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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서의 회고(回顧)] 기계 조명이 꺼진 자리, 천이백 개의 은하수가 켜졌다

어둠 속에서 더 빛난 신서중 아이들

시나리오 없는 위기를 기적으로 물들여

더에듀 |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미래의 과정이다. 백년지대계라 불리는 교육은 과거 없이 현재를 평가할 수 없으며, 미래를 논할 수 없다. 손기서 전 서울 강서양천교육장은 38년의 교직 생활을 하며 과거 교육의 변곡점을 현장에서 바라보고 경험했다. <더에듀>는 그의 기억에 존재하는 교육의 길을 다시 찾아보는 기행을 시작한다.

 

 

2023년 9월 1일, 설레는 마음으로 신서중학교에 부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학생 자치 축제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7년 서울사대부중 교사 시절부터 학생 중심 자치 축제의 긍정적인 교육 효과를 체감해 왔기에, 신서중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대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완벽해 보였던 준비 과정 뒤로, 예상치 못한 거대한 암초가 기다리고 있었다.

 

본격적인 발표회를 단 한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사전 리허설 과정에서 조명 부스 팀과 학생회 간의 조율 과정에 갈등이 생겼고, 조명 팀이 전원 철수해 버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보고가 들어왔다.

 

축제의 핵심인 무대 조명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갈등이 있더라도 공연을 모두 마치고 학교에 건의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후였다. 축제 진행은 일순간 마비되었고 현장에는 난감한 기류가 흐르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취소나 연기를 고민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두 교감 선생님을 모시고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 상황을 중심으로 축제를 그대로 이어갑니다.”

 

어른들의 불안을 내려놓고 학생들의 저력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어둠을 걷어낸 한 줄기 빛, 전교생의 마음을 하나로 묶은 감동의 오케스트라


마침내 축제 장소인 고척교회의 본당 무대 위로 막이 올랐다. 댄스와 노래 등 화려한 조명이 극적인 연출을 더해줘야 하는 순서가 다가오자 객석과 무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조명도 없이 모든 불이 일제히 꺼졌다. 암전된 공간, 정적과 당혹감이 감돌 수 있는 그 짧은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자신의 스마트폰 조명을 켜 무대를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 그 작은 불빛을 시작으로 옆자리, 뒷자리, 그리고 고척교회 내부를 가득 채운 1200명 전교생과 학부모님들께서 하나둘씩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화려한 무대 기계가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아이들의 손에 쥔 천이백 개의 작은 불빛들이 거대한 은하수처럼 채워나갔다. 무대 위 주인공들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눈부신 조명 속에서 마음껏 끼를 펼쳤다.

 

이 감동적인 드라마에는 사전 시나리오가 없었다. 신서중학교의 모든 학생은 위기 앞에서 원망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서로를 비추는 조명판이 되어주는 성숙함을 보여주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원팀이 되어 위기를 기적 같은 축제로 연출해 낸 것이다.

 


화려한 무대 기계보다 빛난 연대의 가치, 서로가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교육


이날의 사건은 우리 교육계에 몇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위기관리(Risk Management) 역량이 곧 살아있는 교육이라는 점이다.

 

통제된 환경 속의 완벽한 시나리오보다, 예측 불가능한 난관 앞에서 대안을 찾아내는 ‘회복탄력성’이야말로 미래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이다.

 

둘째, 진정한 학생 자치는 어른들의 신뢰 위에서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다.

 

학교 리더십이 위기 순간에 통제 대신 신뢰를 선택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었을 때, 아이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닌 무대의 진정한 ‘주인(Ownership)’으로 거듭났다.

 

셋째, 개인화된 디지털 기기가 공동체의 연대 도구로 전환되는 집단지성의 힘이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백을 공동체가 한뜻으로 협력할 때 더 큰 감동으로 채울 수 있음을 아이들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가장 완벽한 무대 조명은 어른들이 대여해 준 화려한 기계 장치가 아니라, 친구를 위해 기꺼이 들어 올린 우리 아이들의 스마트폰 불빛이었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에게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만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부족함 속에서도 서로를 비추며 함께 길을 찾아가는 연대의 가치를 배우는 공간이어야 한다.

 

신서중학교 학생들이 어둠 속에서 쏘아 올린 그 작은 빛들은, 앞으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자치와 신뢰의 방향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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