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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 서열 등으로 아이들의 생각과 삶을 단단하게 고정해 놓고, 삶 자체를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서 움직이게끔 한다. 이 트랙을 성실하게 달리는 사람에겐 모범 학생이라는 훈장을 준다. 그런데,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순응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넘어 저항적이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철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삶에 대한 사색의 의미를 알려준다. 이에 <더에듀>는 아이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주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더욱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
한 국가에서 대통령은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차이는 있으나 과거에 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을 뽑는 일은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보통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대통령 선거일은 국가 공휴일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어떤 대통령이 뽑히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방향성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대통령은 수천만 명의 삶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국민들이 투표로 선출한다고 해서 가장 유능하고 훌륭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
솔직히 이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투표로 당선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거나 전쟁을 일으키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종종 과거 쿠데타나 독재를 통해 대통령이 된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과연 투표는 좋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최선의 제도가 맞을까?
오늘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과 플라톤의 『국가』 중 일부를 함께 읽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거부했다. 아마 자신이 존경했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이 아테네의 민주주의 체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그가 우매한 대중의 다수결을 믿지 않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플라톤은 국가의 통치자와 수호자는 투표가 아니라 선별과 시험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음은 아이들과 함께 읽은 『국가』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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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쉰 살이 되었을 때, 이들 중에서도 시험을 무사히 치렀으며 실무에 있어서나 학식에 있어서 두루 모든 면에서 가장 훌륭했던 자들을 이제 최종 목표로 인도해서,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젖히고서 혼의 눈으로 하여금 모든 것에 빛을 제공하는 바로 그것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어야만 하네. 그리하여 ‘좋음 자체’를 일단 보게 되면, 이들은 그것을 본으로 삼고서 저마다 여생 동안 번갈아 가면서 나라와 개개인들 그리고 자신들을 다스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만 하네. 이들은 여생의 대부분을 지혜사랑(철학)으로 소일하지만, 차례가 오면 나라일로 수고를 하며, 저마다 나를 위해 통치자로도 되는데, 이들이 이 일을 하는 것은 이것이 훌륭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어서일세.
- 플라톤, 박종현 역(2018), 『국가』, p. 501. |
아이들은 『국가』를 함께 읽고 다양한 질문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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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 지혜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일까? 주윤: 나이가 들면 더 지혜로워지는가? 준이: 지혜를 사랑하면 국가를 더 잘 통치할 수 있을까? 지성: 지혜가 무엇인가? 아름: 옳지 못한 방법으로 뽑힌 대통령이 일을 잘한다면? 수진: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 하지 않을까? |
질문을 하던 중에 아이들은 아름이의 질문에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대통령이라는 주제가 아이들의 관심을 끈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통령만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단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체 투표를 통해 아름이의 질문이 토론 질문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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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옳지 못한 방법으로 뽑힌 대통령이 일을 잘한다면 그대로 두어도 될까요? 교사: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인데? 이 질문을 생각한 이유가 있을까? 아름: 플라톤이 철인 정치를 말했잖아요. 철학자가 왕이 되는 거요. 철학자는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민주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선거가 아니라 능력으로 뽑힌 거잖아요. 그렇다면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대통령을 뽑아도 일만 잘하면 문제가 없는 건지 궁금했어요. |
곧이어 승우의 발언으로 토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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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우: 저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수도 있어요. 예성: 그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 나쁜 짓을 할 수도 있잖아요. 아름: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일을 잘한다고 했잖아. 그럼 문제없는 거 아닌가? 민성: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 될 수도 있어. 교사: 왜 그렇게 생각해? 민성: 저 나라는 대통령을 아무렇게나 뽑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수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선거잖아요. 그런데 선거 없이 대통령을 뽑으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거 아니예요? 준이: 그래서 국가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거구나. 주윤: 그리고 경쟁의 공정성도 무너질 수 있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공정하게 경쟁을 해야지. |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을 할 때도 선거를 강조한다. 당연히 학생회장이나 반장을 뽑을 때도 엄격한 선거 과정을 거친다. 아이들에게 다수결과 투표는 이미 일상에서 체화된 의례에 가깝다. 나 역시 선거를 하지 않고 대통령을 뽑는 것은 쿠데타나 독재 외에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렇기에 선거 없이 대통령을 뽑는 국가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민성이 역시 선거를 하지 않는 국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도 했다. 아마도 이것이 일반화된 생각이 아닐까? 하지만 곧 아름이가 그 당연함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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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그런데 선거의 목적은 유능한 대통령을 뽑는 거잖아. 그런데 선거 없이 유능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준이: 그런데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아니잖아. 그러면 사람들이 신뢰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유진: 대통령은 일 잘하는 게 최고야. 그러면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신뢰할 수 있을 거야. 교사: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너희는 선거로 뽑혔지만 일 못하는 대통령과 선거로 뽑히진 않았지만 일 잘하는 대통령 중에 누구를 선택할 거야? 승우: 아~ 어렵다. 지성: 난 일 잘하는 대통령이 더 좋은 것 같아. 민성: 난 반대야. 과정이 옳지 못하면 결과도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해. 아름: 과정도 결국 결과를 위해 필요한 거 아냐? |
아름이의 반론은 생각보다 힘이 셌다. 유능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굳이 선거라는 제도가 필요할까?
우리는 나쁜 대통령이 뽑혔을 때 나라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수많은 역사를 통해 목격해 왔다. 아름의 논리는 단순했지만, 그만큼 쉽게 와닿았다.
대통령의 역할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끌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선출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름이의 발언이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반민주적인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민주적’과 ‘반민주적’을 구분하는 것은 열린 토론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실 공간은 밀(J. Mill)이 말한 것처럼 자유로운 표현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공간, 그 자체라고 본다. 그 시공간에서 금기의 영역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의심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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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대통령이 유능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승우: 나라를 발전시키는 거죠. 교사: 나라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있을까? 아름: 경제 발전이요. 주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거예요. 준이: 시민들의 의견을 잘 경청하는 거예요. 지성: 평화를 유지하는 거죠. 그게 제일 중요해요. 교사: 그럼 폭력적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평화를 유지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킨다면 좋은 거 아닐까? 주윤: 아니에요.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 자체가 일을 잘한다고 할 수 없어요. 앞에서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했잖아요. |
나는 토론의 핵심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유능한 대통령’의 의미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경제 발전, 평화 유지, 민주주의를 말했다. 칠판에 정리하고 보니, 이 외에 대통령의 역할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한 정리였다. 그런데 아이들은 곧 이 세 가지가 양립하기 힘든 지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놀라운 치밀함이었다.
“폭력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지만, 경제를 발전시켰다면?”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평화를 유지하고 경제를 발전시켰다면?”
이러한 질문은 흔히 ‘반사실적 추론’이라고 불린다. 즉 ‘만약 ~하다면’이라는 문장을 활용하여 다양한 상황을 상상하고 그에 따라 추론을 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좀 더 다차원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또한 상상력과 논리, 수렴적 사고과 확장적 사고가 함께 작동하는 수준 높은 사고 훈련도 가능해진다.
더불어 마지막에 주윤이는 유능한 대통령이라는 개념 속에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킨다는 의미도 들어 있기 때문에,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유능할 수는 없다는 추론을 했다. 얼마나 멋진 분석 판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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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 그런데 투표로 뽑았는데, 일을 못하면 국민들이 너무 힘들잖아요. 주윤: 국민들이 스스로 투표로 뽑았다면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지. 유진: 하지만 모든 국민들이 똑똑한 것은 아니야. 대부분은 그냥 투표하는 경우도 많아.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래! 교사: 그러니까. 국민들이 대통령을 투표로 뽑는 것보다 유능한 대통령을 누군가 찍어 주면 더 좋다는 거지? 아름: 맞아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유능한 대통령이 국민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면 투표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예요? 주윤: 근데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대통령을 누가 알 수 있어? 그건 알 수 없어. 아름: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그걸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투표는 필요 없다는 거야. 승우: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모든 것에 대해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다면 정말 그렇겠다. 유진: 근데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투표가 필요한 거지. 민성: 그럼 우리가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필요한 건가? 예성: 그럼 우리 반은 진짜 민주주의 해야겠다. 승우: 아씨. 반박을 못 하겠네. (다 같이 웃는다) |
투표는 결코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폭력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만약 인간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 옳음, 선을 알 수 있다면 다수결과 투표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존재일 뿐이다. 개개인은 각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통해 판단하고 실천한다. 그렇기에 누구나 인정할 만한 완벽한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에도 존재하지 않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나쁜 대통령을 뽑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통령 후보가 그동안 살아왔던 과정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와 투표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다수의 국민들이 신뢰하고,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최악의 대통령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점을 아이들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 개개인이 너무나 미숙하기에 공동체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실수와 오류를 수정하고 공동체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면에서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마지막에 승우가 “반박을 못 하겠네”라고 할 때, 아이들이 보인 미소와 웃음소리에서 나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소중한 씨앗을 볼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제도와 법률이 아니다. 불완전한 우리들이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 그 자체이다. 이는 100년 전 철학자 존 듀이가 이미 선언한 바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 제도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