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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나의 THE교육] 정치가 실패할 때마다 학교교육을 고쳐야 하는가

 

더에듀 | 배재고 학생들의 5·18 민주화운동 조롱 논란과 지난 정부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민주주의와 헌법,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을 공개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중학교 역사교육에서는 근현대사 비중을 기존 20%에서 30% 이상으로 확대하기 위한 교육과정 변경 절차가 추진되고 있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헌법교육 강화가 포함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중요하다. 헌법도 중요하고 역사교육도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가치가 중요하다는 사실과 그것을 곧바로 새로운 교육정책과 교육과정 개정으로 연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회적·정치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학교가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하는지를 묻기 전에, 그 사건의 원인과 책임이 정말 학교교육에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정치의 실패가 교육의 결핍으로 번역될 때


지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과 탄핵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새 정부가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다시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치가 만든 위기의 해법이 곧바로 헌법교육과 민주시민교육, 역사교육 강화로 이어지는 순간, 정치의 실패는 교육의 결핍으로 번역되기 시작한다.

 

민주시민교육은 어느 날 갑자기 중요해진 교육이 아니다. 국가정책으로 본격 추진된 지도 이미 7~8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마치 새로운 교육이 필요한 것처럼 다시 국가적 의제로 소환된다.

 

정권에 따라 정책의 위상도 달라졌다. 대체로 진보정부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의 조직과 사업이 확대되고, 보수정부에서는 인성교육이 상대적으로 전면에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시민교육의 명칭과 조직, 예산은 축소되거나 다른 정책 속으로 흡수되었고, 정권이 다시 바뀌면 헌법교육과 민주시민교육, 역사교육이 주요 국가과제로 재부상했다.

 

민주시민교육과 인성교육 가운데 어느 하나만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인성교육도 필요하고 시민교육도 필요하다. 한 사람의 품성과 책임, 타인과의 관계를 기르는 일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 참여와 공공성을 배우는 일은 서로 대체할 수 없는 교육의 두 축이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하나는 전면에 세우고 다른 하나는 뒤로 밀어내는 정책의 교대 구조다. 국가교육이 정권의 가치 언어에 따라 ‘인성’과 ‘시민’ 사이를 오간다면, 두 교육은 교육과정 안에서 지속해서 축적되기보다 정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정책 표지로 소비될 수 있다.

 

그 결과 학교는 이미 해오던 교육을 충실히 심화하기보다 새로운 명칭과 사업, 조직과 연수에 반복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국가교육의 지속성보다 정권의 정책 언어가 앞서는 순간, 학교에는 교육의 축적보다 정책의 교체만 남는다.

 

국가교육이 해야 할 일은 인성과 시민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치를 교육과정 안에서 일관되게 연결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지속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인성교육과 시민교육, 헌법교육이 정말 국가교육의 기본이라면 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강화와 축소를 반복하는가. 정치적 중립성을 가르치겠다면서 시민교육정책 자체는 왜 정권교체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는가.


헌법을 위반한 것은 학생이 아니다


헌법을 위반한 것은 학생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흔든 것도 학교가 아니다. 비상계엄의 원인은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충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와 제도가 헌법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있다.

 

그런데 왜 해법은 다시 학교를 향하는가. 정치권력이 헌법질서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학생의 시민성 부족과 학교교육의 문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학교는 언제까지 정치의 사후처리 기관이어야 하는가.

 

배재고 학생들의 행동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일부 학생의 부적절한 행동이 곧바로 중학교 근현대사 비중을 10%포인트 이상 늘려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을 몰라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알고도 조롱한 것인지부터 살펴야 한다. 온라인 문화와 또래집단의 영향인지, 학교문화와 생활교육의 문제인지, 역사교육의 문제인지에 대한 분석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과정의 문제라고 판단하려면 현재 교육과정에 무엇이 부족한지, 실제 수업에서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는지,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지 못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배재고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이었던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 제정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단일한 근거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

 

배재고 사건과 비상계엄은 사건의 성격도 책임의 주체도 전혀 다르다. 하나는 일부 학생의 역사 조롱과 혐오 표현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권력에 의한 헌정질서의 위기다.

 

서로 다른 두 사건이 모두 민주시민교육과 헌법교육,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동일한 교육정책의 근거로 수렴한다면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가. 아니면 정치적·사회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장 손쉽게 학교교육의 부족을 호출하고 있는가.

 


정치적·사회적 사건이 곧 교육과정 개정의 근거인가


정치적·사회적 사건은 정책 논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국가교육과정을 개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행 교육과정에는 사회적 현안과 시의성 있는 주제를 학교에서 다룰 수 있는 ‘계기교육’이라는 장치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가교육과정부터 고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계기교육 등을 통해 사건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하고 토론할 수 있다.

 

교육정책의 대응 방식이 일관적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할 때마다 정부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곧바로 도덕이나 사회 교과의 비중을 늘리거나 국가교육과정을 개정하지는 않았다. 기존 교육과정 안에서 예방 프로그램과 생활교육, 학교문화 개선을 추진했다.

 

인성·시민성·공동체 의식·역사 인식과 관련된 문제를 두고, 어떤 경우에는 기존 교육과정의 실행 문제로 보고 어떤 경우에는 교육과정 자체의 결핍으로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교육과정 개정의 필요성이 학생의 발달과 교과의 체계, 기존 교육과정의 운영 실태가 아니라 정권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과 가치에 따라 선택적으로 판단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육과정 개정의 기준이 정권의 관심에 따라 달라진다면, 국가교육과정의 안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교육과정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국가는 교육제도와 국가교육과정을 책임 있게 설계해야 한다. 문제는 정권이 경험한 정치적 위기와 그에 대한 해석이 현행 교육과정의 내용과 운영 실태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학교가 가르쳐야 할 내용과 비중을 결정하는 데 있다. 시의성 있는 교육적 대응과 정권의 정치적 문제의식을 국가교육과정에 투영하는 일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누구에게 적용되는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에게만 요구되는 의무가 아니다. 교육기본법은 교육이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교사에게는 엄격한 정치적 중립의 잣대를 적용하면서, 정작 정부와 국가기관은 정권의 정치적 경험을 교육정책으로 곧바로 전환해도 되는가.

 

교사가 특정 정파의 견해를 학생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정부도 특정 정권의 문제의식을 국가교육과정에 투영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교사에게만 적용되는 통제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국가교육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육정책을 만들어 내는 기관이 아니다. 정권을 넘어 지속될 국가교육의 원칙을 세우고, 정치의 요구와 교육의 원칙 사이에 필요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정권과 정치권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과 문제의식을 충분한 검증 없이 새로운 국가원칙과 교육과정 개정으로 옮기는 통로가 된다면 설립 취지는 무색해진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정권의 교육정책을 장기정책으로 포장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요구와 국가교육의 원칙 사이에 거리를 두는 제도적 완충장치여야 한다.

 

국가교육과정은 사회적 분노와 정치적 사건에 따라 즉각 움직이는 제도가 아니다. 축적된 학문적 연구와 학생의 발달 단계, 교과의 구조, 학교 현장의 실행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설계되는 국가교육의 헌장(憲章)이다.

 

그런데 최근 교육정책은 기존 교육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보다 새로운 원칙과 지침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작 현재 교육과정에 무엇이 이미 포함되어 있고 학교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는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새로운 원칙을 확정하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한다. 우리 학교가 지금까지 혐오와 차별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도덕과 사회, 역사와 국어를 비롯한 교과와 인권교육, 학교폭력 예방교육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타인에 대한 존중, 민주주의와 인권, 공동체와 책임, 다양성과 시민성을 지속해서 다뤄 왔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원칙의 선언인가, 아니면 이미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 왜 학생의 인식과 행동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분석인가.

 

교육내용의 부재와 교육의 실행 문제는 구분되어야 한다. 기존 교육과정의 내용과 실행을 충분히 분석하지 않은 채 새로운 원칙부터 만드는 것은 문제의 진단보다 정책의 선언을 앞세우는 일이다.

 

이번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안)은 혐오와 차별을 명확히 배격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사회적으로 견해가 나뉘는 사안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도록 하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명확한 사안으로 보고 무엇을 논쟁적 사안으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하다면, 그 판단과 책임은 다시 교사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원칙은 국가가 만들고 경계선의 위험은 교사가 감당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보이텔스바흐 원칙, 맥락 없이 가져와도 되는가


이번 기본원칙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원칙이 중요한 참고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해외의 교육원칙을 벤치마킹하는 일은 그 원칙의 문장만 가져오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이 형성된 역사와 제도, 헌법질서와 교원의 법적 지위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우리 교육정책은 해외의 개념과 원칙을 제도적 맥락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차용해 현장에 새로운 갈등을 낳았던 경험이 이미 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원칙은 교사의 정당 가입과 정치참여가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한편, 교실에서는 특정 견해를 학생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정치·법적 환경에서 형성되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상 공무원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근거로 초·중등 교원의 정당 가입과 정치활동을 법률로 폭넓게 제한하고 있다. 교사는 교실 안에서뿐 아니라 교실 밖의 정치활동에서도 엄격한 제약을 받는다.

 

한쪽은 법으로 보장된 정치적 자유를 전제로 교실에서의 자기 절제를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정치활동 자체를 법으로 폭넓게 제한하고 있다. 이처럼 출발점이 다른 제도에서 독일의 원칙만 떼어내 국가 기본원칙으로 삼는다면, 해외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 아니라 제도적 맥락을 배제한 정책 차용에 가까워질 수 있다.

 

특정 국가의 교육원칙을 도입하려면 그 원칙이 형성된 헌법질서와 교원의 법적 지위, 정치참여의 자유, 교육행정 체계까지 함께 검토해야 한다. 원칙만 가져오고 제도적 맥락을 지운다면 같은 문장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두 나라 교사의 정치적 지위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전제까지 충분히 검토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정치가 흔들릴수록 교육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정책이 정치의 진폭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뀌면 시민교육의 위상이 달라지고,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면 새로운 교육이 추가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지가 달라진다면 국가교육과정은 국가교육의 원칙이 아니라 정치 상황의 반영물이 되고 만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교사가 교실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국가교육과정 자체가 정권교체와 정치적 사건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것 역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다.

 

민주주의는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헌법도 가르쳐야 한다. 역사도 더욱 깊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정치가 실패할 때마다 학교교육을 뜯어고치는 방식으로는 국가교육의 원칙을 세울 수 없다.

 

국가교육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사회적 논란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국가원칙을 추가하는 일이 아니다. 정치적 사건을 곧바로 교육과정으로 번역하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정치가 흔들릴 때일수록 학교교육과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국가교육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지키는 일이다. 정치는 정치의 책임을 져야 하고, 교육은 교육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치가 실패할 때마다 국가교육과정을 고쳐야 하는가. 지금 국가교육위원회가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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