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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로 간 어린이철학] '몸값'...인간을 사고팔 수 있을까?

공립 대안중학교, 울산고운중학교의 철학수업 이야기

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인간의 가치가 학벌, 직업, 명성, 재력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더 나은 학벌과 직업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우리가 하는 공부와 노동 역시 사회적 명성과 재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공부 그 자체, 노동 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 좋은 학벌과 더 많은 재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는 모든 것이 자본으로 환원되고 교환될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를 정확하게 예견한 철학자가 바로 마르크스다.

 

마르크스는 『1844년 경제학·철학 초고』라는 책에서 ‘노동 소외’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는 노동자가 자신이 하는 일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 생산물에 종속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생산수단, 즉 공장이나 회사를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 수밖에 없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노동의 모든 과정은 관리자에 의해 통제되며, 노동자의 창의성과 독창성, 가치관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인간 노동이 가진 고유성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임금이라는 단일한 척도로 수렴된다. 그가 받는 연봉이 곧 그 일의 가치를 결정할 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노동 과정과 그 결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채,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부품으로 다루어진다. 개인이라는 고유한 존재는 사라지고, 언제든 교환가능한 부품과 수치로 여겨지는 것이다.

 

 

우리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읽은 교재는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장기 매매’를 다룬 글이었다.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에 따라 교환 가능한 사회라면, 왜 장기는 사고팔 수 없는 걸까? 우리의 신체는 곧 나의 소유물인데, 그것을 어떻게 할지는 개인의 권리가 아닐까?

 

아이들은 이런 의문을 자유롭게 제기했다. 물론 공동체주의자인 샌델은 이와 다른 입장을 취했지만, 아이들은 그의 주장에 맞서 거리낌 없이 질문을 던졌다.

 

철학적 탐구 공동체 안에서는 샌델 같은 세계적인 학자의 주장조차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의견으로 검토될 뿐이다.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안했다.

 

민성: 대가를 얻는 일은 이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주윤: 왜 우리는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될까?

준이: 돈을 주고 장기 매매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

유진: 인간에게 가격을 매길 수 있을까?

 

 

처음에 아이들은 준이의 질문에 관심을 보였다. 돈을 주고 장기를 사고팔 수 있다면, 장기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승우가 장기에도 가격이 있다면, 그 장기로 이루어진 인간에게도 가격이 매겨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승우의 의문은 유진이가 제안한 질문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아이들은 유진이의 질문을 중심으로 토론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유진: 인간에게도 가격이 매겨질 수 있을까요?

교사: 이런 질문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니?

유진: 오늘 장기 기증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에요. 만약 장기를 사고팔 수 있다면, 인간에게도 가격을 매길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사실 우리는 동물에게도 가격을 매기잖아요. 그렇다면 인간에게 가격을 매기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인간도 동물이니까요.

 

유진이가 자신의 질문에 대해 천천히 설명을 끝내자, 곧 토론이 시작되었다.

 

​​​​​​​교사: 굉장히 도발적인 질문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주윤: 저는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닭이나 소도 값을 매기잖아요.

교사: 닭이나 소를 인간과 똑같이 봐도 될까요?

유진: 같은 생명체잖아요. 차별하면 안 되죠.

아름: 저는 생각이 달라요. 인간은 소비하는 입장이잖아요. 인간은 닭의 값을 매길 수 있지만, 인간을 소비하는 존재는 없어요.

예성: 만약 그런 존재가 있다면?

주윤: 그럼 값을 매길 수 있겠지. 원래 값을 매기는 건 힘 있는 존재들이잖아.

 

토론은 동물에게 값을 매기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값을 매길 수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되었다. 일종의 유비 추리었다. 인간도 동물이므로, 동물에게 값을 매길 수 있듯 인간에게도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아름이는 이 추리에 오류가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닭이나 소와는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힘’이었다. 힘 있는 존재는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준이: 저는 지금도 인간에게 값을 매기고 있다고 생각해요.

민성: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값이 없는데.

준이: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생겨. 직장에서 네가 받는 돈이 곧 너의 값이야.

승우: 우리가 일해서 받는 연봉이 곧 나의 가격이라는 거야?

준이: 맞아.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은 높은 가격이고, 적게 받는 사람은 낮은 가격인 거지.

지성: 그럼 손흥민이 우리보다 더 높은 가격이라는 말인가?

유진: 인간의 능력이 곧 가격이라는 말이네.

 

준이는 직장에서 받는 연봉이 곧 개인의 가격이라고 주장했다. 연봉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만큼 가격이 높고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마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지점일 것이다.

 

연봉이 높은 사람은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만한 연봉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연봉이 곧 자신을 증명하는 기준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연봉, 외모, 지위 등을 토대로 개인에게 점수를 매기는 관행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사고방식에 균열을 내고 싶었다. 그게 가능할까?

 

 

​​​​​​​교사: 그럼 각자가 받는 연봉의 가치를 매기는 기준은 무엇일까?

수진: 많은 사람이 원할수록 높은 가격을 매기는 거예요.

교사: 예를 들어볼 수 있는 사람 있을까?

준이: 아까 말했던 손흥민이 배구 선수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과 같아요. 사람들이 축구를 더 좋아하니까요.

지성: 일종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 같은 거예요. 수요가 많으면 그만큼 값이 올라가는 거죠. 피카츄 카드도 마찬가지예요. 희귀한 카드는 그만큼 더 비싸거든요.

수진: 남들이 흔히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가격은 그만큼 더 높아져요.

예성: 그게 자본주의예요.

승우: 예성이, 이제 어려운 말도 막 쓰고 그러네.

〈다 같이 웃는다〉

 

인간의 값이 연봉을 통해 정해진다면, 연봉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왜 어떤 직업은 연봉이 높고 어떤 직업은 낮을까?

 

아이들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근거로 내세웠다.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을수록 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 자본주의의 이론적 기틀을 세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리게 했다. 피카츄 카드의 가격처럼, 시장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연봉을 결정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에게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적용해 가격을 매겨도 되는가 하는 점이다. 사회에서 요구는 많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경우, 그 사람의 연봉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한 인간의 가격도 그렇게 매길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좀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 ‘교환’이라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교사: 사람에게 가격이 붙으면 교환도 가능하다는 거니?

주윤: 교환이요?

수진: 그렇네. 인간에게 가격이 매겨질 수 있으면 교환도 가능해야지. 내가 돈을 주면 너를 살 수 있는 거야?

지성: 그건 안 되지. 어떻게 사람을 돈을 주고 사?

승우: 그런데 회사에 다니는 것도 일종의 돈을 주고 사람을 사는 거 아냐? 돈을 준 만큼 회사가 시키는 일은 해야 하니까.

주윤: 하지만 내가 회사의 소유가 되는 건 아니잖아. 사람은 물건이 아니잖아.

교사: 누군가에게 가격을 매긴다는 것은 그 사람을 물건처럼 여기는 거 아닐까?

승우: 그럼 안 되죠.

민성: 하지만 물건처럼 사람의 가격을 정하는 건 타인이잖아요.

 

무언가에 가격을 매긴다는 것은 교환을 전제로 한다. 사람에게 가격을 매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릴 때는 그에 따라오는 결과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사람에게 가격을 매기는 행위가 소유와 교환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반대했다. 일종의 역할 교환 검사를 자연스럽게 수행한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회사의 소유가 되거나 교환의 대상이 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처럼 철학적 토론에서는 판단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 매 순간 발생한다. 그러한 순간이 바로 자기 수정을 결단해야 할 지점이다. 모순에 머물 것인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것인지 말이다.

 

​​​​​​​주윤: 내 능력을 보고 다른 사람이 나의 가격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쁜 것 같아요.

유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승우: 난 그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는 않아. 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거야.

민성: 인간에게 가격을 매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네. 연봉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면 안 될 것 같아. 연봉은 연봉이고, 사람의 가치는 가격으로 결정될 수 없어.

교사: 그럼 인간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아름: 돈으로 나를 평가할 수 없어요. 연봉이 높다고 해서 나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교사: 그럼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유진: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아요. 그게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수진: 하지만 우리는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 세상에 유용한 사람이 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

유진: 그걸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

민성: 어쨌든 사람에게 가격을 매기고 물건처럼 대하는 것에는 다들 반대하는 거 맞지?

 

뉴스를 보다 보면 소위 ‘몸값’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몸값을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몸값을 기준으로 선수들은 교환 가능한 대상이 된다. 그 사람이 가진 모든 역량과 재능은 몸값이라는 말로 철저히 재단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깊은 심연을 바라보고 예견했던 장면이다.

 

물론 오늘날 이러한 현상은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경쟁이 치열한 거의 모든 직업군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헤드헌터라는 직업의 등장은 이를 정확하게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이들과 토론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몸값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여도 될까? 아무런 비판없이?’

 

적어도 자본주의적 논리가 우리의 인격적·윤리적 영역까지 침범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아이들에게 직접 전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세련되게 교화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아이들이 제안한 주장에 담긴 숨은 전제를 드러내고,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려 노력했을 뿐이다.

 

가능하다면 질문을 통해 작은 균열이라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모순을 눈치채고 스스로 수정하려 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는 않았다.

 

만약 성인들과의 토론이었다면 대부분 현실의 벽에 쉽게 순응하면 손쉽게 합의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상과 현실을 명확히 구분하고, 현실 원칙 안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렸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현실 원칙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을 명확히 나누지도 않는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헤맨다. 그렇기에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바로 그 헤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헤맴과 머뭇거림 속에서야말로 윤리적 진보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물질화되고 도구화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다음 걸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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