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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의 미신, 대입개혁을 다시 묻다] ②수능에 서·논술형을 넣으면 대입은 무엇이 더 나아지나

채점의 정확성과 공정성이 진짜 질문인가

 

더에듀 | 수능 서·논술형 논쟁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수십만 명의 답안을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가, AI 채점이 가능한가, 학교가 대비할 수 있는가, 사교육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인가를 묻는다. 모두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대입개혁이라면 그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따로 있다.

 

‘수능에 서·논술형을 넣어서 대입은 무엇이 더 나아지는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서·논술형 평가부터 생각해 보자. 한 학생이 수학 서술형 문제를 풀었다. 답은 맞았지만 풀이과정을 보니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교사는 답안을 통해 학생이 어디에서 잘못 생각했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가르친다. 다음 평가에서 학생이 제대로 이해했다면 평가의 중요한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학교교육과 수업의 맥락에서 평가는 학생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어디까지 배웠고 어디에서 막혔는지를 확인해 다음 학습을 지원한다. 서·논술형은 학생의 생각과 문제해결 과정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목적에 유용한 평가방법이다.

 

학생이 서·논술형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그 학교에서 탈락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결과는 성적으로 기록되고 내신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100점을 받든 60점을 받든 20점을 받든, 그 점수 때문에 다른 학생이 내 자리를 차지하거나 내가 다른 학생의 자리를 빼앗는 일은 없다. 학교 안에서 모든 학생에게는 여전히 자기 자리가 있다.

 

학교 안에서 평가의 교육적 기능은 그 자리를 배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현재 학습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 배움을 지원하는 데 있다.

 

수능은 다르다. 수험생 모두가 훌륭한 답안을 썼다고 해서 모두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의 입학정원은 제한되어 있다. 결국 대입은 제한된 입학 기회를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학교평가와 대입평가는 같은 ‘평가’라는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기능이 다르다. 학교평가는 학생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차이를 발견하지만, 대입평가는 제한된 입학기회를 배분하기 위해 그 차이를 사용한다. 이 차이를 빼놓고 서·논술형의 교육적 가치만 이야기하면 논의는 처음부터 어긋난다.

 


채점할 수 있다고 선발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최근 수능 서·논술형 도입 논의에서는 대규모 답안의 채점 가능성이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예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정해 보자.

 

AI가 50만 명 안팎의 서·논술형 답안을 완벽하게 채점할 수 있다고 하자. 채점오류도 없고 비용과 시간 문제도 해결됐으며 이의제기에도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하자.

 

그래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 점수로 누구를 합격시키고 누구를 탈락시킬 것인가. 두 학생을 놓고 생각해 보면 문제가 훨씬 선명해진다.

 

수능이 객관식과 서·논술형으로 구성됐다고 하자. A학생은 객관식에서 90점을 받고 서·논술형에서 60점을 받았다. B학생은 객관식에서 60점을 받고 서·논술형에서 90점을 받았다. 환산한 최종점수가 같다고 하자. 그런데 대학에는 한 자리밖에 없다. 누구를 합격시켜야 하는가.

 

서·논술형을 도입한 이유가 학생의 사고력을 더 잘 평가하기 위해서였다면 서·논술형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은 B학생을 합격시켜야 하는가. ‘그렇다’고 답한다면 국가는 서·논술형으로 측정한 능력을 대학입학 선발에서 더 중요하게 보겠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서·논술형 점수가 대학에서 공부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더 잘 보여주는가. 기존 객관식 평가가 보여주지 못했던 어떤 정보를 추가로 제공하는가. 그리고 그 차이가 한 학생을 합격시키고 다른 학생을 탈락시킬 만큼 중요한 차이인가.

 

반대로 두 학생의 최종점수가 같으니 동일하게 취급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더 단순한 질문이 남는다.

 

사고력을 별도로 평가하기 위해 서·논술형을 도입했다면, 그 사고력 점수는 최종 선발에서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

 

그런데 여기에는 그보다 앞선 질문이 하나 더 있다. 객관식과 서·논술형 점수를 어떤 비율로 합산할 것인가. 서·논술형을 20% 반영할 것인가, 30%인가, 절반인가.

 

이것은 단순한 시험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서·논술형으로 측정한 능력을 대학입학 선발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20%이고 왜 50%인가.

 

먼저 정해야 할 것은 평가방법이 아니다. 기존 수능과 다른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한다면, 대학은 어떤 능력을 가진 학생을 어떤 기준으로 선발하려는가. 그리고 사고력은 그 선발기준에서 어떤 위치와 비중을 가져야 하는가. 선발기준이 먼저이고 평가방법은 그다음이어야 한다.

 


사고력을 평가했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잘못된 질문에 너무 오래 답하고 있다. “서·논술형이 좋은 평가라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라는 말이 반복되다 보니, 수능 서·논술형 도입을 반대하면 마치 좋은 평가 자체를 반대하는 것처럼 논리가 비약된다. 그러나 지금 대입개혁에서 묻고 있는 것은 서·논술형이 좋은 평가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사고력을 기르는 것은 교육의 일이고, 그 사고력을 점수로 만드는 것은 평가의 일이며, 그 점수로 누구를 합격시키고 탈락시킬지는 선발의 일이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이 놓이는 자리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즉 점수화와 선발의 문제다.

 

그런데 지금 논의에서는 이 서로 다른 기능이 서·논술형이라는 하나의 말로 묶여 있다. 그 결과 서·논술형이 교육적으로 가치 있다는 것과 그 점수를 대학입학 선발자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전혀 다른 주장이 하나처럼 연결되고 있다.

 

핵심은 단순하다. 좋은 교육적 평가인가와 좋은 대입선발 도구인가는 다른 질문이다. 서·논술형으로 사고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점수를 학생 선발에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는다.

 

‘사고력을 평가한다. 점수를 만든다. 다른 평가점수와 합산한다. 그 결과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한다.’

 

하나의 과정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판단이 이어져 있다. 첫 번째가 가능하다고 마지막까지 저절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수능에 서·논술형을 넣으려면 먼저 물어야 한다.

 

‘서·논술형 점수는 기존 수능이 제공하지 못했던 어떤 새로운 선발정보를 제공하는가.’

 

만약 객관식과 서·논술형이 거의 같은 학생 순위를 만들어 낸다면 굳이 막대한 비용과 복잡성을 더하면서 서·논술형을 도입해야 할 이유는 약해진다. 반대로 두 평가가 서로 다른 학생 순위를 만들어 낸다면 문제는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어느 순위로 학생을 뽑아야 하는가.

 

서·논술형 점수로 만들어진 순위가 대학에서 공부할 학생을 선발하는 데 더 적합하다면 그것을 증명하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사고력을 평가한다는 말만으로 그 점수를 대입선발에 넣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다.

 

학교에서는 평가를 통해 학생의 사고과정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다시 가르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입에서는 그 점수로 한 학생에게 입학기회를 주는 순간 다른 학생은 그 기회를 얻지 못한다. 바로 이 차이가 학교의 서·논술형과 수능의 서·논술형을 전혀 다른 문제로 만든다. 같은 평가방법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의 논리와 선발의 논리를 하나로 묶어서는 안 된다.


수능은 학교수업이 아니다


수능에 서·논술형을 넣으면 대입은 무엇이 더 나아지는가. 대입의 공정성이 문제라면 공정성이 나아져야 한다. 경쟁이 문제라면 경쟁이 완화되어야 한다. 전형이 지나치게 복잡한 것이 문제라면 단순해져야 한다. 대학이 필요한 학생을 제대로 선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면 선발방식이 더 타당해져야 한다.

 

그렇다면 수능의 평가방식을 서·논술형으로 바꾸면 이 가운데 무엇이 해결되는가.

 

“평가를 바꾸면 학교수업이 바뀐다”는 것은 별도의 주장이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학교수업을 바꾸는 것과 대입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지금 대입개혁을 추진하는 정책당국이 먼저 답해야 할 것은 ‘수능 평가방식을 바꾸면 수업이 바뀌는가’가 아니라 ‘수능의 평가방식을 바꾸면 대입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가’이다.


평가를 바꾸면 대입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이렇게 보면 내신 절대평가 논쟁도 같은 질문 앞에 놓인다. 학교평가에서 학생 사이의 상대적 서열을 줄이고 성취기준에 따라 평가하겠다는 취지는 학교교육 안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 사이의 상대적 서열을 등급에서 줄이거나 없앤다고 대학의 입학정원까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학생이 높은 성취수준에 도달했다고 하자. 학교교육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좋은 결과다. 그런데 대학에는 여전히 정해진 수의 자리만 있다. 경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갈 수 있지도 않다.

 

대학이 제한된 입학기회를 배분해야 하는 한 학생을 구분해야 할 필요는 남는 것이다. 한 지점에서 차이를 줄이면 선발은 다른 정보에서 다시 차이를 찾게 된다.

 

평가의 표현방식을 바꾸는 것과 제한된 입학기회를 배분해야 하는 대입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등급을 바꾸는 것도, 평가방법을 바꾸는 것도 그 자체로 제한된 대학입학 자리의 수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평가를 바꾸면 대입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가. 수능 서·논술형 논의에서 먼저 증명해야 할 것은 학교수업의 변화도, 채점의 공정성도 아니다. 먼저 따져야 할 문제가 있다. ‘선발의 타당성’이다

 

현재의 수능 서·논술형 논의의 순서는 다시 세워야 한다.

 

먼저 대학입학에서 무엇을 선발하려는지 정해야 한다. 그다음 어떤 능력을 어떤 기준으로 구분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 능력을 측정하는 데 어떤 평가방법이 적절한지를 검증하고, 여러 평가결과를 어떤 비율로 사용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 뒤에야 수십만 장의 답안을 어떻게 채점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온다.

 

즉, 선발의 목적 → 선발기준 → 측정할 능력 → 평가방법 → 점수의 결합 → 채점방법이다. 이 순서가 뒤집혀서는 안 된다.

 

AI가 채점의 공정성 문제를 해결하고 수십만 명의 서·논술형 답안을 완벽하게 채점할 수 있다고 하자.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서·논술형 점수가 기존 수능이 제공하지 못했던 어떤 선발정보를 추가하는가. 그 정보는 대학에서 공부할 학생을 선발하는 데 왜 중요한가. 그 정보에 얼마만큼의 선발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그리고 그 점수 차이를 근거로 한 학생에게 입학기회를 주고 다른 학생에게 주지 않아도 되는가.

 

채점과 사교육 문제도 중요하다. 학교가 대비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질문보다 앞설 수 없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에서 먼저 증명해야 할 것은 채점의 가능성이 아니라 선발의 타당성이다.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50만 장을 채점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그 점수로 학생을 선발하면 대입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가이다. 수능에 서·논술형을 도입하려면, 그 평가로 어떤 능력을 왜 선발기준으로 삼을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채점의 정확성과 공정성은 그다음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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