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8 (화)

  • 맑음강릉 24.4℃
  • 맑음서울 28.9℃
  • 구름많음울릉도 24.2℃
  • 맑음수원 27.9℃
  • 맑음청주 27.6℃
  • 맑음대전 28.0℃
  • 맑음안동 27.1℃
  • 맑음포항 25.6℃
  • 맑음군산 27.1℃
  • 맑음대구 27.0℃
  • 맑음전주 29.6℃
  • 맑음울산 26.0℃
  • 맑음창원 27.9℃
  • 맑음광주 29.0℃
  • 맑음부산 28.9℃
  • 맑음목포 27.7℃
  • 맑음고창 28.6℃
  • 맑음제주 29.1℃
  • 맑음강화 26.8℃
  • 맑음보은 25.9℃
  • 맑음천안 26.9℃
  • 맑음금산 27.7℃
  • 맑음김해시 29.6℃
  • 맑음강진군 29.8℃
  • 맑음해남 29.0℃
  • 맑음광양시 28.8℃
  • 구름많음경주시 26.2℃
  • 맑음거제 27.2℃
기상청 제공

[AI시대, 미래교육의 함정] ⑤AI가 인간의 학습 원리까지 바꾸었는가

더에듀 | ‘AI는 지식을 대체하는가? AI 시대에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인간 고유의 역량은 무엇이며, 학습의 기본 원리는 여전히 유효한가?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을 바꾸어야 하고, 무엇은 지켜야 하는가?’

 

AI 시대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먼저 확인해야 할 질문들이 충분히 다뤄지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AI 기술 자체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총 6회의 연재를 통해 교육학과 교육정책의 관점에서 AI 시대 교육 담론을 다시 성찰하고, 기술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질문과 답은 서로 대체할 수 있는가


AI가 답을 만들어 주는 시대이니 이제 교육은 답을 찾는 교육에서 질문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처음 들으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답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연구질문도, 토론질문도, 후속질문도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AI가 질문까지 만들어 주는 시대에는 질문하는 교육도 필요 없어지는가.

 

더구나 AI가 답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답을 판단하고 검증하는 능력까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타당한지 편향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없다면 AI가 제공한 답은 지식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출력일 뿐이다.

 

그렇다면 최근 교육정책 담론에서 반복되는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주장 자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질문과 답은 어떤 관계이며, 과연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인가.

 

질문이 중요하다는 말과 질문이 답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질문이 있어야 답을 찾을 수 있지만, 이미 축적된 답과 지식이 있어야 새로운 질문도 가능하다. 하나의 답은 새로운 지식이 되고, 그 지식은 다시 다음 질문의 출발점이 된다. 질문은 답의 반대말이 아니며, 답 역시 질문의 종착점이 아니다.

 

인간의 학습은 기존의 지식에서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질문하고, 탐구하고, 답을 찾고, 그 답을 검증하면서 지식을 수정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새롭게 축적된 지식에서 다시 질문이 탄생한다. 실제 배움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앞뒤를 오가지만, 중요한 것은 질문과 답이 하나의 학습과정 안에서 서로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인지과학의 관점에서도 이 관계는 분리되기 어렵다. 새로운 정보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연결될 때 이해되고, 충분히 조직된 배경지식은 추론과 문제해결,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질문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질문은 지식의 반대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지식의 경계에서 탄생한다.

 


좋은 질문은 지식의 경계에서 탄생한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 질문한다. 그러나 완전히 모른다면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고, 모든 것을 이미 안다면 질문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앎이 어디에서 멈추는지를 인식하고, 기존 지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점을 발견하며, 무엇을 하나의 문제로 볼 것인지를 구성할 때 질문이 탄생한다.

 

그러나 질문은 단순히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현상을 연결하고, 어떤 전제를 의심하며, 무엇을 문제로 삼을 것인지는 인간이 선택하고 구성한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창조하는 것은 세계 자체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질문의 틀이다.

 

같은 현실을 보고도 질문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학생의 성취가 낮은 이유를 학생 개인에게 묻지만, 누군가는 그 성취를 판단하는 기준이 적절한지를 묻는다. 누군가는 AI 시대의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묻지만, 누군가는 왜 인간다움의 기준을 인간이 아닌 AI에게서 찾는지를 묻는다.

 

현상은 같아도 질문의 틀이 달라지면 문제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보다 더 위험하다. 답은 질문이 정한 범위 안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질문을 만드는 개념과 기준이 잘못되어 있다면 아무리 정교한 답을 내놓아도 문제의 본질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질문이 답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질문과 답은 독립적으로 떼어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정책적으로 위계화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사고과정 안에서 서로의 질을 만들어 가는 상보적 관계다.

 

좋은 질문이 더 나은 답을 가능하게 하고, 그 답은 다시 새로운 지식이 되어 다음 질문의 출발점이 된다. 따라서 성찰이 필요한 것은 ‘답 중심 교육’이나 ‘질문 중심 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어느 한쪽을 다른 쪽보다 우위에 놓는 정책담론이다. AI 시대 교육정책의 혁신은 답 중심에서 질문 중심으로 중심축을 옮기는 데 있지 않다. 질문과 답을 서로 대립시키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하는 사고방식 자체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질문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다시 지식을 밀어내는 것도 위험하다. 지식은 교육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지식을 주변화한 채 질문과 탐구, 토론과 비판, 창의성과 주도성을 말할 수는 없다.

 

충분한 지식 없이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탐구하며, 어떤 근거로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가. 좋은 질문을 만들고 판단하려면 지식이 필요하고, 답을 탐색하고 그 타당성을 검증하려면 다시 지식이 필요하다.

 

질문도 답도 지식 위에서 이루어진다. 지식은 질문과 답에 맞서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아니라, 질문을 만들고 답을 탐색하며 그 결과를 검증하고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나아가게 하는 학습의 토대다.

 


편향의 방향만 바꾸는 것이 혁신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교육정책의 변화 방식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몇 년 전에는 하브루타와 질문 중심 수업이 새로운 수업혁신 방법처럼 소개되며 교육부와 교육청의 정책과 연수에서 주요한 언어로 등장했다. 당시에는 생성형 AI도 없었다. 지금은 AI가 답을 대신해 주는 시대이므로 질문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질문이라는 교육적 행위가 새롭게 발견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이유와 이름을 붙여 다시 소환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언어가 개념과 원리 위에서 축적되기보다 유행처럼 등장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효과와 한계를 충분히 검증해 다음 정책에 축적하기보다, 새로운 이름의 정책이 등장하면 이전의 언어는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또 다른 혁신의 언어가 그 자리를 채운다.

 

AI 시대의 새로운 교육언어처럼 소비되고 있는 ‘질문 편향 담론’ 역시 단독 현상은 아니다. 교육정책 담론은 새로운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것을 그 반대편에 놓는 방식으로 변화를 설명해 왔다. 지식보다 역량을, 가르침보다 배움을, 정답 찾기보다 질문과 탐구를 강조하는 식이다. 객관식이냐 서·논술형이냐를 둘러싼 논쟁도 다르지 않다. 결국 편향은 교육의 한 지점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식보다 역량, 가르침보다 배움을 우위에 두는 가치의 편향, 객관식보다 서·논술형을 새로운 평가로 규정하는 평가방법의 편향, 여러 교수·학습 방법 가운데 특정 방식을 좋은 수업의 표준처럼 제시하는 수업방법의 편향은 서로 다른 모습처럼 보이지만 같은 사고의 틀을 공유한다. 문제가 되는 한쪽의 한계를 보완하는 대신 그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반대편을 새로운 기준으로 세운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와 교육행정이 여러 교수·학습 방법 가운데 특정한 방식을 수업혁신의 대표 모델로 제시하거나, 특정 수업·평가 방식을 법과 제도를 통해 일반화하려는 시도는 교사의 전문적 판단 영역을 좁힐 수 있다.

 

교육의 목적과 기준을 세워야 할 정책과 법이 방법까지 선택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학생과 교과, 수업 맥락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평가할 것인지 판단해야 할 교사의 전문성은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어떤 개념과 판단 기준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이다. 개념과 기준을 충분히 세우기 전에 새로운 정책언어부터 앞세우면 용어는 바뀌어도 편향은 반복될 수 있다.

 

‘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정책담론을 만들려면 먼저 무엇을 질문이라 하고 무엇을 답이라 하는지부터 개념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존의 답 중심 편향을 해소한 것인지, 아니면 답이라는 편향에서 질문이라는 편향으로 방향만 바꾼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그 판단 기준조차 없다면 새로운 담론은 편향을 해체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름의 편향을 반복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슬로건은 달라져도 사고의 틀은 같다. 지식이냐 역량이냐, 가르침이냐 배움이냐, 답이냐 질문이냐, 객관식이냐 서·논술형이냐를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의 학습에서 이들은 어느 하나를 제거해야 다른 하나가 성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인간의 성장과 발달을 다루는 교육정책이라면 새로운 용어를 얼마나 빨리 도입했는가보다, 어떤 개념과 원리를 축적해 교육의 질을 지속해서 개선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새로운 슬로건이 등장할 때마다 이전의 교육을 낡은 것으로 밀어내는 대신, 무엇이 정말 잘못되었고 무엇은 여전히 필요한지를 먼저 구분해야 한다.

 


교육의 기준은 다시 인간의 학습이어야 한다


교육의 변화는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중심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배우는 전체 과정 안에서 각각의 의미와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AI 시대가 되었다고 인간의 학습 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AI는 인간이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질문을 만드는 방식도, 답을 찾는 속도도 바꾸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학습을 돕는 방식이 바뀌었다고 인간이 배우는 원리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인간은 알고 있는 것에서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탐색하고, 그 답을 의심하고 검증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수정하고 확장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AI 시대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답을 버리고 질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배우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탐색하고, 그 답을 검증하며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의 전체 사고과정을 길러 내는 일이다.

 

AI가 질문도 만들고 답도 만드는 시대라면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교육의 기준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배우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성장하는가이다.

 

다음 글에서는 AI 시대 교육개혁이 정말 바꾸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오히려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교육의 본질에서 다시 살펴보고, 6회에 걸친 ‘AI 시대, 미래교육의 함정’ 시리즈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연재 순서 예고

 

- 제1편. AI는 지식을 대체하는가?

• AI가 바꾼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 제2편. 왜 같은 AI를 사용하는데 결과는 다른가?

• AI 활용 능력의 차이는 결국 인간의 전문성과 지식 수준의 차이인가.

- 제3편. AI 시대 학생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 지식 교육은 축소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더욱 중요해지는가.

- 제4편. 인간 고유 역량이라는 말의 함정

• AI와의 비교 속에서 인간다움을 설명하려는 교육 담론을 비판하다.

- 제5편. AI가 인간의 학습 원리까지 바꾸었는가?

• 인지과학과 교육학의 관점에서 다시 묻다.

- 제6편. AI 시대 교육개혁의 진짜 과제는 무엇인가?

• 기술이 아닌 교육의 본질에서 미래교육을 다시 설계하다.

 

배너
배너
좋아요 싫어요
좋아요
2명
100%
싫어요
0명
0%

총 2명 참여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