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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THE교육] 교실의 사법화에 대한 해결 방안 탐색

 

더에듀 | ​요즘 대한민국 학교는 교육의 전당이라기보다 법원 직영 아동 청소년 상담소에 가까워졌다. “선생님, 쟤가 제 지우개 가져갔어요!”라는 귀여운 고자질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는 “선생님, 그 눈빛과 말투는 제 아이에게 정서적 학대 행위이니 법정에서 뵙겠습니다”라는 무시무시한 ‘사법 고소’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교사가 고소·고발의 홍수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그런데 매우 경이로운 사실이 있다. 이렇게 난무하는 교육 현장의 아동학대 고소 중 상당수는 조사나 재판 과정을 거쳐 결국 ‘기각’되거나 ‘무죄 판결’로 끝난다는 점이다. ​

 

문제는 그다음이다. 법정에서 “죄가 없다”고 최종 판결을 내려준들, 그동안 교사가 흘린 피눈물과 영혼의 상처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그뿐이랴. 교사가 법정을 들락날락하는 동안 방치된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은 어디서 환불받아야 하는가? “아님 말고” 는 무분별한 고소로 교육 현장을 초토화한 이들에게 이제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때이다.

 

이 글에서는 교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벽, 이른바 ‘징벌적 교육방해죄(가칭)’ 제정이 필요한 이유를 짚어보려고 한다.

 

 

미국의 저명한 법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필립 하워드(Philip K. Howard)는 그의 저서 ‘법의 죽음(The Death of Common Sense)’에서 과도한 사법화가 어떻게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는지 경고한 바 있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학교 내 소송이 급증하자, 교사들이 학생의 싸움을 말리지 않거나 칭찬조차 조심하는 ‘방어적 교육’ 현상이 일어났다. 하워드는 이를 “법이 상식을 집어삼켜 공동체를 마비시킨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 및 교육청 국정감사 자료 등에 따르면, 교사를 상대로 한 아동학대 신고 중 실제 처벌(벌금형 이상)로 이어지는 비율은 극히 낮다.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되거나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무죄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그동안 교사는 직위해제를 당해 월급이 깎이고, ‘아동학대 피의자’라는 주홍글씨를 단 채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교사가 무죄 판결을 받고 교단에 돌아왔을 때, 교실에 남은 것은 서먹함과 두려움뿐이다. 전쟁에서 이겼는데 영토는 황무지가 된 꼴이다.

 

우리 사회는 ​지하철에서 비상정지 버튼을 장난으로 누르면 상당한 과태료를 부과한다. 수많은 사람의 발을 묶고 시스템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라는 공공 시스템을 사적인 감정이나 무리한 요구로 마비시킨 사람에게도 통념에 상응하는 책임, 즉 ‘교육 활동 마비죄’ 혹은 ‘무고성 교육방해죄’를 물어야 공평치 않겠는가?

 

 

필자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법적 장치를 획기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소송 비용 및 정신과 치료비 ‘전액 역청구’이다. ​무죄나 무혐의가 확정되는 순간, 고소인이 교사의 변호사 선임 비용은 물론, 그동안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그리고 교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투입된 대체 강사 인건비까지 전액 배상하도록 법제화하는 것이다.

 

둘째, ​공익 봉사 명령(‘학교 잡무 100시간’) 부여이다. ​돈으로만 해결하면 ‘유전무죄’가 될 수 있으니, 무리한 고소로 학교 행정을 마비시킨 학부모에게는 학교 행정실이나 급식실에서 공익 봉사를 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이는 본인이 마비시킨 교육 현장이 얼마나 치열하게 돌아가는지 몸소 체험해 보라는 취지라 할 것이다.

 

​이러한 법 제정은 결코 정당한 학생 보호 조치를 막으려는 게 아니다. 악의적이고 무분별한 ‘묻지마 고소’로 학교를 사법화 지대로 만들기 전에 “내가 틀렸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상상 이상으로 크구나”라는 점을 뼈아프게 깨닫게 만들어, 최소한의 이성적 브레이크를 밟게 하자는 것이다.

 

다음의 비교를 보자. ​축구 경기에서 페널티 킥을 얻어내려고 혼자 할리우드 액션(시뮬레이션)을 하며 구르는 선수들이 있다. 만약 심판이 비디오 판독(VAR)을 거쳐 “반칙이 아니다”라고 선언만 하고 그냥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모든 선수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일단 구르고 볼 것이다. 밑져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교실이 딱 그 모양새다. 축구에서는 할리우드 액션을 하다 걸리면 ‘옐로카드’를 받는다. 심하면 퇴장도 당한다. 그런데 왜 학교에서는 교사를 향해 무리한 ‘사법적 태클’을 걸었다가 실패해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는 것인가?

 

김정은의 핵에 대한 집착만큼이나 무서운 게 일부 학부모들의 ‘내 자식 지상주의’이다. 즉, 내 아이가 기분 나빴으니 교사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이 위험한 질주를 멈추게 하려면, 심판(법원)이 옐로카드를 들고 고소인의 주머니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래야 교실에서 억울하게 삶을 마감하는 교사가 사라질 것이다.

 

맥킨지&컴퍼니(McKinsey&Company)에서 발간한 보고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 시스템이 정상에 오른 조치(2007)’에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The quality of an education system cannot exceed the quality of its teachers)”는 유명한 진술이 나온다.

 

이는 단순히 교사의 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교사가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존중받는 환경에서만 최고의 교육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고소장을 걱정하며 ‘방어형 수업’만 하는 교사에게서 어떻게 아이들의 영혼을 깨우는 담대한 교육이 나오겠는가?

 

교사를 죽이는 과도한 사법 고소·고발을 종식시키기 위해, 무죄 판결 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경제적 대가를 치르게 하는 법 제정은 결코 과한 처사가 될 수 없다. 이는 무너진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대다수의 선량한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정당방위’이다.

 

​이제 법은 교실을 흔드는 자들에게 엄중한 청구서를 발행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교실, 교사가 안심하고 출근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교육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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