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근래에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교사 정치기본권은 국민이 납득해야 가능하다” 즉, “학부모의 찬성률이 높지 않다”고 밝힌 발언은 오래된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교사 정치기본권, 필요한 건 ‘금지’가 아닌 ‘규범의 재설계’
교사는 시민이면서 동시에 공무원이다. 이 두 가지 지위가 충돌할 때 우리는 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의 금기를 앞세워 논의를 멈추어 왔다. 그러나 세계 다수의 국가에서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이미 합리적 규제로 보장되고 있다.
예컨대 OECD 국가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여전히 ‘권리의 사각지대’를 유지하는 것이며 그 이유를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발목잡기는 정치적 중립에 대한 오해다. 한국에서는 ‘정치적 중립=정치적 침묵’과 동일시되면서, 교사가 SNS에 의견을 쓰거나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조차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는 오해와 착각이 존재한다. 중립은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교실에서 학생에게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교사가 시민으로서 의견을 표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독일·프랑스·영국 등은 교사의 표현권을 보장하되, 수업 시간·학생 대상 선전·학교 자원을 이용한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선진적 규제 모델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구조지만, ‘정치=위험’이라는 매우 낡은 프레임이 여전히 교육 현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또 다른 장애물은 교사 정치기본권이 곧 학교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포다. 과거 일부 교원단체의 강경한 정치적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사례가 있었기에 이런 우려가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결론은 ‘금지’가 아니라 ‘규범의 재설계’다.
예컨대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교사에게 투표·정당가입·정책 비판 등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학생·학부모와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영향력을 명확히 제한하는 이해충돌 규정을 두고 있다. 규제가 정교할수록 문제는 줄고 권리는 안정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법·윤리 체계를 정비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회와 국민이 이 제도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사들의 정치기본권 논쟁이 오랫동안 진척되지 못한 마지막 이유는 정치권의 양극화다. 어느 한쪽은 ‘정치활동 전면 금지’를, 다른 한쪽은 ‘완전한 자유 보장’을 주장하며 극단을 오가고 있다. 이 구조에서는 실질적 토론이 불가능하다.
교사의 권리와 학생 보호라는 두 가치를 조화시키는 ‘중간 지점’을 설정해야 하는데, 정작 정책 논의는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숙의 대신 이념적 대결에 갇혀버린 것이다.
교사 정치기본권 법제화, 교육의 전문성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수적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금지의 정치’가 아니라 ‘규범의 혁신’이다. 여기에 몇 가지 방안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단계적으로 보장하는 차등적 모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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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사생활 영역의 표현의 자유 보장(SNS·정책 비판·정당가입) 2단계: 학교 밖 정치활동 허용, 그러나 학생 대상 활동은 금지 3단계: 교사단체의 정책 참여권 확대, 교육제도 개선 과정에서 공식적 의견 제출 보장 |
등이 그것이다. 즉, ‘전면 허용’도 ‘전면 금지’도 아닌, 절제된 권리 보장이라 할 수 있다.
둘째, 학생 보호를 위한 강력한 교실 중립성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수업에서 특정 이념·정당을 선전하는 행위는 엄격히 제재해야 한다. 이 규정이 명확해질수록 사회는 교사의 정치 자유를 받아들일 토대를 갖게 될 것이다.
셋째, 정치적 편향을 예방하는 교사 전문성 교육이 필요하다. 여러 국가에서는 교사 연수를 통해 ‘논쟁적 사안 수업법’, ‘정치적 균형성 유지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는 금지보다 훨씬 효과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교사의 정치적 표현이 학생 권익과 충돌하는지 판단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는 정권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 감독기관을 설립함으로써 접근해야 한다.
교사 집단도 시민의 한 부류다. 시민의 입을 막는다고 학생이 보호되는 것도, 교육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교사가 스스로 정치·사회적 의제를 이해하고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을 때, 교육은 더 민주적이고 성숙해질 것이다. 교사 정치기본권의 법제화는 단순한 권리 확대가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과 국가 민주주의의 깊이를 넓히는 문제로의 인식이 필요하다.
교사 정치기본권, ‘금지의 역사’ 넘어 신뢰와 규범의 혁신으로
세계 150여 개 국가에서 인가 높은 글로벌 캔디인 츄파춥스 막대 사탕은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기호품이다. 그런데 단것을 먹으면 충치가 생긴다는 이유로 그 존재조차 모르게 하거나 금기로 간주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꼭 필요할 때 적당히 먹게 하고, 양치질을 잘하도록 자체 규정을 만들어 판단을 아이에게 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 될 것 아닌가?
이는 더 이상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또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를 태우는’ 우매함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금지의 역사’를 넘어 신뢰와 규범의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의 품격은 교사의 권리와 학생의 보호가 조화를 이루는 순간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최근 교육부 장관이 SNS상에서 자신의 의견으로 ‘좋아요’를 누르고 공감을 표현했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성을 어겼다고 난리다. 이런 억지에 대해 우리는 ‘교사의 정치기본권 회복’이라는 세계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언제까지 녹슨 레코드판만 틀면서 외면할 것인가?
우리의 교육도 이제는 전국의 학교들이 IB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처럼 세계적 표준(Global Standard)에 발맞추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가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의 위상과는 달리 언제까지 금지하고 냉담한 태도로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반대하고 외면할 것인가? 참으로 부끄럽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정말 세계 속의 10위권 경제처럼 교육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제도화하고 교사의 전문성과 교육의 자율성을 신뢰하는 합리적 규제의 교육환경을 구축해야 할 때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