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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불임 시술서 옮겨 간 '부모의 조건'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생존은 아마 모든 생명체가 가진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체에게 중요한 것은 개체의 생존이 아니라 종의 존속이라고 말한다. 일부 사마귀는 짝짓기를 할 때 암컷이 수컷을 먹기도 하고, 거미는 자식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헌신적인 희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종의 존속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 자신의 행복에만 집중해 온 사람이 타인의 생존을 위해 헌신적인 희생을 감내하는 것은 분명 어렵다. 특히 이성과 감정이 발달한 인간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늘 아이들과 수업 시간에 읽은 책은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그중에서 '불임 시술을 장려하기 위한 현금 보상'에 관련된 글을 읽었다. 이 글에서는 마약 중독자를 비롯하여 자식을 키우기 힘들다고 판단되거나 정상적인 아이를 낳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고 불임 시술을 받도록 하는 정책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불임 시술을 받는 사람들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어 좋고, 사회적으로는 장애 아동이나 건강하지 못한 가정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을까?

 

아이들은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질문을 만들었다. 그중에서 유진이가 먼저 질문을 발표했다.
 

유진: 부모가 되는 데 조건이 필요할까요?

교사: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유진: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잖아요. 부모를 잘못 만나서 아이가 불행해 지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부모가 되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허락해 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교사: 유진이는 이 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인 걸까?

유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유진이는 자신의 당혹감과 애매함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했던 것이다. 존 듀이는 탐구 과정에서 문제 제기 이전에 당혹감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어떤 문제 상황에 대해 당혹감을 느껴야 문제 제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질문은 바로 그런 것이다. 나의 문제를 명료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이다.

 

오늘날 일부 교실에서는 당혹감이나 문제 상황은 사라지고 오로지 질문만 강조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형식적인 질문만 난무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강조하는 성찰하는 삶, 질문하는 삶의 가치는 유진이가 한 것처럼 자신의 당혹감을 알아차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선택과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한 능동적인 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준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건데, 조건이 필요할까요?

아름: 전 좀 그래요. 그런 것까지 조건을 따지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민성: 그런데 부부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름: 그건 다른 문제지. 선생님 맞죠? 여기서는 아이를 원하는 경우 아닌가요?

교사: 준이는 어떻게 생각해?

준이: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 안 낳으면 되죠. 그런데 원하는데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예성: 그건 안되는 거지.

주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위한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어도 문제가 없을까?

아름: 무슨 준비가 필요한 건데?

주윤: 돈이 필요하지.

 

 

준이는 임신과 출산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때 나는 ‘자연스럽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는 뜻일까? 인위적으로 조절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까? 이에 대해 좀 더 탐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아름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아름이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조건을 달거나 제약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임신과 출산은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윤이는 아이를 키우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항상 그렇듯 아이들은 주윤이의 반론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같은 반에서 2년 넘게 함께 토론을 하면서 주윤이의 발언이 가지는 무게감이 확실히 커지기 시작했다. 주윤이의 발언은 약간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항상 논리적으로 명료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주윤이의 발언에 항상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탐구공동체 속에서 한쪽으로 쏠린 암묵적 권력은 항상 또 다른 저항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저항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때 탐구공동체라는 지적인 공간은 건강해질 수 있다.

 

민성: 돈이 없어도 아이를 갖지 말라는 것은 말이 안 돼.

주윤: 하지만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할 수 있어야지.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할 거 아니야.

교사: 주윤이 말은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지?

주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킬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죠.

승우: 그건 맞아. 돈이 없어서 아이를 버리기도 하잖아.

교사: 다른 조건은 없을까?

지성: 사랑이 있어야죠. 아이를 사랑해야 해요.

아름: 그건 부모면 다 사랑하는 거 아냐?

준이: 아냐. 아이를 학대하고 괴롭히는 부모도 있잖아.

교사: 경제적, 정서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거지?

수진: 맞아요.

민성: 저는 반대예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권리예요. 다른 사람이 간 섭할 수 없죠.

지성: 하지만 아이는 아무런 힘도 없잖아. 그러니깐 관심을 가져야지.

민성: 다른 사람 눈에는 조건이 부족해 보여도, 잘 키울 수도 있짆아.

교사: 민성이 말은 미리 단정지으면 안 된다는 거야?

민성: 맞아요. 아이를 낳으면서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 수도 있어요.

예성: 하기사 사람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

주윤: 그럼 살인자나 아동학대범이 아이를 낳는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거야?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하잖아.

아름: 어렵다.......

민성: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의 순리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국가가 막을 수는 없어요.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생애 처음으로 타자의 존재에 대한 책임이 주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러한 책임의 범위에 경제적·정서적 조건을 제안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적절한 경제적 조건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했지만, 문제는 선후의 문제였다. 이러한 조건이 갖춰진 사람만이 부모가 될 수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처음에는 부족하지만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변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쟁점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점과 연결된다. 인간의 도덕성도 노력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주윤이는 부정적인 입장이었던 것 같다. 주윤이가 제시한 살인자나 아동학대범의 예시는 아이들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이러한 지적인 혼란은 철학적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아름이는 깊은 탄식을 자아냈지만, 민성이는 자연의 순리라는 개념으로 맞섰다. 민성이에게 이 문제는 자연과 인위의 싸움인 듯 보였다.

 

승우: 하지만 부모가 될 사람들은 최소한의 교육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 어떤 교육?

승우: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아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 말이에요.

유진: 맞아. 부모로서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어야지.

지성: 만약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국가가 도와주면 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준이: 하기사 부모도 인간이니까...

민성: 출산을 강제적으로 막는 것보다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승우: 임신을 하면 국가가 교육을 제공하고,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하는 거죠.

교사: 그걸로 될까?

주윤: 전 여전히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은 출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애들은 지금 진짜 불쌍한 아이들을 안 봐서 그래요.

 

 

출산의 자격에 대한 논쟁이 고조되자, 승우는 새로운 대안을 제안했다. 임신을 강제로 막는 것이 아니라 의무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성이는 경제적인 부분은 국가에서 지원해 줄 수 있지만, 정서적인 부분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성이 역시 출산을 강제적으로 막는 것보다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주장은 암묵적으로 인간은 교육을 통해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을 담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딴지를 걸고 싶었다. ‘그걸로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주윤이는 여전히 임신과 출산을 강제적으로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냉정하게 보일 수 있는 주장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에 대한 깊은 연민이 깔려 있었다. 아마도 주윤이는 부모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거나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공감이라는 감정은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여건이 부족하여 낳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쁜 부모를 만나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공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공감 그 자체는 판단의 명확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가 더 합당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조력자일 뿐이다.

 

민성: 출산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잖아.

주윤: 인간의 권리도 자격이 안 되면 누릴 수 없지. 범죄자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것처럼 말 이야.

지성: 범죄는 객관적으로 판결을 할 수 있잖아. 부모의 자격을 누가 검증할 수 있는 건데?

아름: 맞아. 미래에 아이를 잘못 키울 수 있을 거라는 추측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는 없 어.

교사: 범죄는 과거의 일로 판결을 하는 거지만, 부모의 자격은 다르다는 거지?

아름: 맞아요.

유진: 하지만 누군가 90% 이상 불행해질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놔두는 것은 잘못된 거야.

민성: 처음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어. 부모도 서서히 만들어지는 거야. 노력하면 되는 거라고...

교사: 그럼 부모라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주윤: 아이의 성장을 책임지고 돌봐주는 사람이요.

아름: 아이를 한없이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민성: 모든 인간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당연히 부모가 될 능 력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토론은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치열하게 이어졌다. 보통 철학적 토론에는 일정한 리듬이 존재한다. 강하게 밀어붙이다가도 풀어지기도 하고, 민감한 주제로 갔다가도 다시 장난스럽게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토론은 첨예하게 쟁점을 형성하면서도 그것이 잘 풀어지지 않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그만큼 이 주제가 아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토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었던 것일까? 물론 나는 강제로 토론을 마무리 짓거나 합의하도록 이끌지 않았다. 이 느낌이 그대로 토론 마무리까지 이어지도록 두었다.

 

그것은 이후에 이어질 글쓰기 활동 때문이었다. 이렇게 긴장감이 마지막까지 이어지면 이후의 글쓰기가 훨씬 잘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 나는 토론의 긴장이 내면적 대화로 이어지면서 글쓰기의 깊이가 더 깊어지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 부모의 자격은 검증할 수 있는가?

-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추측하는 것은 합당한가?

- 부모는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 과연 부모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이렇듯 철학적 토론은 더 나은 기준, 의미, 대안,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더 좋은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마 오늘 토론을 통해 새롭게 만나게 된 철학적 질문들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나침반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내면적으로 더 풍성한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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