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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의 THE교육] AI보다 먼저 가르쳐야 할 교육의 본질

 

더에듀 | 노르웨이가 초등학생의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복지국가이자 디지털 강국으로 평가받는 나라가 내린 결정이다.

 

시대를 거꾸로 돌리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빨리 달려온 교육이 놓쳐버린 것을 되찾겠다는 선언이다.

 

노르웨이 총리는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이 읽고, 쓰고, 셈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나 당연해서 새삼스럽게 들리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 현실에서는 이 당연한 말이 가장 급진적인 주장이 돼버렸다.

 

AI는 몇 초 만에 글을 쓰고, 문제를 풀고, 자료를 정리한다. 아이가 책 한 페이지를 읽으며 문장의 뜻을 헤아리고, 연필을 쥐고 자기 생각을 더듬어 쓰고, 틀린 답을 지우며 다시 계산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편리함은 커졌지만 생각하는 시간은 줄었다.

 

교육은 원래 불편한 과정이다. 모르는 것을 붙들고 씨름해야 하고, 실패를 견뎌야 하며, 반복해서 읽고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집중력과 판단력, 인내심이 생긴다. 그런데 AI가 그 과정을 대신하면서 아이는 답을 얻을 수는 있어도 답에 이르는 힘은 얻지 못한다.

 

노르웨이는 바로 그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아이들이 교육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나빠서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기도 전에 자동차 운전대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상식이다.

 


대한민국 교육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 교육 당국은 AI 교육, 디지털 교과서, 맞춤형 플랫폼이라는 말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학교마다 태블릿을 나눠주고, 수업을 디지털화하면 미래 교육이 완성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긴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지, 자기 생각을 한 문단이라도 제대로 쓸 수 있는지, 사칙연산과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눈에 보인다. 기기를 보급한 숫자도 제시할 수 있고, 예산 집행 실적도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아이의 읽기 능력을 키우고, 글쓰기 습관을 길러주고, 수학의 기초를 차근차근 쌓게 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과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 행정은 어려운 본질보다 화려한 수단을 선택한다.

 

대한민국 교육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AI 열풍 위에 대입 경쟁까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선행학습과 입시 정보를 좇고, 중학생은 고등학교 내신을 걱정하며, 고등학생은 대학의 평가 기준에 맞춰 자신의 하루를 잘라낸다.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몇 점을 받았는지, 어느 학교에 갈 수 있는지가 교육의 거의 전부가 됐다. 독서는 문제를 풀기 위한 지문 읽기로 변했고, 글쓰기는 수행평가 점수를 받기 위한 기술이 됐다. 수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언어가 아니라 남보다 한 문제 더 맞히기 위한 경쟁 도구가 됐다. 이것을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세계가 놀랄 경제성장을 이뤘다. 교육열은 그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성공의 기억에 사로잡혀 과거의 경쟁 방식을 더 어린 나이까지 확대하고 있다. 대학 서열은 그대로 둔 채 입시 제도만 수시로 바꾸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면서 또 다른 평가와 기록을 추가한다.

 

정책이 바뀔 때마다 학부모는 불안해지고, 불안은 사교육 시장을 키운다. 아이들은 더 빨리 달리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교육의 목적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탈락하지 않도록 줄 세우는 데 있는 것처럼 돼버렸다.

 

AI 이런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 사용하면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스스로 읽지 않아도 요약본을 얻고, 생각하지 않아도 보고서를 만들며, 고민하지 않아도 그럴듯한 답을 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초가 튼튼한 학생에게 AI는 훌륭한 도구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 계산과 사고의 기초가 부족한 학생에게 AI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춰주는 가면이 될 수 있다. 학교가 그 가면을 미래 교육이라고 칭찬한다면 아이는 배울 기회마저 잃게 된다.

 


이제 우리가 봐야할 것


우리는 AI를 금지할 것인가, 허용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심은 언제,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게 할 것인가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종이책을 소리 내어 읽고, 손으로 문장을 쓰며,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친구와 얼굴을 마주 보며 토론하는 시간이 먼저 보장돼야 한다. 중학교에서는 AI가 만든 답을 검증하고 오류와 편향을 찾아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고등학교에서는 AI를 연구와 창작, 진로 탐색에 책임 있게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연령과 발달 단계에 따른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모든 학생에게 모든 기술을 빨리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평등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할 힘을 충분히 기른 뒤 기술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적 책임이다.

 

교사의 역할도 되살려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아이의 표정을 살피고, 좌절한 학생을 기다려 주며,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아 주지는 못한다. 교육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교사를 단순한 디지털 플랫폼 관리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교사가 수업을 이끌고, 책을 읽게 하며, 질문하고 토론하게 할 권한과 시간을 돌려줘야 한다.

 

대입 정책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읽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보다 문제풀이 속도와 요령이 더 큰 보상을 받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독서교육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한 번의 시험과 촘촘한 내신 경쟁이 아이들의 삶을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학교도 학부모도 긴 호흡의 교육을 선택하기 어렵다. 대학입시는 교육의 결과를 평가해야지, 초·중·고 교육 전체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노르웨이의 결정 그리고 대한민국


노르웨이의 결정은 AI 시대를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AI 시대일수록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능력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기계가 더 잘 쓰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 깊이 읽어야 한다. 기계가 빠르게 답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교육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최신의 기계를 가장 빨리 쥐여준 나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 기계를 지배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길러준 나라가 될 것인가.

 

교육은 유행을 따라가는 사업이 아니다. 한 인간의 정신과 한 나라의 미래를 세우는 일이다.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AI 사용법부터 가르치는 것은 미래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가장한 교육 포기다.

 

이제 교육의 속도를 잠시 늦춰야 한다. 책을 다시 펼치고, 연필을 다시 쥐게 하고, 아이가 자기 힘으로 한 문장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한민국 교육이 되찾아야 할 것은 더 빠른 기술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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