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6 (토)

  • 맑음강릉 17.2℃
  • 맑음서울 17.8℃
  • 맑음울릉도 20.2℃
  • 맑음수원 15.4℃
  • 맑음청주 19.0℃
  • 맑음대전 15.8℃
  • 맑음안동 16.7℃
  • 맑음포항 19.6℃
  • 맑음군산 14.9℃
  • 맑음대구 18.3℃
  • 맑음전주 16.5℃
  • 맑음울산 18.1℃
  • 맑음창원 21.1℃
  • 맑음광주 17.3℃
  • 구름많음부산 21.2℃
  • 구름많음목포 16.9℃
  • 맑음고창 13.9℃
  • 구름많음제주 18.9℃
  • 맑음강화 15.8℃
  • 맑음보은 13.1℃
  • 맑음천안 13.6℃
  • 맑음금산 13.0℃
  • 맑음김해시 19.8℃
  • 맑음강진군 15.0℃
  • 맑음해남 14.4℃
  • 맑음광양시 17.7℃
  • 맑음경주시 15.4℃
  • 맑음거제 18.2℃
기상청 제공

[내가 쓰는 진로] 진로 발견 확률을 높이려면?

더에듀 | 인공지능과 입시 경쟁이 한꺼번에 뒤엉킨 시대,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진로 앞에서 더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더에듀>는 '좋은 대학'과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좁은 기준을 넘어 아이가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당장 꿈이 없어도 괜찮은 이유, 성적과 적성 사이의 간극, 문해력과 진로의 관계, 오래가는 능력과 직업 선택의 현실 등을 차분하게 짚어나간다.

 

 

며칠 전 한 중학교에서 직업 특강을 했다. 수의사라는 직업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강의가 끝나자 한 학생이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저는 동물을 좋아하는데 수의사가 저한테 맞을까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그건 나도 모른단다. 너도 모르고. 해봐야 알아.”

 

조금 무책임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답은 머리가 아니라 발끝에 있다.

 

우리는 진로를 ‘결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성검사 결과지 한 장, 진지한 고민 몇 시간이면 답이 나올 거라 믿는다. 하지만 진로는 책상 앞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진로는 발견된다. 그것도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해본 사람에게.

 

그런데 정작 그 발견을 가로막는 게 누구인지 우리는 좀처럼 돌아보지 않는다. 대중매체의 말에 아이의 미래를 재단하는 어른, 한 번 해보겠다는 아이를 “그 시간에 공부나 하라”며 책상 앞에 붙들어 두는 어른, 정해 준 길에서 반 발짝만 벗어나도 불안해하는 어른.

 

우리는 아이에게 답부터 내놓으라 다그치면서 정작 답을 발견할 기회는 내어주지 않는다. 실패할 자유를 빼앗긴 아이는 발견할 기회마저 함께 빼앗긴다.

 

누구나 처음부터 자기 길 위를 걸은 건 아니다. 나 역시 처음 그린 설계도대로 살고 있지 않다. 요리사 고든 램지도 그랬다. 그는 원래 프로 축구선수를 꿈꿨지만 무릎 부상으로 그 길이 꺾였고, 이후 호텔 경영을 공부하며 요리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꾸준한 수련 끝에 세계적인 셰프로 성장했다.

 

축구라는 직선이 막히자 그는 돌아가는 길에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 셈이다. 만약 그때 누군가 “축구가 안 됐으니 넌 끝났다”고 못 박았다면 세상은 그 셰프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차선처럼 보였던 길이, 걷다 보니 최선이 되어 있었다.

 

일본의 경영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에서 자신이 천직을 만난 과정을 이렇게 돌아본다.

 

‘반쯤은 억지로 떠맡은 일이었지만 어느새 깊이 몰두하게 되었고, 좋고 싫고를 넘어 의미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매듭짓는다.

 

“‘천직’은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천직은 어딘가에 완성된 채 숨어 있다가 발견되기만 기다리지 않는다. 발견은 발로 하는 것이다. 해보고 부딪히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아이가 무언가에 서툴게 빠져 있을 때, “쓸데없는 데 시간 쓴다”고 끼어드는 대신 잠시 지켜봐 주는 편이 낫다. 그 서툰 몰입이 천직의 씨앗일지 어른은 알 수 없다.

 

얼마 전 김해의 한 청소년 진로 멘토링 행사에 수의사로 참여했다. 그 자리는 또 다른 강연으로,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졌다. 나는 거기서 다시 확인했다. 책상 앞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길이 한 번 움직이자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은 늘 내가 발을 디딘 자리에서 시작됐다.

 

진로의 발견도 다르지 않다. 세상과의 접점을 늘릴수록 발견의 확률은 높아진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작은 일이라도 직접 해보는 것. 그 접점들이 쌓이다 어느 날 ‘아, 이거다’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장자에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이라는 말이 있다. 길은 걸어야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길이 먼저 놓여 있고 우리가 그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걸어간 자리가 길이 된다.

 

그러니 아이에게 “넌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묻고 분명한 답을 재촉하는 일은 이제 멈추는 게 낫다. 그 질문은 아이를 위하는 것 같지만 실은 아직 걷지도 않은 아이에게 도착지부터 대라고 다그치는 일이다.

 

진로는 머리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발견하는 것이다. 어른이 할 일은 답을 재촉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더 많이 부딪히고 더 자주 실패할 수 있는 마당을 내어주는 것이다. 아직 길을 찾지 못했다면 그건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직 충분히 걷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가 아직 길을 찾지 못했다고 조바심 내기 전에 한 번 자문해 볼 일이다.

 

‘나는 아이가 걸어볼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는가, 아니면 걷기도 전에 길부터 정해 주고 있는가.’

 

길은 결국 걸어본 아이만이 발견하게 된다.

배너
배너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0명
0%
싫어요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