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교육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에도 기준이 있고, 학급 편성에도 기준이 있으며, 교원 정원에도 기준이 있다. 그런데 정작 학교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논란이 되는 보건교사·영양교사·전문상담교사·사서교원(이하 ‘해당 직군’)의 역할과 운영 기준에는 국가가 명확하게 설명한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해당 직군의 전문성이나 법적 지위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당 직군을 교원으로 운영하는 국가 정책의 기준과 근거를 묻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한 현장 교사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교육부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단순했다.
‘국가는 보건교사·영양교사·전문상담교사·사서교원을 어떠한 정책적 기준과 근거에 따라 교원으로 운영하고 있는가.’
교육부의 회신은 질문의 핵심을 비껴갔다. 영양교사는 어떤 업무를 하고, 보건교사는 무엇을 하며, 전문상담교사와 사서교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설명한 뒤, 수업 담당과 수업시수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교장이 학교 여건을 고려해 결정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질문은 직무가 아니라 교원으로 운영하는 정책적 기준과 근거였다.
직무 설명은 정책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교원이면 교원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객관적인 정책 근거와 교육적 효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보건, 상담, 영양, 사서 업무는 학교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문 영역이다. 이 글은 해당 직역의 전문성이나 헌신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전문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현재의 제도 운영이 적절한지 국가 차원의 정책 근거를 확인하자는 제안이다.
UNESCO와 ILO가 공동 채택한 「교원의 지위에 관한 권고(1966)」는 교원을 교육활동을 담당하는 전문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국가마다 교원과 전문지원인력의 운영 방식은 다양하다. 일부 국가는 교사와 보건·상담·영양·사서 분야를 별도의 전문지원 체계로 운영하기도 하고, 다른 국가는 교원 체계 안에서 운영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방식이 정답이냐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현재의 제도를 선택했다면, 왜 그 제도가 학생 교육과 학교 운영에 가장 적합한지 객관적인 정책 근거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직무를 설명하는 것과 정책의 근거를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그래서 교사 커뮤니티의 한 교사가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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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3년간 보건교사, 전문상담교사, 영양교사, 사서교사의 실제 평균 수업시수는 얼마인가. - 이들을 간호사, 상담사, 영양사, 사서 등 전문지원인력 체계로 운영하는 방식과 비교했을 때 교육적 효과는 무엇인가. - 해당 직군을 교원으로 운영하는 것이 학생 안전과 교육재정의 효율성 측면에서 더 우수하다는 연구나 정책 검토는 존재하는가. - 이러한 교원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UNESCO·ILO 권고 등 국제적 논의는 어떻게 검토되었는가. |
이 질문들은 특정 직역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교육제도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정책 검증이다. 국가는 이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면 된다.
학교장에게 떠넘겨진 국가의 책임
교육부는 답변에서 다시 학교장의 자율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자율은 기준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기준 없이 자율만 존재하면 학교마다 다른 판단이 만들어지고, 결국 같은 제도 안에서도 운영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학교에서는 해당 직군의 수업 운영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누가 얼마나 수업을 담당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는 수업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하지 않는지, 어떤 역할을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최종 판단은 학교장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학교장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책임자이지, 직역 간 역할과 기준을 새롭게 설계하는 정책 결정자가 아니다. 국가가 제시해야 할 기준을 학교가 대신 결정하도록 만드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학교 현장의 혼란을 키울 수밖에 없다.
기준이 없으면 갈등은 반복된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초등 담임교사와 교과전담교사는 주당 19~24시간 수준의 수업을 담당한다. 반면 해당 직군의 수업시수는 이보다 적은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수업시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왜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지 설명하는 국가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기준이 없다 보니 학교마다 다르고, 교육청마다 다르며, 구성원마다 해석이 달라진다. 결국 직역 간 갈등이 반복되고, 그 부담은 다시 학교 현장이 떠안는다.
학생 안전 역시 정책 검토의 대상이다
학생 안전 역시 같은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는 보건, 상담, 급식, 도서관 운영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현재의 교원 중심 운영 체계가 학생 안전과 전문성 확보 측면에서 가장 적합한지, 또는 다른 운영 방식과 비교했을 때 어떤 장점과 한계가 있는지는 객관적인 연구와 정책 검토를 통해 지속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실제로 2023년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보건교사가 보건수업을 진행하던 시간에 두통을 호소한 학생이 보건실을 찾았고, 당시 보건실 업무를 대신하던 일반교사의 보호를 받던 중 상태가 악화해 결국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은 보건실을 대신 맡았던 일반교사의 보호의무 위반에 대해 일부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이 사건은 특정 개인의 책임을 넘어, 보건교사의 수업과 보건실 운영, 응급환자 대응체계가 학생 안전 측면에서 충분한지 사회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정책은 관행이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와 검증 위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학생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는 국회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교육부는 이번에도 정책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기존 운영 방식을 설명하는 데 머물렀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회가 논의를 시작할 차례다. 대한초등교사협회가 ‘교원 주당 수업시수 법제화, 공정한 수업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정책토론회를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논의는 특정 직역의 권한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원의 정의는 무엇인지 ▲해당 직군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전문지원인력과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학생에게 가장 효과적인 학교 인력 체계는 무엇인지 ▲국민의 세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검증하자는 제안이다.
교육은 신뢰 위에 세워진다
해당 직군을 교원으로 운영하는 것이 현재 우리 교육에 가장 적합한 제도라면 국가는 그 정책적 이유를 객관적인 자료와 연구, 교육적 효과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설명하면 된다. 반대로 정책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면 제도의 적정성을 다시 검토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직무를 반복해서 설명하는 일이 아니다. 왜 이 직군을 교원으로 운영하는지, 그 정책적 근거는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객관적인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답하는 일이다. 그것이 공교육에 대한 책임이며,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 책임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