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최근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HOPE)〉가 극장가에서 모처럼 대형 스크린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한국 영화가 거둔 기술적 성취와 독창적인 SF적 상상력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인 동시에, 극단적인 자극성과 피로감, 불친절한 서사 구조라는 한국 대중 영화의 고질적인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양날의 칼이라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영화가 던진 ‘구원과 믿음’이라는 묵직한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귀를 찌르는 상스러운 욕설과 후반부 외계인의 난해한 대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예술적 감흥을 느끼기 전에 정서적 피로감과 단절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것이 영화 창작의 의도일까, 하는 의혹이 일었다.
이 글에서는 이 작품이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대한민국이 낳은 격조 높은 SF 마스터피스’로 우뚝 서기 위해, 그리고 교육적·인문학적 울림을 주는 진정한 창작물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질적 발전과 개선 방향을 몇 가지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우선 감정적 과잉과 욕설의 남발은 ‘자극’을 넘어선 ‘절제’의 미학을 요구한다.
많은 영화가 물의 극단적인 처지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시종일관 거친 욕설과 고함을 도구로 삼고 있다. 〈호프(HOPE)〉 역시 미지의 존재와 마주한 인간들의 공포와 혼란을 날것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명분 아래,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정서를 짜증나게 하는 욕설을 쏟아내고 있다.
필자는 많은 영화 관람 중에서 이번처럼 욕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극심한 경우는 영화의 창작성을 해치는 것으로 너무도 곤혹스러웠다.
지나친 자극적인 언어는 첫째, 서사적 몰입 저해를 가져왔다. 욕설의 과도한 남발은 인물의 공포를 입체적으로 그리기보다 단조롭고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평면화한다. 평소 언어 순화에 신경을 쓰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인물의 처지에 공감하기보다 청각적·정서적 공해로 인해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밀려드는 피로감을 마주하게 된다.
둘째, 일종의 표현의 게으름이다. 인물의 심리적 붕괴와 실존적 공포는 침묵, 미세한 표정의 변화, 혹은 상징적인 대사 한마디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모든 감정의 폭발을 욕설과 고함으로 처리하는 것은 창작자의 표현적 안일함이자 게으름의 반증일 수 있다.
대한민국 SF 영화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과잉’을 ‘지적인 텐션’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공포와 대면했을 때 인간이 느끼는 경외감(Awe)과 실존적 불안은 상스러운 욕설이 아니라, 정적 속에서 흐르는 숨소리와 인간 본연의 품위를 지키려는 절박한 대사 속에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 영화의 언어적 절제 결여는 영화의 격조를 높이고, 전 세대의 관객이 거부감 없이 영화의 본질에 다가서게 만드는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후반부 외계 황후 조르와 마베이요가 나누는 성경 구절(“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과 개종을 시사하는 것과 같은 대사는 영화의 사유를 심화시키는 훌륭한 장치이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불친절하게 제시되어 대다수 관객에게 난해한 수수께끼로 남게 만들었다.
영화의 결말은 창작자만의 독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객이 영화의 철학적 주제를 수용할 만한 서사적 징검다리 없이 갑작스럽게 묵시록적인 성경 구절을 던지는 것은, 예술적 깊이를 더하기보다 오히려 극의 흐름을 뚝 끊어놓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영화 후기에 나오는 다양한 의견 중에는 종결 부분의 외계인들의 대화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헷갈린다는 그야말로 외계인의 알 수 없는 소리로 끝나게 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국 외계인들의 대화와 성경적 메시지가 관객에게 ‘지적 쾌감’과 ‘인문학적 울림’을 주기 위해서는, 이 난해한 대사가 작품 내부의 서사와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사적 복선 배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중반부에서 인간과 외계인이 언어를 초월해 교감하려 했던 작은 시도들, 혹은 ‘눈에 보이는 적대감’ 너머의 무언가를 갈구했던 순간들을 복선으로 많이 깔아두면 좋았을 듯 하다.
한 마을을 살상과 파괴로 초토화시킨 괴물의 클로즈업 된 모습에서 외롭고 슬픈 눈길을 보았다는 영화의 대사가 그나마 친절했을 뿐이다.
또한 대사의 현대적·직관적 정제를 위해서는 단순히 성경 구절을 직역해 자막으로 띄우는 것이 아니라, 이 구절이 뜻하는 바인 “우리가 서로를 괴물로 보았던 것은 눈앞의 겉모습(보이는 것)만 믿었기 때문이며, 진정한 생존과 평화는 보이지 않는 서로의 영혼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본질을 외계인들의 표정과 대화 맥락을 통해 관객이 누구나 직관적으로 깨닫도록 연출하면 좋았을 듯하다.
이 영화를 한 편의 거대한 ‘인간성 회복에 관한 시각 교과서’로 재해석한다면, 우리는 이 비극 속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극성을 걷어내고 주제를 명료화한 〈호프(HOPE)〉의 교육적 가치를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하고자 한다.
첫째,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신뢰 교육이다.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눈에 보이는 성과, 물질, 수치(스펙)만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속 외계인들이 읊조린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는 청소년과 현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적 화두를 던진다. 인간성, 사랑, 배려, 연대와 같은 핵심 가치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확실한 ‘실체이자 증거’라는 점을 영화를 통해 성찰하게 만든다.
둘째, 타자(他者)에 대한 이해와 공존의 지혜 교육이다.
처음 만난 외계인을 무조건적인 포식자로 규정하고 섬멸하려 했던 인간의 모습은, 오늘날 사회적 소수자나 나와 다른 집단을 향해 무차별적인 혐오와 적대감을 쏟아내는 우리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우주선이 타버린 후 지구라는 닫힌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결말은, “싫든 좋든 우리는 지구라는 단 하나의 방주에서 공존해야 하는 운명 공동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는 다문화 사회와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타자 이해의 교육’이 될 수 있다.
셋째,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희망(HOPE)’의 표명이다.
우주선이 불타 없어졌다는 것은 도망칠 구멍이 사라졌음을 뜻한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절망적인 순간, 즉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한계 상황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생명체는 내면의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영화는 모든 물리적 희망이 사라진 잿더미 위에서 비로소 ‘보이지 않는 정신적 희망’이 시작됨을 보여줌으로써,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생의 의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영화계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CG 기술과 독창적인 기획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술의 과시나 자극의 극대화가 아니라, 언어의 품격을 지키고 서사의 깊이를 더하는 ‘질적 성숙’이라 할 것이다.
불필요한 욕설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정교한 심리 묘사와 철학적 성찰을 채워 넣을 때, 그리고 모호한 상징을 관객이 삶의 지혜로 치환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할 때, 한국 SF 영화는 비로소 전 세계인의 영혼을 흔드는 K-컬쳐의 예술로 거듭날 것이라 믿는다.
영화 〈호프〉가 남긴 거친 불꽃이 단순한 화마(火魔)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고 인간의 품격을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구원의 등불(Hope)로 재창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