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위치한 응고롱고로(Ngorongoro) 분지는 거대한 화산 분화구가 만들어 낸 천혜의 야생 낙원이다. 사방이 높고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이 고립된 분지 안에서 수많은 야생동물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이 화려한 낙원의 이면에 숨겨진 치명적인 비극에 주목해 왔다. 외부와의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 분지 안에서 사자들은 수십 년 동안 그들끼리만 교배를 반복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새로운 유전자의 유입이 멈추자 면역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유해한 열성 형질이 발현되었으니, 이는 생물학적 재앙인 ‘근교약세(近交弱勢)’, 즉 근친교배가 불러온 후과(後果)이다. 작은 질병 하나에도 무더기로 쓰러지는 사자 군락의 퇴행은, 고립된 생태계가 맞이하게 되는 필연적인 종말을 보여준다.
이 응고롱고로 분지의 비극은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 특히 좌파 교육감들이 지배해 온 지방 교육 자치 생태계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다. 교육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혁신해야 할 교육청이, 이른바 ‘진영’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쳐두고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차단한 채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해왔기 때문이다.
과거 대한민국에서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닌, 사회적 존경과 도덕적 권위를 지닌 존재였다.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못하던 시절을 사극을 통해서나 경험한다. 과거에는 성직자에 가까운 존재인 교사를 모욕한다는 것은 예배 도중 목사에게 혀를 내미는 것처럼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좌파 교육감들이 주도한 학생인권조례의 과도한 추진과 교권 경시는 교단을 철저히 붕괴시켰고, 학교를 이념의 실험장으로 전락시켰다.
아이들은 정권과 진영의 입맛에 따라 좌우되는 실험실의 몰모트(실험용 쥐)가 되었고, 교육 정책은 설익은 이념의 도구로 소모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좌파 교육 권력의 핵심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와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그리고 이들을 외곽에서 호위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과 좌파 시민단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교육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할 제도권 안에서 마치 ‘독수리 삼형제’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선거철이 되면 단일화와 지지 선언으로 권력을 창출하고, 선거가 끝나면 교육청의 주요 보직과 정책 자문 자리를 나누어 가지며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 발전의 핵심이 되어야 할 전문성과 능력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오직 ‘코드’와 ‘진영에 대한 기여도’만이 유일한 승진 패스포트가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탄생한 교육청의 관료들과 장학관, 교장들은 철저하게 한 줄로 늘어선 동종(同種)의 인물들이다. 이들은 거대한 분지 구조 속에 갇힌 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외부의 비판을 ‘반개혁’으로 몰아세우며 철저히 배척한다. 이러한 ‘분지 종족의 관성’에 갇힌 교육 생태계에는 더 이상 자정 능력이나 발전적인 논쟁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이들은 특정 이념의 ‘자극편향’에 빠져, 교육 현장의 목소리와 위기 신호를 왜곡하여 받아들인다. 새로운 정책적 대안이나 신선한 교육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진영의 논리에 가로막혀 고사하고, 과거의 낡은 이념과 패러다임만이 무한 반복 복제될 뿐이다.
구약성경 잠언에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라는 명언이 있다.
학문과 교육, 조직의 발전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건강하게 부딪치고 대립하며, 서로의 논리를 날카롭게 벼려낼 때 비로소 조직은 발전하고 교육은 생명력을 얻는다. 다양한 교육적 스펙트럼이 융합되어야 아이들에게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복합적·융합적 사고력을 길러줄 수 있다.
그러나 좌파 교육감들이 구축한 ‘동족 문화’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 발전적 마찰의 기회를 원천 봉쇄해 버렸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나와 같은 노조 출신의 인물들만 곁에 두고 들리는 칭송에만 귀를 기울이니 교육 정책의 날은 무뎌질 대로 무뎌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대한민국 교육은 기초학력 저하, 교권 추락, 교육의 정치 도구화라는 삼중고를 겪으며 하향 평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념적 순혈주의에 집착하다가 조직 전체의 면역력이 고갈되어 버린, 실로 ‘교육의 근교약세’가 현실화한 셈이다.
이제 우리는 응고롱고로 분지의 사자들이 마주한 재앙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교육청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며, 전교조나 민노총의 전리품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로 경기도의 경우, 이념성이 상반되는 안민석 전 의원의 당선 여파로 본청과 지역 교육청의 주요 보직에 있는 전문직·일반직 공무원들이 좌불안석이라고 한다. 공직 사회가 지켜온 인사 예측성과 신의칙(信義則)이 진영에 따른 코드 인사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다.
코드 인사는 최소화하고 건강한 탕평 인사가 정착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교육 생태계는 신선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갇힌 분지에서 나와 넓은 광장으로 향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백년대계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자 ‘동족 문화’라는 유전적 재앙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해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