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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사 발언대] 고1 자퇴를 ‘내신 전략’으로만 읽게 만드는 데이터의 공백

데이터를 좋아하는 교육부, 정작 학교 떠나는 이유는 묻지 않는다

더에듀 | 매년 새로운 교육정책이 제안되고 반영된다. 아이들을 위함이라는 명분이 붙지만 학교현장에 적합한 것인지에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특히 사회적 이슈에 따라 급조된 정책들은 도대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게 만들기도 한다. 이에 <더에듀>는 ‘중등교사노동조합’ 조합원 교사들의 의견을 듣는 연재 ‘중등교사 발언대’를 통해, 현장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해마다 비슷은 통계가 돌아온다. 서울에서 일반고 자퇴율이 가장 높은 곳은 강남·서초·송파, 이른바 강남 3구다. 강남·서초가 2.7% 안팎, 송파가 2% 남짓으로, 재학생 100명 중 두 명 이상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둔다. 강남구 1학년만 떼어 보면 그 비율은 4%를 넘는다.

 

그리고 이 숫자에는 거의 언제나 한 입시기관의 해석이 따라붙는다. 내신 경쟁에서 밀린 상위권 학생들이 검정고시와 수능이라는 더 유리한 경로로 갈아타는 ‘전략적 자퇴’라는 것이다.

 


자퇴가 전략인 학생들


이 해석은 상당 부분 사실이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는 자퇴를 단순한 ‘부적응’이 아니라 입시에 유리한 길을 택하는 ‘전략적 우회’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데이터로 확인했다.(<KEDI Brief> 2026년 9호)

 

자퇴 후 검정고시를 택한 학생들의 수능 국어·수학 1등급 비율이 고3 재학생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난 것이다.

 

떠난 학생들은 공부를 그만둔 것이 아니라, 경쟁에 더 효율적인 형태의 학습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대학 진학이 본질적으로 위치재인 이상, 한 줄 세우기의 맨 앞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자리를 잡으려는 이 계산은 학군지에서 충분히 합리적이다.

 

문제는 자퇴를 둘러싼 공적 서사가 거의 전적으로 이 한 줄기 해석에 갇혀 있다는 데 있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강남 3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학군지 바깥, 특히 학업에서 일찍 밀려난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거나 교실에서 잠드는 이유는 좀처럼 데이터로 정리되지 않는다.


버틸 수 없어 내몰리는 학생들


이들이 학교를 등지는 이유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 초등 단계에서 이미 벌어진 채 회복되지 못한 기초학력 격차, 고교 교과를 소화하기 어려운 상태로 일반고에 떠밀려 온 구조, 직업계고를 ‘인생에서 한 번 접고 들어가는 길’로 만든 노동시장의 처우 격차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여기에 수능 최저학력기준의 압박, 학급에서 자기 자리를 끝내 찾지 못하는 정서적 소진이 겹친다. 고교학점제 같은 특정 제도 탓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더 깊은 층위의 문제들이 겹쳐 있다.

 

그리고 점점 더 또렷해지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힘 자체가 약해진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대규모 종단연구는 코로나 세대가 잃은 것이 성적만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학생성장 및 적응체제 구축 지원 종단연구’ 3차년도 종합보고서. 2026, 교육부)

 

정서를 다스리는 힘, 사회적 역량, 신체 건강까지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친구와 부대끼며 갈등을 다루는 법,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버티는 법은 시험지로 측정되지 않지만 한 사람이 학교에 남아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이 힘이 무너진 자리에, 이주배경 학생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과 성소수자 학생이 홀로 감당하는 정체성의 고민이 또 겹겹이 얹힌다. 누군가에게 자퇴는 전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는 버틸 수 없어 내몰린 결과다.

 


데이터를 좋아하는 교육부가 뽑지 않는 데이터


여기서 정작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그렇게 데이터를 좋아하는 교육부는,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의 비중을 왜 조사하지 않는가.

 

청소년 자살을 두고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그 원인을 학업 스트레스와 경쟁 압박이라 진단해 놓고, 정작 무엇이 어느 정도의 무게로 작동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은 채 짐작과 통념을 갖다 붙였다.

 

청소년 자살 사망자가 2016년 273명에서 2025년 396명으로 늘어나는 동안에도, 실패를 정직하게 복기할 원인별 데이터는 끝내 생산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진짜 필요한 데이터는 어렵고, 더디고, 임기 안에 실적으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빈자리는 측정하기 좋은 지표들—상담 건수, 도입한 기기 수, 수업 차시 수, 잘 모아 둔 미담 사례—로 채워진다. 학교는 아이를 실제로 살피는 대신 무언가를 한 것처럼 보이는 서류를 생산하는 데 동원된다.

 

국가가 뽑아야 할 데이터를 뽑지 않으니,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사교육이다. 자퇴율에 해석을 붙이는 일을 거의 유일하게 수행하는 곳이 한 입시기관이라면, 자퇴가 오로지 ‘내신 전략’으로만 설명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데이터를 가진 자가 서사를 소유한다.


원인을 모르면 처방도 빗나간다


자퇴와 학교 이탈을 입시 프레임 하나로만 읽는 순간, 처방 역시 평가 개편과 수업 방식 전환처럼 교문 안에서 처리 가능한(정확히는 처리 가능하다고 믿는) 변수로만 수렴한다. 관계 능력의 붕괴도, 차별도, 회복되지 않은 기초학력도, 노동시장의 처우 격차도 통째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진단이 이 층위를 비켜가는 순간, 어떤 정교한 처방도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원인을 가리는 알리바이가 된다.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그것을 한 가지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현실이 단순해서가 아니라, 국가가 복잡한 진실을 마주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자퇴든 자살이든, 아이들이 무너지는 진짜 이유는 행정구역별 비율 하나로, 학업 스트레스라는 뭉뚱그린 진단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실적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뤄 둔 바로 그 영역—누가, 어떤 무게의 이유로 교실을 등지는가—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데서 제대로 된 진단이 나오고, 진단이 있어야 비로소 그에 맞는 지원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 길은 더디고 비싸 보인다. 원인별 비중을 조사하는 일은 상담 건수를 세는 일보다 오래 걸리고, 관계와 정서와 기초학력을 회복시키는 일은 기기 하나 도입하는 일보다 돈이 많이 든다.

 

그러나 원인을 모른 채 엉뚱한 처방을 반복하며 같은 실패를 십 년씩 쌓아 온 대가를 떠올리면, 진짜 원인부터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빠르고 가장 저렴한 길이다. 사교육이 독점한 자퇴의 서사를 공교육이 되찾는 일도, 죽음의 곡선을 꺾는 일도,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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