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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
나는 대안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다. 획일적이고 표준적인 교육 방식에 저항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찾아가는 아이들을 응원한다. 국·영·수보다 밀의 『자유론』과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 함께 토론하고 글 쓰는 시간을 더 강조한다. 그리고 기존의 전통에 무비판적인 태도를 경계하며, 항상 비판적인 태도와 성찰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집에 오면 달라진다. 아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저항보다는 순응하는 삶을 지지할 때가 있으며, 교과 공부에도 신경 쓰기 일쑤다. 물론 맞벌이 부부라는 핑계로 학원도 적지 않게 다닌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모순적인 내 모습에 고민이 될 때가 많았다.
오늘 수업에서 아이들과 함께 읽은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에 나오는 송 팀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직장에서 송 팀장은 교육 문제에 대해 진보적이며 사교육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지지한다. 하지만 집에서 승윤이 엄마의 자리에 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명 학원을 찾아다니고, 밤늦게까지 선행학습을 시킨다. 어떤 모습이 진정한 그녀일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을 일관되고 고정된 자아를 지닌 존재로 보지 않는다. 항상 어떠한 존재로도 될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유라는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삶은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다. 모순되고 부조리한 선택이라도 마찬가지이다. 동물을 사랑하면서도 육식을 할 수 있으며, 자연을 사랑하면서도 산을 깎아 골프장을 건설한다. 여기서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인간의 실존은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부조리의 경계를 뚫고 어떠한 선택도 가능한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문학이론가 미하일 바흐친은 ‘다성적 자아’라는 말을 했다. 우리의 자아 속에는 하나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목소리들은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 갈등을 겪기도 한다.
즉 ‘교사로서의 나’와 ‘부모로서의 나’가 충돌하고,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엄마로서의 나’가 갈등을 겪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반된 내면의 목소리들 속에서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흔들리면서 삶의 궤적을 그려 나가는 것이다.
오늘 토론에서 유진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잘못인가?’라는 질문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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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불편해도 괜찮아』에서 등장하는 송 팀장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잖아요. 회사에서는 사교육을 그렇게 비판하면서, 집에서 승윤이 엄마로 있을 때는 사교육을 많이 시키잖아요.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잘못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 안광복 선생님 강연에서 페르소나를 가지지 않는 것은 동물과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면서 말과 행동을 하잖아요.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곧이어 민성이의 주장으로 토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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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 저는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에 따라 대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잖아요. 교사: 어떻게? 주윤: 동생을 대할 때랑 할아버지를 대할 때가 같으면 안 되죠. 말과 행동이 달라야 하잖아요. 그 경우랑 이 경우는 다른 것 같아요. 교사: 어떤 점이 다르지? 주윤: 동생과 할아버지를 대할 때 행동이나 말이 달라지는 것은 예절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질문은 서로 모순되는 행동을 할 때를 말해요. 교사: 다른 사람이 예를 들어 볼 수 있을까? 승우: 한쪽에서는 환경을 지키자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상황에서는 쓰레기를 버리거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교사: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는 걸까? 승우: 다른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죠. 자기의 본심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도 많아요. |
철학적 주제에 대한 토론에서 중요한 점은 질문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애초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토론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주윤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자기모순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적 예절 때문인지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해 준 것이다. 그리고 승우는 주윤이의 개념 구분에 따른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 주었다. 구체와 추상이 적절하게 서로를 보완해 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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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잖아요. 민성: 맞아.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면 동물과 다름없다고 했잖아요. 적절한 사회적 행동이 필요한 거지. 그게 뭐라고 했더라. 주윤: 페르소나! 민성: 아, 맞다. 지성: 하지만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사람을 믿을 수는 없어요. 굉장히 치사한 것처럼 느껴져요. 아름: 맞아요.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잖아요. 주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지는 않잖아? 안 그래? 아름: 친구에게도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잖아요. 여기 있는 애들도 집에서의 모습과 학교에서의 모습이 다를걸요? 지성: 아무리 그래도 다른 사람 때문에 쉽게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바꾸는 사람이 좋아 보이지는 않아. 일관성이 없잖아. |
‘페르소나’는 사회적 가면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가면을 착용하여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이것을 할 수 없으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페르소나’는 자신을 속이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가면만이 존재할 뿐, 그 가면들 뒤에는 ‘텅 빈 나’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성이는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일관된 생각이나 신념 없이 항상 변하기만 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성이의 말에 나 역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속이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과 정말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주윤이가 무심한 듯 말을 툭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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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윤: 인간은 본래 모순적인 존재라고 생각해요. 교사: 왜 그렇게 생각해? 주윤: 인간은 본래 사회적 존재라고 하잖아요. 남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모순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교사: 왜 꼭 모순적이어야 하지? 주윤: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응해야 하니까요. 예를 들면 환경운동가라도 직장에서는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투입될 수도 있잖아요.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죠. 승우: 직장, 집, 친구 관계에서 항상 똑같이 행동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교사: 음...이러한 모습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민성: 저는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지성: 이해는 해. 근데 그게 올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문제 아닐까? 아름: 맞아. 나도 그게 마음에 계속 걸렸어. 남에게 무조건 휘둘리는 것 같아서. |
주윤이는 흡사 실존주의자처럼 이야기를 했다.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 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박을 처벌하면서 한편으로 합법적인 카지노를 운영한다. 마약을 사회악처럼 여기면서 담배 판매는 허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부조리 속에서 인간 역시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주윤이의 말처럼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성이는 이러한 내 고민에 또다시 구멍을 내고자 시도했다. 현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올바름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사실과 가치, 현상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떠올랐다.
아름이는 지성이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름이는 토론 과정에서 논리적인 반론이나 주장을 펴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한 감정 표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름이의 이러한 정서적 지지 선언은 때때로 어떠한 논리적 의견보다 더 설득력을 가지며 교실의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참 고마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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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리저리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바꾸는 사람이 올바른 것은 아니야. 친일파같이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이잖아. 교사: 사람에게는 일관된 신념도 필요하다는 의미일까? 유진: 그게 그 사람의 인성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민성: 하지만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잖아. 지성: 맞아. 타인을 신경 쓰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해.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어. 주윤: 만약 직장에서 자기 신념과 모순되는 역할을 요구하면 어떡해? 지성: 그건 본인이 결단을 해야 하는 거지. 주윤: 내 말은 그 결단이 절대 쉽지 않다는 거야. 그리고 직장에서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지성: 하지만 난 그런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해. |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일관되게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지성이와 주윤이는 서로 다른 관점에 서 있다. 지성이는 윤리적인 관점을 내세웠고, 주윤이는 현실적인 관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대립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윤이는 지성이의 윤리적 관점을 비판하지 않았고, 지성이는 주윤이가 강조하는 현실적인 관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단지 지성이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일관된 신념을 가지려고 노력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 중요한 말이다. 도달할 수 없더라도 일정한 지향점을 가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 베유의 말처럼 우리는 신이 있기 때문에 신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냥 신 그 자체를 지향할 뿐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그러한 이상이나 신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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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 예전에 배웠던 소크라테스도 그런 사람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신념을 일관되게 주장하기 위해 독배를 마신 거잖아요. 교사: 소크라테스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라는 거지? 주윤: 그건 성인들이나 가능한 거지. 일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요. 지성: 하지만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맞잖아. 교사: 어떻게 가능할까? 아름: 결국 결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종적으로 결단을 해야죠. 교사: 어떤 결단? 아름: 자신의 신념대로 일관되게 살아갈지...아니면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살아갈지요. 주윤: 정말 사람이 결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까? 예성: 저는 동의해요. 삶은 결국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내 선택이 곧 내 삶이 되는 거죠. |
승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결국 인류의 성인이나 스승은 자기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것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부처의 자기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는 온갖 유혹과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위해 노력해 나간 것이다.
물론 인류의 수많은 사상가들 중에서도 자기모순을 극복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자신의 사상과 삶의 흔적이 괴리되었던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은 그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단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 결단은 한순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나의 결단이 필요하다. 예성이는 이를 “내 선택이 곧 내 삶이 된다”는 말로 표현했다.
오늘 아이들과 대화를 하며 내 스스로가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주윤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교사로서의 나’와 ‘부모로서의 나’의 모순을 인정하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지성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고 변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의지를 일깨워 주었다.
이번 휴일에는 학원 숙제 대신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세계 지리책을 들고 함께 계곡으로 나가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