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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미래교육의 함정] ③배우는 방법을 배우다

더에듀 | ‘AI는 지식을 대체하는가? AI 시대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인간 고유의 역량은 무엇이며, 학습의 기본 원리는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바꾸어야 하고, 무엇은 지켜야 하는가?’

 

AI 시대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먼저 확인해야 할 질문들이 충분히 다뤄지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AI 기술 자체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총 6회의 연재를 통해 교육학과 교육정책의 관점에서 AI 시대 교육 담론을 다시 성찰하고, 기술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앞선 글에서는 같은 AI를 사용하면서도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가 AI의 성능이 아니라 인간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전문성의 차이에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학생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답은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 배움’이다.

 


오래된 가치, 새로운 언어


최근 AI 시대의 교육 담론과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자신의 배움을 스스로 이끌어 가는 ‘주도성’을 미래교육의 핵심 가치로 강조한다.

 

그러나 주도성이라는 표현이 새롭게 부각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가리키는 교육적 가치까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1997년에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은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강조했고, 헌법과 교육기본법 역시 평생교육과 평생학습의 가치를 오래전부터 담아 왔다. 표현은 달라졌지만 교육이 길러내고자 한 사람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스스로 배우는 사람, 새로운 문제를 만났을 때 다시 배우는 사람, 변화 속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사람. 교육은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을 길러내고자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대가 바뀔 때마다 같은 방향을 새로운 구호처럼 반복하는 것일까.

 


우리는 ‘배우는 방법’을 어떻게 가르쳐 왔는가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실행이다. 우리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관한 전문성을 꾸준히 축적해 왔다. 교과 내용을 선정하고, 수업 방법을 설계하며, 학생의 성취를 평가하는 체계도 지속해서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정작 학생이 자신의 배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스스로 학습을 시작하고 지속하며, 이해 여부를 점검하고, 배움이 막혔을 때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도하도록 돕는 전문성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결국 학생들은 오랫동안 학습해 왔으나 학습 자체를 체계적으로 학습해 보지는 못했다.

 

국가교육정책이 이 문제를 전혀 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자기주도학습, 학습 습관, 핵심역량, 학생 주도성은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서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은 주로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 인간상으로 제시되었을 뿐, 학생이 자신의 배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절하며 습관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교육내용과 실행체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국가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교과와 성취기준, 수업 시수와 평가를 통해 촘촘하게 설계해 왔다. 그러나 학생이 학습 자체를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담당 교과도, 정해진 시간도, 단계적인 성취기준도 분명하지 않았다. 모든 교과에 필요한 힘이었지만, 어느 교과도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영역으로 남은 것이다.

 

코로나19로 교실 수업이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었을 때 이러한 공백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실에서는 교사의 설명과 질문, 즉각적인 피드백, 또래와의 상호작용, 정해진 시간표가 학생의 배움을 외부에서 떠받치고 있었다. 교실이라는 외부 구조가 약해지자 많은 학생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어려움을 겪었다. 국가는 온라인 플랫폼과 학습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었지만, 학생이 스스로 학습을 시작하고 지속하며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는 힘까지 제공할 수는 없었다.

 

교실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학생들의 ‘배우는 힘’의 차이가 교실 밖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학생들은 교과를 배워 왔지만, 자신이 어떻게 배우는 사람인지를 충분히 배울 기회는 갖지 못했다.

 

결국 우리 교육은 학생에게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는 끊임없이 고민해 왔지만, 학생이 어떻게 스스로 배우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가는 교육의 중심 문제로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학생 주도성의 출발점은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 배움’이다


그렇다면 학생이 배워야 할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 배움’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암기법이나 노트 정리법 같은 공부 기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학습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배우는 방법’은 그보다 근본적이다.

 

새로운 내용을 만났을 때 무엇부터 살펴야 하는가, 낯선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기존 지식과 어떻게 연결하는가, 이해한 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다른 상황에 적용하는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어떻게 점검하는가, 배움이 막혔을 때 어떤 방법을 선택하고 다시 시도하는가.

 

배우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이처럼 배움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이해하고, 그 과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배우는 방법을 배우는 힘’이 AI 시대에 강조되는 학생 주도성의 토대다. 자신의 배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고, 필요한 방법을 선택하며, 학습 과정을 계획하고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을 때 학생은 비로소 배움의 주체가 된다.

 

따라서 학생 주도성은 단순히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거나 활동의 중심에 세운다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배우는 방법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학생에게 스스로 학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주도성을 길러 주기보다 배움의 책임을 학생에게 떠넘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배우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교육이 먼저 필요한 이유다.

 

AI 시대에 학생 주도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는 배움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배움의 주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AI는 개념을 설명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문제를 풀고, 학습 계획까지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설명을 이해하고 기억하며, 기존 지식과 연결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는 과정까지 학생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AI가 설명을 제공했다는 사실과 학생이 그것을 배웠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자신의 앎과 모름을 점검하고, 막힌 지점에서 다시 시도하며,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은 모두 학생 내부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AI는 배움의 가능성을 넓혀 줄 수는 있지만, 배움 그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지속가능한 배움...‘배우는 방법을 배워요’를 설계하는 교사


그렇다면 학생이 배움의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사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

 

학생 주도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교사의 가르침이 약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이 스스로 배운다는 말과 교사가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배움은 가르침의 반대말이 아니다. 좋은 가르침은 학생 안에서 배움이 일어나도록 설계하는 전문적 행위다.

 

교사는 학생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파악하고, 새롭게 배울 지식과 기존 지식을 연결하며, 적절한 과제와 질문을 제시하고, 학생이 자신의 이해 수준을 점검하도록 돕는다. 특히 학생이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알고, 자신의 학습 과정을 계획하고 점검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학생의 주도성은 교사의 부재 속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정교한 가르침 속에서 학생이 배우는 방법을 익히고 점차 배움의 주체로 성장할 때 형성된다.

 

OECD의 「학습 나침반 2030(OECD Learning Compass 2030)」 역시 학생 주도성을 학생 혼자만의 힘으로 보지 않는다.

 

학생은 교사와 또래, 가족과 지역사회 등 다양한 교육 주체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배움을 만들어 간다. 학생 주도성과 교사의 전문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의 전문적 가르침은 학생의 주도적 배움을 가능하게 하고, 학생의 주도적 배움은 다시 교사의 판단과 수업을 더욱 정교하게 만든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배움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을 해 왔다.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AI 시대에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교육은 이미 정해진 하나의 방법을 익히게 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문제와 상황을 만났을 때 필요한 방법을 스스로 찾고, 기존의 방법을 수정하며, 때로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 힘은 한 번의 수업이나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배우고, 익히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며, 자신의 배움을 점검하는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형성된다. 배우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고 조절하는 힘이 주도성이라면, 그 힘이 반복을 통해 몸에 밴 것이 학습 습관이다.

 

국가교육과정이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학습 습관의 가치도 이러한 의미와 맞닿아 있다. 모르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다시 배우는 것, 익숙한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 때 배움은 일회성 과제를 넘어 삶의 방식이 된다.

 

‘학습 습관’은 오래된 교육 언어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배우는 힘’도 결국 이 오래된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용어가 교육의 본질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교육의 본질은 오히려 오래되고 단순한 말 속에 남아 있다.

 

불교에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다. 깨달음은 순간에 이를 수 있지만, 그것이 삶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수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배움도 다르지 않다. 이해는 순간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해가 곧 삶을 바꾸지는 않는다. 반복해서 익히고, 적용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쌓일 때 비로소 배움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전문성으로 축적된다.

 

교육은 단 한 번의 깨달음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다. 배우고 익히는 일을 삶의 습관으로 만들고, 그 습관을 평생의 전문성으로 축적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은 없다.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은 배우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교육이다.

 

다음 글에서는 인간은 무엇을 위해 배우는지, 그리고 AI와의 비교를 넘어 인간다움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연재 순서 예고

 

- 제1편. AI는 지식을 대체하는가?

• AI가 바꾼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 제2편. 왜 같은 AI를 사용하는데 결과는 다른가?

• AI 활용 능력의 차이는 결국 인간의 전문성과 지식 수준의 차이인가.

- 제3편. AI 시대 학생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 지식 교육은 축소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더욱 중요해지는가.

- 제4편. 인간 고유 역량이라는 말의 함정

• AI와의 비교 속에서 인간다움을 설명하려는 교육 담론을 비판하다.

- 제5편. AI가 인간의 학습 원리까지 바꾸었는가?

• 인지과학과 교육학의 관점에서 다시 묻다.

- 제6편. AI 시대 교육개혁의 진짜 과제는 무엇인가?

• 기술이 아닌 교육의 본질에서 미래교육을 다시 설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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