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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가영의 초점] 김병우 전 충북교육감의 언어 ‘재단(裁斷)’

 

더에듀 | 전직 교육감의 언어라고 믿기 어려웠다.

 

‘선거철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공천관리위원장이라는 정치적 위치의 연장선인 걸까. 교육과 정치의 분리가 어려운 것일까.’

 

수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가 시리즈로 내놓는 글을 볼 때마다 팩트에 어긋나는 것, 논리가 맞지 않는 것, 성급한 일반화, 편향적인 시각, 이분법적인 표현 등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물론 이것 역시 개인의 의견일 수 있다. 예민한 시기에 SNS에서 공개적으로 갑론을박을 하는 것이 피로감을 줄 수 있어 몇 번이나 댓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번 글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김성근, 윤건영 동갑내기의 다른 길, 다른 삶’이라는 글에서 “윤건영이 서울대 가려고 재수, 삼수할 때 김성근은 이미 서울대 운동권 학생이었다”라고 적었다.

 

이어 “윤건영이 도서관만 드나들며 죽어라 공부를 해서 평탄하게 교사~교수직까지 오르는 동안 김성근은 운동권 전력으로 교사 발령도 늦어지고, 그 뒤에도 구속, 해직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나아가 내 눈을 의심하게 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윤건영이 야심 차게 무엇이 되는 길을 좇아왔다면 김성근은 어렵지만 의롭게 사는 길을 추구해 왔다.”

 

전직 교육감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삶을 이렇게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누구도 주제넘게 남의 삶 자체를 재단할 수는 없다. 더욱이 “재수·삼수”, “야심 차게”, “개인적 야망” 같은 표현은 사실상 인신 프레임에 가깝다. 글 전체는 김성곤 후보를 높이는 동시에 윤건영 교육감을 권력지향형 인간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교육자의 언어란 무엇인가. 적어도 내가 아는 교육자의 언어는 사람을 줄 세우지 말아야 하며,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언어다. 따라서 교육자의 언어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선거철일수록 자극적인 프레임이나 단정적인 표현과는 거리를 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충북 교육계 수장이었던 사람의 언어가 더욱 유감스럽다.

 

교육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교육청 출입 기자를 수년간 했고 교육청에서 일하며 교육 현장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교육은 누군가의 삶을 신념과 야망으로 단순화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짚고 싶은 건, 그가 말하는 운동권 서사에 대한 부분이다. 물론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존중받아야 하고 후세대가 배워야 할 점도 분명히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이유, 구속과 해직의 경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날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평가하고 재단할 권리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부해서 교사·교수·총장·교육감이 된 삶이 왜 비난받아야 하는가. 학생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도서관에서 학문을 정진하며 이 사회를 떠받쳐온 학자들과 시민들도 있었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일부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게서는 여전히 “우리만이 정의”라는 자기 확신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1980년생이다. 운동권의 마지막 그림자와 디지털 시대의 시작 사이를 지나온 세대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스스로를 시대의 정의처럼 규정하며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태도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지금의 2030 세대 역시 과연 그들의 정의관에 모두 공감하고 있을까. 나는 솔직히 김 전 교육감의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문장을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

 

김 전 교육감과의 기자간담회 때 있었던 일도 떠오른다. 시골의 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나는 교육감에게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나는 학생 보호의 관점보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낭만적인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서 기자라는 직함보다 두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마음으로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라고 항의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교육은 특정 진영의 자기 확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적어도 교육자의 언어는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는 칼이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그가 말하는 민주시민교육과 행복교육지구가 지향했던 교육의 본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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