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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학의 THE교육] 학생부 대량 복제 사태가 집어삼킨 교육자의 양심과 성찰

 

더에듀 | 지금도 생생하게 세월을 거슬러, 매년 고3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작성 기억에 따른 특별한 감응과 경험을 소유하고 있다.

 

오랜 진학지도 담당자(고3 학급 담임 및 학년 부장)로서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을 배제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학생부를 작성한 기억 말이다. 특히 집중적인 학생부 작성 기간에는 잠을 설치며 마치 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 한 편의 인생 보고서를 쓰듯이 개요 짜기, 작성하기, 탈고 등의 총체적인 순서를 거치며 교육자로서의 혼을 갈아 넣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때는 자다가 생각이 나면 벌떡 일어나 입력을 하기도 했으며, 꿈속에서조차 학생 개개인의 세부능력 및 종합 특성을 다듬는 몰입의 과정이 연속되었다.

 

오랜 경험을 거듭하면서 평소에 조금씩 수업반 학생들이든 담임반 학생들이든 한 명 한 명의 데이터를 축적해 입력함으로써 한꺼번의 집중적인 작업의 부담을 더는 슬기로운 지혜로 발전시켰다.

 

적어도 교육자로서 지도한 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예의였으며, 교육자의 양심에서 허용하는 작은 의무이기도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사와 학생 간의 깊은 신뢰로 이어지고 일부 학생들은 나중에 자신의 학생부를 확인하고 어떻게 이렇게 성실하고 세밀하게 작성해 주셨냐고 졸업 시즌에 이르러서는 감사의 인사를 쪽지나 편지로 전달해 준 기억이 남아있다.

 

교사가 학생의 눈을 바라보며 그 고유한 결을 읽어내고, 그 성장 기록을 따뜻한 언어로 학생부에 담아내는 행위는 단순한 행정 업무가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하는 교육자의 가장 거룩한 직무이자 숭고한 권한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감사원의 ‘서울교육청 정기감사’ 결과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 일부 교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디까지 떨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

 

감사원 결과에 따르면 지난 4년간(2021~2024년) 서울 시내 교원 803명이 학생부의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을 1106건이나 동일하게 중복 기재한 사실이 확인됐다.(동아일보, 2026.7.21.)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중 18명의 교원은 학급 전체 학생 수의 70%가 넘는 아이들에게 똑같은 문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복사해 붙여 넣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단 하루 만에 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600자 분량의 종합 의견을 똑같이 도배한 교사도 3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여기에 학교폭력 조치 기록을 부당하게 삭제해 준 정황까지 적발되어 주의·통보 조치가 내려졌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자의 모습인가? 단순한 업무 소홀이나 행정적 실수가 아니다. 교사로서의 자질과 자격이 심각하게 결여되었음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며, 교육자의 양심상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교육적 배임’이자 ‘직무유기’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통해서 반 전체 학생에게 동일한 문장을 복사해 붙여 넣은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학교에서 1년 동안 흘린 땀방울과 눈물, 성장의 기록이 담겨야 할 학생부에 담임교사라는 사람이 단 몇 초 만에 ‘Ctrl+C, Ctrl+V’로 똑같은 문장을 도배해 놓았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아이들에게 생활기록부는 단순한 종이 한 장이 아니다. 밤을 새워 과제를 수행하고, 친구들과 갈등을 조정하며, 자신의 진로를 고민했던 1년 간의 삶의 궤적이자 청춘의 저금통장이다. 더욱이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세특과 종합의견은 학생의 고유한 역량과 인성을 평가하는 가장 결정적인 잣대이자 않은가?

 

​그 단 한 줄의 성의 없는 복사글 때문에 한 아이의 수년 간의 노력이 평가절하되고, 꿈꾸던 진학의 문이 닫힐 수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혹시라도 남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행정이 귀찮다는 이유로 수십 명 아이들의 인생이 걸린 기록을 붕어빵 틀에 찍어내듯 작성한 행태라면 이를 도대체 어떻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용납할 수 있겠는가?

 

역지사지의 마음이 한 터럭이라도 남아있다면 결코 행할 수 없는 끔찍한 불감증이라 할 것이다.

 

​미국의 법학자 로스코 파운드(Roscoe Pound)는 전문직(Professional)의 정의를 내리면서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집단이며, 그 핵심은 엄격한 자율적 윤리 의식에 있다”고 강조했다.

 

교직이 아직까지도 일반 노동과 달리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신분 보장을 받는 이유는 아이들의 내면을 다루는 숭고한 ‘전문 직업 윤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감사원 결과는 교직 사회가 스스로 그 숭고한 전문성과 신뢰를 바닥으로 던져버렸음을 증명하고 있다. ​

 

학생부는 교사에게 부여된 고유하고 독점적인 권한이라 할 것이다. 평가의 권한은 독점하면서 그에 따른 최소한의 성의와 책임조차 내팽개친다면, 교사는 더 이상 사회적 존경을 요구할 자격을 잃게 된다.

 

“교권이 추락했다”고 한탄하기 전에, 스스로 교권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 이 서글픈 자화상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일부 교사가 지탄을 받고 사회적 신뢰를 상실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치명적인 사례가 바로 이번 ‘학생부 대량 복제 사태’가 증거하고 있다.

 

​더욱 분통이 터지고 한심한 것은 이러한 중대한 교육 범죄에 대해 내려진 처분이 고작 ‘주의·통보’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다. 불성실하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행태로 아이들의 기록을 도배하고 학교폭력 기록을 부당 삭제하여 입시의 공정성을 훼손한 행위가 과연 ‘주의’ 한 번 받고 넘어가면 될 일인가?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이야말로 교직 사회 내부의 도덕적 해이를 더욱 부추기는 안일한 방조라 아니할 수 없다.

 

노자(老子)는 《도덕경》 제74장에서 “망나니를 대신하여 나무를 베는 자는 손을 베이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代匠斫者, 希有不傷其手者矣)”라고 했다.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부조리를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어설프게 감싸 안는 것은, 결국 교육 시스템 전체의 손목을 자르는 비극으로 돌아올 것을 심히 우려하게 된다.

 

이에 교육자로서 진정성 있는 사도의 모습을 몇 가지 측면에서 강조하고자 한다. ​

 

첫째, 학생부 대량 복제 및 품격을 해치는 불성실한 행위에 대한 징계 기준을 단호하게 강화해야 한다. 학급 전체나 다수 학생의 종합의견을 동일하게 기재하는 행위는 단순 실수가 아닌 ‘명백한 부정행위’이자 ‘직무유기’로 규정하여 중징계 처분을 내려야 한다.

 

​둘째, 고의적·상습적 중복 기재 교사에 대해서는 교단에서 퇴출(직위해제 및 파면)할 수 있는 엄격한 입법적·행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아이들의 꿈을 복사기로 찍어내는 교사에게 어떻게 다시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겠는가? 이 시대 교권 추락을 예방하고 교직의 엄정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적격 교사에 대한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학생부 검증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선이다. NICE 시스템 내에 동일 문장 자동 인식 및 경고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학교 자체 검증위원회의 실질적 가동을 의무화하여(실제로는 다수가 학급 간 담임 교차 점검 등으로 이루어짐) 이러한 비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상시 감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 교육계는 ​밤을 지새우며 아이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관찰하고, 하나라도 아이의 가능성을 찾아내기 위해 장문의 피드백을 하는 수많은 침묵의 참교사들이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번 사태는 대다수 열정적인 교사들의 명예마저 짓밟는 안타까운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교직 사회는 내부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하는 손끝에는 한 인간의 삶을 향한 무거운 책임감과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 손의 궤적을 가볍게 놀려 아이들의 1년을 짓밟은 이들에게는 엄중한 법적·윤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선생님의 한 줄이 제 삶을 바꾸었습니다”라는 제자의 고백이야말로 교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교직 사회가 이번 감사원 결과를 뼈를 깎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 스승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교육자의 양심을 다시금 단단하게 바로 세우기를 강력히 경고하고 소망하는 마음이다. ​

 

아이들의 꿈과 재능, 잠재력은 결코 복사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교사의 진심 어린 눈빛과 애정 어린 기록 속에서만 온전히 꽃피울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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