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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의 미신, 대입개혁을 다시 묻다] 서논술형을 말하기 전에, 국교위가 먼저 해야 할 일

프롤로그

 

더에듀 | 지난 8월 5일 국가교육위원회는 2028~2037 국가교육발전계획의 주요 방향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자료에는 교육과정·교수학습·평가·대입제도에 이르는 교육 전반의 혁신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고, 특히 수업과 학습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서·논술형 평가 확대 등 중장기 대입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장기 대입개편을 위한 공론화의 목적도 분명하게 제시됐다.

 

국교위는 ‘수업·학습 혁신 촉진’, ‘공정성 확보’, ‘공교육 중심성 회복’을 대입제도 방향 설정의 주요 목적으로 두고, 수업과 학습 혁신을 위해 중·고교 서·논술형 평가 확대와 수능 서·논술형 평가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 급우 간 극심한 경쟁체제를 완화하기 위해 고교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도 검토과제로 제시했다.


대입의 영향력과 대입의 목적은 같은가


문제의식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대입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대학이 무엇을 평가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공부방식이 달라지고, 학교의 수업과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 학교교육이 특정 시험유형과 선발기준에 과도하게 종속되는 현상 역시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대입이 학교교육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과, 그 영향력을 이용해 학교교육을 바꾸는 것이 국가 대입정책의 정당한 목적이라는 것은 같은가.

 

이 둘은 구분되어야 한다. 대입은 대학에서 교육받을 학생을 선발하는 제도다. 반면 초·중등학교의 수업과 학습, 평가는 국가교육과정의 목표와 성취기준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행위다. 두 체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목적과 기능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학교교육의 목적은 학생을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데 있다. 학교평가는 학생이 교육과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느 정도 성취했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 대학입시는 그 결과 가운데 대학의 선발에 필요한 정보를 활용하여 제한된 교육기회를 배분하는 제도다.

 

그렇다면 순서는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는 교육과정이 결정하고,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지는 그 교육목적과 교과의 특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입은 그 위에 놓여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국교위의 이번 보고자료에서는 대입제도 개편이 ‘수업과 학습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명시돼 있다. 이는 대입의 강한 영향력을 학교교육 변화의 정책적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이번 대입개편은 대입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영향력 자체를 줄이기보다, 그 영향력이 작동하는 방향을 바꾸려는 구상에 가깝다. 객관식과 상대평가가 학교의 수업과 학습을 움직여 왔다고 본다면, 이제 그 자리에 서·논술형과 절대평가를 놓아 학교교육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대입이라는 레버리지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지렛대가 미는 방향만 바꾸려는 셈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대입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 자체는 그대로 남는다.

 

객관식이 학교를 지배하면 나쁜 대입 종속이고, 서·논술형이 학교를 지배하면 좋은 교육혁신인가.

 

국교위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수능을 어떤 방향으로 학교교육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사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대입이 학교교육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여야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역설이 생긴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입이 학교교육을 지나치게 지배한다고 비판해 왔다. 대학입시 때문에 교육과정이 파행되고, 학교수업이 시험 준비에 종속되며, 학생의 학습이 입시의 요구에 맞춰지는 것을 문제라고 해 왔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대입의 힘으로 학교의 수업과 학습을 바꾸겠다고 한다면 여기서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우리가 해결하려는 것은 학교교육의 대입 종속인가, 아니면 대입을 이용해 학교교육을 더 효과적으로 움직이는 것인가.

 

두 문제는 전혀 다르다. 대입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서 학교교육이 왜곡되는 것이 문제라면, 정책의 방향은 그 영향력을 어떻게 줄이고 학교교육의 독립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

 

반대로 대입의 영향력을 적극 활용해 학교교육을 변화시키겠다면, 학교교육의 대입 종속 자체를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따라서 국교위가 대입개혁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평가방식을 고르는 일이 아니다.


국교위가 먼저 세워야 할 여섯 가지 기준


첫째, 교육과정·수업·학교평가와 대입의 기능적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이유로 하나의 기능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 학교교육은 교육과정의 목적을 실현하고, 대입은 대학의 선발에 필요한 정보를 활용한다는 기본관계를 먼저 확립해야 한다.

 

둘째, 중등교육의 독립성을 국가적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대학이 어떤 학생을 선발하고 싶은지가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최상위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교의 수업과 평가는 국가교육과정과 교과의 목적에서 출발해야 한다.

 

셋째, 대입의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

 

과도한 경쟁, 사교육, 전형의 복잡성, 정보격차, 학교교육의 대입 종속, 객관식 중심 평가, 문제풀이 반복은 서로 같은 문제가 아니다. 어떤 것은 원인일 수 있고, 어떤 것은 결과일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정책수단을 필요로 할 수 있다. 문제를 하나로 묶어 놓고 서·논술형이나 절대평가라는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넷째, 대입의 영향력을 이용해 학교교육을 바꾸는 것과 학교교육의 목적에 맞게 대입을 정렬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정책의 방향은 정반대다. 전자는 대입 → 수업·학습·평가의 방향이고, 후자는 교육목적 → 교육과정·수업·평가 → 대입의 방향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장기 국가교육정책을 설계하는 기관이라면 어느 방향을 국가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다섯째,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대입의 기본원칙을 세워야 한다.

 

이번에 제시된 정책수단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창의성 교육과 학교수업 혁신을 위해 서술·논술형 평가와 수행평가를 확대하고, 이를 대학입시와 연계하려는 시도는 이미 2010년 전후에도 추진됐다. 당시에도 창의인재 육성과 수업·평가 혁신이 정책목표로 제시됐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어떤 정책수단이 사용됐느냐보다, 그 정책이 어떤 성과와 한계를 남겼는지를 충분히 평가한 뒤 이번 개편이 제시되고 있는가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필요한 이유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언어로 비슷한 정책수단을 반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과거 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축적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기준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다.

 

서·논술형이든 절대평가든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새로운가’가 아니라 왜 다시 필요한가, 과거와 무엇이 다르며, 어떤 근거로 이번에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이다.

 

객관식이냐 서·논술형이냐,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 수시냐 정시냐보다 그 위에 있는 기준이 먼저다.

 

대입은 단순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학생 자신의 학업성취와 준비도가 선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 지역과 학교환경 같은 외부조건이 학생의 성취를 과도하게 대신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선발경로는 가능하되 복잡성은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원칙이 먼저 합의돼야 평가방법이 바뀌더라도 대입제도의 방향은 흔들리지 않는다.

 

여섯째, 정책수단이 아니라 정책효과에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서·논술형을 도입했다는 사실 자체는 성과가 아니다. 절대평가로 바꿨다는 것도 성과가 아니다. 정책의 성과는 제도를 바꾸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변화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수업과 학습이 실제로 좋아졌는가. 학생의 사고력과 창의성이 향상됐는가. 경쟁과 사교육 부담이 줄었는가. 전형은 더 단순해졌는가. 부모의 정보력과 학교환경이 합격에 미치는 영향은 줄었는가. 무엇보다 학교교육의 대입 종속은 실제로 완화됐는가.

 

이러한 기준을 정책 시행 전에 정하고, 시행 이후 같은 기준으로 결과를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의도와 정책의 효과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다. 정책을 바꾸는 것이 성과가 아니라, 문제를 실제로 해결했는지가 성과여야 한다.

 


공론화보다 먼저 필요한 것


국가교육위원회는 이미 이번 발전계획에서 대입 등 교육현장에 파급효과가 큰 과제에 대해 숙의와 공론화를 거쳐 최종 계획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공론화에서도 먼저 물어야 한다.

 

서·논술형에 찬성하는가, 절대평가에 찬성하는가를 묻기에 앞서, 대입의 목적은 무엇인가. 대입과 대학교육의 기능은 어떻게 다른가. 학교교육과 대입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대입이 학교교육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수단에 대한 찬반보다 목적과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이후의 평가방법과 선발방식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대입이 학교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이 그 힘을 이용해 학교교육을 움직여도 된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국가교육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학교교육을 대입의 영향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이 초·중등 교육과정의 목적과 학교교육의 독립성을 침범하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대입으로 학교교육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이 대입 때문에 흔들리지 않도록 대입의 위치와 한계를 국가적 기준으로 정하는 것. 그것이 대입개혁을 논하기 전에 국가교육위원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이후 ‘교육정책의 미신, 대입개혁을 다시 묻다’ 6회 연재를 통해 대입개편을 둘러싼 핵심 주장들을 하나씩 검증하고, 우리 대입제도가 어떤 원리와 기준 위에서 설계되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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