가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대한민국 교육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설계해야 할 교육감 후보들이 국가의 미래나 교육의 본질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당선이라는 단기적 이익만을 위해 눈먼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며 학표(學票)를 구걸한다.
경기도에서는 중1 학생 전원에게 100만 원씩, 연간 1300억 원이 넘는 정체불명의 ‘펀드 공약’이 등장했고, 고3에게 운전면허 비용을 대주겠다는 선심성 약속까지 서슴지 않는다.
서울 역시 대중 교통비 전액 지원과 사교육비 대납형 공약으로 유권자를 유혹하고 있으며, 인천과 부산 등 다른 시·도들 또한 입학준비금이나 교육 바우처, 사회진출 지원금이라는 당의정(糖衣錠)으로 포장하여 매년 수십만 원에서 100만 원의 현금을 직접 살포하겠다고 앞다투어 외치고 있다.
이러한 현금성 공약 남발의 이면에는 심각한 재정 구조의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 수는 2016년 596만 명에서 현재 492만 명 선으로 급감했다. 반면, 법적으로 배정 비율이 보장된 교육청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오히려 43조 원에서 76조 원으로 무려 76% 이상 기형적으로 폭등했다. 내국세의 20.79%가 자동으로 배정되는 법적 허점 때문이다.
돈이 넘쳐나니 교육의 질적 향상이나 미래 교육 인프라를 고민하는 대신, 이 눈먼 돈으로 천박한 포퓰리즘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지도자의 안목 부재가 가져온 재정적 타락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선출직 교육감의 포퓰리즘으로 학부모들의 무상에 대한 공짜의 역치(閾値)가 한껏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경로의존성’이 심화해 ‘개미지옥’을 향하는 누란(累卵)의 위기다. 주인 없는 눈먼 돈을 먼저 쓰겠다는 ‘공유지의 비극’, 그리고 표를 사기 위한 재정 사회주의의 폭주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교육 현장을 보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수학 교과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2019년 9.0%에서 최근 수년간 두 자릿수인 15.0% 안팎까지 치솟았으며, 영어 역시 10%에 육박하는 등 ‘수포자’와 ‘영포자’로 대변되는 학력 저하 현상이 지속되고 있음을 통계가 증명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읍면 지역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대도시보다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나는 등 지역 간 학력 격차 역시 더욱 심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초학력 보장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공교육 책무다. 교육의 수장들이 학교 현장의 내실을 기하고 무너진 학력을 복원하기 위한 책임 경영에는 행정력을 집중하지 않고, 오직 정치적 구호와 보여주기식 현금 살포 행사에만 몰두한 필연적인 결과가 이 처참한 통계표다.
‘슈어드의 얼음상자’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명확하다. 눈앞의 이익과 대중의 환호에만 눈이 멀어 미래의 원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지도자는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교육감은 탁월한 지식 편집가요, 전방위적 지식 경영자여야 한다. 한데 한국의 태자당 같은 일수거사(一水去士) 인물이 직역을 이동하며 교육 권력을 탐하는 행태는 유권자들이 표로 응징해 퇴출해야 한다.
지금 지구촌의 지식 생태계는 AI라는 디지털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서로 다른 전문 지식과 상상력이 만나는 융합과 컨버전스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고 요체이며 백미(白眉)다.
진영 논리를 떠나, 대한민국 교육판을 송두리째 바꿀 젊고 신선한 인물의 객토(客土)가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