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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독서 국가 선포식'으로 독서 진흥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학교 독서 교육의 핵심인 사서교사의 역할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에 <더에듀>는 사서교사들의 생생한 교육 실천 사례를 공유해 현장의 독서 교육 방향성을 정립하고, 지속 가능한 독서 문화를 확산하고자 '전국사서교사노동조합' 소속 사서교사들의 수업 이야기를 살피는 시간을 마련했다. |
“영주는 다 아는 곳인데요.”
지역을 소재로 짧은 소설을 써 보자고 했을 때,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아이들에게 영주는 매일 지나치는 길이고, 자주 건너는 냇가이며, 익숙해서 오히려 새삼스럽게 바라보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책쓰기 동아리 ‘쓰담쓰담’의 시작은 글쓰기가 아니라, 익숙한 지역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었다.
먼저 학교도서관에서 영주와 관련된 책, 향토 자료, 문화유산 안내 자료, 지역 기사, 사진 자료를 함께 살펴보았다. 자료를 읽을 때는 내용을 정리하기보다 소설의 단서를 찾게 했다.
“전해 내려온다”, “누군가 보았다고 한다”, “아직도 남아 있다”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설명이 비어 있는 부분에는 동그라미를 쳤다. 자료에 적힌 사실은 기록하고, 자료에 없는 부분은 질문으로 남겼다.
그때부터 아이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졌다.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누군가 몰래 건너야 하는 길이 되었고, 삼판서 고택의 조용한 마당은 숨겨진 약속이 오가는 장소가 되었다.
가흥동 마애여래삼존불상의 훼손된 눈은 “누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남겼다. 지역 자료는 더 이상 외워야 할 정보가 아니라 상상의 문을 여는 단서가 되었다.
단서를 찾았다고 곧바로 소설이 써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장면부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짧은 문장 틀을 주었다.
“주인공은 ○○을 위해 영주의 ○○에서 ○○을 마주한다.”
이 문장은 작은 나침반이 되었다. 전학 온 아이가 무섬마을 악어 소동의 흔적을 따라가다 마을 사람들이 숨기고 있던 비밀을 알게 되는 이야기, 친구에게 인정받고 싶은 아이가 오래된 고택에서 사라진 편지를 찾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기가 깊어진 순간은 사건보다 인물의 마음을 물었을 때였다. 한 아이는 처음에 “악어를 찾고 싶다”고 썼다. 그런데 왜 그렇게까지 찾고 싶은지 묻자, 한참 뒤에 “전학 와서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고 고쳐 썼다.
사건은 그대로였지만 이야기는 달라졌다. 소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일을 끝까지 붙드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중간에는 전문 작가를 초대해 작가와의 대화 시간도 가졌다. 아이들은 “결말을 꼭 정하고 써야 하나요?”,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꿔 써도 되나요?”, “주인공이 평범해도 괜찮나요?”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작가는 정답을 주기보다 다시 물었다.
“그 인물은 왜 그 일을 포기하지 못할까?”
그 질문 뒤로 아이들의 원고에는 사건보다 마음이 조금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료를 읽고 인물을 세운 뒤에는 영주를 걸었다. 삼판서 고택 앞에서 아이들은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설 때 말소리가 저절로 낮아지는 느낌을 기록했다. 오래된 건물 앞에서 생기는 묘한 긴장감,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보이는 순간도 적었다. 아이들은 장소를 설명하는 대신, 그곳에 선 인물이 무엇을 느낄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초고가 완성되자 아이들은 어김없이 물었다.
“선생님, 이제 끝난 거예요?”
하지만 책쓰기는 초고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노트북을 펴고 서로의 글을 다시 읽었다. 좋았던 점, 더 궁금한 점, 더 또렷해지면 좋을 점을 나누었다.
“재미있어요”라는 말 대신 “고택에 들어갈 때 조용해지는 장면이 좋았어”, “주인공이 왜 그 비밀을 끝까지 찾는지 더 알고 싶어” 같은 말이 나왔다. 초고는 버리는 글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글이었다.
짧은 소설이 모이고 표지와 삽화까지 갖추자 아이들의 글은 인쇄 책으로 출판되었다. 화면 속 파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책이 된 것이다. 출간 이후에는 아이들이 직접 출간기념회를 준비했다. 초대장을 만들고, 손님을 맞이할 역할을 나누고, 자기 작품을 소개할 순서를 정했다.
출간기념회에서는 아이들 글 중 한 편을 각색해 그림자극으로 선보였다. 자기들이 쓴 이야기가 무대 위 그림자와 목소리로 살아나는 순간, 아이들은 조금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글은 종이 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읽고, 고치고, 다시 표현하면 또 다른 장면이 될 수 있었다.
작품 발표와 작가 사인회도 이어졌다. “제가 무슨 작가예요?” 하며 웃던 아이가 막상 책 앞에 앉자 이름을 천천히 적었다. 어떤 아이는 이름 옆에 작은 그림을 그렸고, 어떤 아이는 짧은 인사말을 덧붙였다. 사인을 받는 친구들과 손님들은 아이들의 작품을 진지하게 대했다. 그 태도는 아이들에게 큰 자부심이 되었다.
어느 해는 온라인 e-book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실물 결과물은 굿즈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소설 속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해 컵에 프린트하고, 작가 도장을 만들어 전시했다. 전시 공간에는 e-book 안내 자료, 캐릭터 컵, 작가 도장, 작품 감상문을 함께 놓았다.
관람한 학생들은 “캐릭터가 진짜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돌아보면 이 활동은 글쓰기 수업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을 다시 읽었고, 익숙한 공간에서 질문을 찾았고, 그 질문을 인물과 사건으로 바꾸었다. 전문 작가를 만나 자기 이야기를 다시 묻고, 친구들과 고치고, 책으로 출판하고, 독자 앞에 섰다.
아이들이 쓴 문장은 아직 서툴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신이 사는 곳을 새롭게 바라본 눈,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간 힘, 독자 앞에 서 본 용기가 들어 있다.
아이들이 걷던 골목과 냇가가 소설의 첫 문장이 되는 순간, 학교도서관의 독서교육은 책을 읽는 일을 넘어 삶을 쓰고 나누는 일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