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지난 5일 경기교육청에서는 ‘편한교복으로 교복문화 대전환 추진계획’을 주제로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교육청 배포 자료에는 △편안함으로 입고 자율로 완성하는 교복문화 대전환 △교복 선택권 확대, 학부모 부담 완화, 학교 업무 경감 △교육공동체 숙의를 통한 제도 개선 등이 언급되었다.
‘편한교복’이라는 세련된 수사와 학교 민주주의의 위선
하지만 학생들은 교육청의 도움 없이도 이미 변화해 왔다. 학생자치회 선거 공약으로 교복 디자인을 공모 후 반영하고, 사복데이를 추진하며 자율성을 추구하기도 한다. 소속감과 자율성을 동시에 조화시키는 건강한 흐름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민주주의처럼 보이는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는 ‘착한 독재’를 학생들에게 학습시키는 과정이다.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에서 시작해 학칙으로 하위 위임된 복장 규정이 학칙에서 다시 학생생활규정으로, 학생생활규정에서 개별 교복규정으로 하위 위임되면서 의사결정권에 대한 법적 통제와 귀속의 ‘주어(Subject)’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어떤 학교는 민주적인 ‘교장’을 잘 만나면 공약이 실행되기도 하지만, 교장이 바뀌면 한순간에 그간의 자치 결과가 사라진다.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여 교장에게 잘 보여야 공약이 실현된다는 독재의 생리를 학습하는 중이다.
이는 단순히 교복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물품선정위원회, 학교평가위원회 등 민주적 운영을 하라며 학교로 쏟아지는 각종 업무는 교육청 매뉴얼과 지침의 무능으로 인해 학교 내부 규정에서 법치주의와 의회적 민주주의의 통제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학생자치회 대의원회의 의결은 ‘학교장 승인으로 결정한다’로 명시된 학교가 여전히 많다. 오늘은 학교민주주의를 책으로만 교육하겠다고 하는 진보교육의 민낯을 살펴보려고 한다.
교복 디자인 변경 과정 - 하위 위임의 덫과 사라진 의사결정 권한
단위학교의 복장 규정은 「초·중등교육법」 제8조(학교 규칙) 및 동법 시행령 제9조 제1항 제7호에 근거한다. 이들 상위 법령은 학생 복장 등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을 학교 규칙(학칙)에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개정 시 학생,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경기교육청 교복 학교주관구매 가이드북에 따르면 교복 디자인 변경은 의견수렴, 설문조사,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학칙에 반영하는 표준 절차를 예시로 설명하며 생활인권규정의 개정방법을 따르라고 설명한다. 일부 학교는 ‘학교 구성원의 합의가 쉽게 반영될 수 있도록 교복 규정을 학생생활규정(생활인권규정)에서 별도의 교복규정으로 하위 위임’하여 유연하게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하위 위임 과정에서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법률에서 학칙으로, 학칙에서 생활규정으로, 생활규정에서 다시 교복규정으로 끊임없이 위임 권한이 하향 전달되면서 정작 최종 결정을 내리는 ‘권한의 주체’가 법제적으로 모호해진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자치 토론을 거쳐 결정한 ‘사복 데이’나 생활복 착용 변경안을 최종적으로 승인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단위학교 학칙이나 교복규정은 구체적인 ‘주어’를 제시하지 않는다.
최하위 규정에 명시되는 ‘이 규정에서 정하지 아니한 사항은 ◯◯◯◯가 정한다’라는 명시조항이 없거나, ‘학교장이 정한다’라고 포괄적으로 적혀있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학교장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결국 의사결정의 주어가 실종된 규정의 맹점 속에서, 학생들의 오랜 자치 활동 결과물은 학교장의 개인적 성향이나 자비에 완전히 종속된다.
자발적 합의와 정당한 절차를 거쳤음에도 결재권자인 학교장 개인의 성향에 따라 실행 여부가 뒤바뀌는 구조는 학생들에게 ‘민주적 합의보다 절대권력자의 기분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냉소적 생리를 습득하게 만든다.
절차와 법치 대신 권력자의 선의에 기대는 처세술, 그것이 바로 학교가 자치라는 포장지 안에서 학생들에게 실습시키고 있는 은밀한 독재다.
위원회 구성 및 위원 선정 과정의 실태 - 주어 없는 추천과 자의적 운영
이러한 ‘주어의 부재’는 복장/교복 규정이나 교복 학교주관구매 가이드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생명인 학교 내의 각종 법정·비법정 위원회의 위원 선정 매뉴얼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각종 위원회의 위원 선정에서 위원을 누가 추천하고 결정하는지 명확한 ‘주어’가 부재하기 때문에, 단위학교 안에서 학교장의 자의적 지배가 관철되는 통로가 되고 있다.
1. 물품선정위원회 위원 선정 과정의 예시와 허점
경기교육청의 「2025 물품선정위원회 운영 기준(개정)」에 따르면, 단일품목 추정가격 2천만 원을 초과하는 물품 구매 시 물품선정위원회를 필수로 개최해야 한다.
위원회 구성에 대해 지침은 ‘수요자 중심으로 5인 이상 구성(학생, 학부모, 교직원 등)’하되 ‘학교장과 간사는 제외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위원 위촉의 절차, 즉 위원을 구체적으로 ‘누가 추천하고’, ‘어떤 민주적 절차로 확정하는지’에 대한 명시적 ‘주어’가 매뉴얼에 없다.
결과적으로 일선 학교에서는 행정실이나 담당 부서가 학교장의 묵시적 지침에 맞추어 우호적인 교직원, 마찰을 빚지 않을 학부모와 학생 대표 몇 명을 임의로 골라 명단을 작성하고, 교장의 결재를 받아 위원회를 구성한다. 형식적으로는 학교장이 위원에서 제외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교장이 거수기 역할을 할 위원들을 독점적으로 선택하여 앉힐 수 있는 구조다.
2. 학교자체평가위원회 구성의 한계 예시
단위학교의 교육 활동을 자체 진단하고 차년도 계획에 반영하는 ‘학교자체평가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2025 경기 학교평가편람」에 따르면 위원회는 교원, 학부모, 외부위원을 포함하여 7명 내외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편람은 ‘학교자체평가위원회 구성과 세부 운영에 대한 사항은 학교에서 결정’한다고만 명시하고 있다.
이 모호한 위임 역시 단위학교 안에서는 교장의 자의적 임명권으로 작용한다. 학부모 위원은 학부모회에서 정당하게 추천된 자인지, 외부 위원은 객관적 기준을 거쳤는지에 대한 제도적 약속이 없다. 결국 학교장이 편한 지역위원이나 지인을 위원으로 선정하게 되며, 위원회는 실질적인 토론과 비판 없이 교직원들이 써 온 보고서 초안에 서명만 해주고 흩어지는 무력한 기구로 전락한다.
더 큰 문제는 학운위 산하 소위원회와 교장 산하 위원회를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조차 없다는 점이다. ‘경기교육청 각종 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처럼 위원회 구성의 객관적 민주성과 위원 선정의 주어를 명확히 하는 조례나 규정, 학칙이 단위학교 차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의 형용모순 - 독재를 예습하는 학생들
지방 교육자치 10여 년 동안 진보 교육계는 ‘민주시민교육’을 외쳐 왔다. 하지만 학교 행정의 실제와 의사결정 규칙은 여전히 은밀한 독재 체제를 답습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법치주의와 권력의 분립, 절차적 정당성을 배우지만, 자신들의 매일의 복장과 학교 운영을 결정하는 구조 속에서는 법과 규칙 대신 권력자의 기분을 살피는 복종을 실습한다.
학교 구성원들이 치열한 토론 끝에 마련한 개정안이 제도적 보장이 아닌 교장 한 명의 성향에 의해 사문화되는 경험은 학생들에게 법과 제도가 아닌 권력에 대한 맹종을 학습시킨다. 학생들이 책으로 배운 민주주의를 믿지 말라고 단위학교 행정이 직접 실습으로 교육하는 이 위선적인 형용모순을 깨지 않고서는 진짜 민주시민교육은 불가능하다.
법치와 자치의 재건 - 초·중등교육법 개정과 광역의회 조례 제정의 필요성
단위학교의 무너진 법치와 자치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임시방편의 가이드북 배포를 넘어, 세밀한 권한 구조를 바로잡는 입법적·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1. 초·중등교육법에서 조례 위임의 필요성
현행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은 학교 규칙 제정권을 포괄적으로 부여할 뿐, 학교 내부의 자치기구 권한 분배나 위원회 구성의 세부 원칙을 규율하지 못한다. 국가 수준의 법령으로 모든 단위학교의 구체적 의사결정 규칙을 다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중등교육법의 개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법률에 ‘법령에서 정하지 아니한 학교 운영에 관한 민주적 원칙, 자치 기구의 지위 및 위원회 구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지방자치단체의 광역의회 조례로 정할 수 있다’는 명시적인 위임 근거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2. 광역의회(도 조례) 제정의 시급성
이 개정 근거에 따라 광역의회(예: 경기도의회)는 ‘단위학교 각종 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이 조례는 학교 현장의 ‘주어 없는 규정’을 바로잡는 나침반이 될 것이다.
조례에는 첫째, 복장 변경과 자율 복장 승인 등의 실질적 권한이 학생자치회와 학부모회의 발의,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에 귀속됨을 명확히 하는 '주어의 법제화'를 담아야 한다.
둘째, 물품선정위, 학교평가위 등의 위원 위촉 시 학생 위원은 학생자치회가 추천하고, 학부모 위원은 학부모회를 통해 추천하도록 하는 '위원 선정권의 분립'을 명시해야 한다.
셋째, 학교장 자의로 운영되는 비법정 위원회와 공식 위원회의 구분을 규정하고 설치 대원칙을 투명하게 정하는 기준을 담아야 한다.
결론 : ‘교장의 선한 독재’에서 ‘민주주의와 법치’로
학교의 복장 규정 변경과 위원회 운영이 훌륭한 학교장의 개인적 선의와 온정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는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왕정 시대의 인자한 ‘계몽군주’가 베푸는 시혜에 불과하다. 지배자가 바뀌면 기본권이 한순간에 사장되는 지금의 단위학교는 결코 온전한 시민을 길러낼 수 없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학교는 ‘교장의 자비와 선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에 의해 지탱되는 공간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규칙이 법적으로 보장받고, 위원회의 위원을 자신들의 대의기구로 당당히 파견하는 법치주의적 ‘지배의 메커니즘’을 직접 경험할 때 비로소 배움터는 민주시민의 요람이 된다.
초·중등교육법의 신속한 개정과 광역의회의 조례 제정을 통해, 단위학교의 잃어버린 주어를 찾고 학교 현장에 상식적인 법치주의를 즉각 건설해야 할 때다. 교장, 학생, 학부모의 업무상의 권한은 천부인권과 다르다. 법에서 부여된 권한을 행사한다는 합의된 틀과 이해를 통해서만 학교구성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