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교육은 입시와 경쟁, 시험과 서열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좋은 성적,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울산 최초의 공립 대안중학교인 울산고운중학교는 아이들이 순응적인 삶을 넘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길 바라며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철학 수업이다. 이에 <더에듀>는 비판적 사고와 자유로운 사유를 통해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가도록 돕는 박상욱 철학교사의 수업을 소개한다. 그는 “교육이 경쟁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말한다. /편집자 주 |
아이들에게 SNS라는 가상 공간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SNS를 확인하고 '좋아요' 개수를 헤아린다. SNS에 올릴 사진을 위해 여행을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행지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 사진을 통해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멋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좋아요'라는 표시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이러한 시공간은 더욱 확장되지 않을까 싶다.
학기 말에 아이들과 함께 읽은 책은 올리버 폼마반의 『나를 팔로우하지 마세요』라는 짧은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비는 SNS 스타이다. 그녀의 의도는 아니었다. 비의 엄마는 인스타그램 계정 '비의 연대기'를 통해 딸 비의 일상을 공유했고, 이렇게 올린 영상과 사진이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그렇게 비는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고 수많은 팬을 거느리게 된다. 물론 그 영상과 사진은 철저한 연출을 거쳐 꾸며진 것이다.
비는 자신이 SNS 스타가 된 것에는 불만이 없다. 다만 엄마의 삶과 일상은 사라지고 오로지 딸의 일상만 공유하며 SNS에 몰두하는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비는 자기 계정의 안티팬이 되기로 결심한다. SNS 인기가 줄어들면 엄마도 자신의 인생을 되찾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 역시 진짜 '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이들은 이 소설을 함께 읽으며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민성: 왜 사람들은 SNS 같은 것을 하는 걸까?
주윤: '좋아요'에 집착하는 것이 삶에 도움이 될까?
준이: 부모가 자식의 동의 없이 SNS에 출연시켜도 될까?
수진: SNS 속 나를 거짓으로 꾸며도 될까?
아름: 사람들은 SNS 속 내용을 진짜라고 믿을까?
유진: SNS 속 인간관계는 진짜일까?」
나는 소설을 읽으며 아이들과 일상적인 SNS 사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만나기 힘든 친구나 교사, 연예인 등의 일상을 보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사람의 일상도 보지만, 어색하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의 일상까지 SNS를 통해 보고 있었다. 현대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관음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SNS 사용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부 아이들은 이미 SNS를 통해 괴롭힘을 당하거나 사생활이 노출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SNS 자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다. 괴롭힘이나 폭력 같은 문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자신이 싫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남이 올린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자신의 삶이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물려 수진이의 질문에 아이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수진: SNS 속 나를 거짓으로 꾸며도 될까요?
교사: 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을까?
수진: SNS를 보면 죄다 얼굴에 필터를 씌우고 보정을 해서 거의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올리거든요. 비싼 차나 명품 신발 옆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현실에서 그 사람을 보면 사진과 전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어요. 사람들은 대체 왜 그렇게 예쁘고 멋진 것에 집착할까요? 그게 궁금했어요.
수진이의 설명을 듣고 아이들은 곧바로 토론에 들어갔다.
민성: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해도 되지 않을까?
아름: 맞아. 그냥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 거잖아.
준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일 수도 있어.
교사: 혹시 어떤 피해인지 말해 줄 수 있겠니?
준이: 남을 속이는 거잖아요. 그건 나쁜 거 아니에요?
아름: 그럼 화장도 똑같은 거 아니야?
준이: 정도가 심하니까 그렇지. 완전히 다른 얼굴로 바꿀 수도 있잖아.
주윤: 선생님, 저는 SNS 사진 보정은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해요. 남이 오해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름: 저도 동의해요. 굳이 남을 속이려는 의도도 없잖아요. 그냥 예쁘게 보이고 싶은 거고요.」
아이들의 토론은 'SNS 공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이 깊었다. 민성, 아름, 주윤이는 SNS를 사적 공간으로 보는 측면이 컸다. 사적 공간에서 자신의 사진을 어떻게 바꾸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다. 특히 아름이의 말처럼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구일 수 있다. 이러한 욕구를 나쁘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준이는 SNS를 공적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공간에 내가 올린 정보는 타인에게 공유되기 때문에 진실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교묘하게 중첩된 SNS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물론 이 쟁점으로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우선은 아이들이 가진 관심의 방향을 지켜보고 싶었다.
「지성: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남을 속이거나 사기를 칠 수도 있잖아요.
예성: 그렇네요. 다른 사람인 척하고 이야기할 때도 있잖아요. 게임할 때 그런 경우 많아요. 나이를 속이는 경우도 있고요.
주윤: 그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의 이야기지. 그냥 자기 얼굴을 예쁘게 보정하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준이: 그래도 최소한 신원은 알아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름: 왜?
준이: SNS상의 프로필도 자신이니까. 최소한 남이 알아볼 수는 있어야지.
교사: SNS상의 프로필도 자신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니?
준이: 말 그대로 SNS상에서도 남과 소통을 하니까요. 최소한 자신이 누구인지 솔직하게 밝히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준이의 반론은 철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쟁점 중 하나인 '자아 동일성' 문제를 제기했다. 나의 자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동일한 모습일까?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동일한 '나'일까?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하기는 힘들다.
SNS상의 '나'와 현실의 '나'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의 나는 예의 바르고 소심하지만, SNS상의 나는 훨씬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준이는 SNS상의 '나' 역시 현실의 '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남을 함부로 속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자아에 얽매이기보다 SNS라는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자아를 만들어 내는 데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우리에게 고정된 자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제기한 이 쟁점을 좀 더 철학적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교사: SNS상의 '나'와 현실의 '나'가 꼭 동일할 필요가 있을까?
준이: 그게 달라도 되는 거예요?
아름: 다를 수도 있지. SNS나 게임 속에서는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지성: 맞아. 예성이는 게임에서는 완전히 대장이잖아.
예성: 게임이나 인터넷에서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이 다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아름: 그러니까. SNS상에서 얼굴을 예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지?
교사: 그럼 현실의 '나'와 SNS상의 '나'는 다른 걸까?
예성: 현실의 '나'가 할 수 없는 것들도 그곳에서는 다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 다른 거 아닐까요?
준이: 하지만 결국 하나 아니야? 현실의 '나'나 SNS상의 '나'나 결국 나잖아.
주윤: 현실의 '나'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SNS나 게임에서 나타나는 거니까, 같은 '나'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상 공간 기술이 발전할수록 '진짜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한 SNS와 달리, 현실 공간의 '나'는 더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은 현실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수많은 구조적 제약 탓에 SNS라는 가상 공간에 더욱 몰려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면은 공허해지고 자아는 허약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들도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준이: 그러면 사람들은 SNS에만 집중하지 않을까요? 현실의 나보다 SNS상의 내가 훨씬 멋지고 예쁘니까요.
교사: 그리고 현실의 나에게 더욱 실망할 수도 있겠네.
수진: 그래서 일부러 비싼 차나 집 앞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 것처럼 보이게요. 그런 거 보기 싫어서 제가 SNS를 안 하는 거예요.
유진: 그럼 SNS 속 내 모습을 더 예쁘게 보정하기보다 현실의 내 얼굴을 더 좋아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현실이잖아요.
교사: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SNS도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상현실처럼 말이야.
예성: 전 현실보다 가상현실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 세상에서는 외모 차별이나 불평등도 없을 것 같아요.
주윤: 아니야. 그래도 현실의 '나'가 더 중요해. 내가 가진 육체나 정신은 현실에 존재하는 거니까.
아름: SNS에 빠져들수록 현실이 초라해 보일 것 같긴 해.」
산다는 것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다. 이 사실은 인간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아마 전혀 다르지 않을까? 가상 공간에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절대적 좌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전혀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해 낼 수도 있다. 또한 그 속에는 AI라는 전혀 새로운 타자도 존재한다. 아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공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타자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확실성은 삶의 근간을 흔들어 댈 것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탐구이다. 그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 패턴, 공간, 시간, 타자, 개념, 기준, 가치를 탐구하면서도 삶의 근본적인 뿌리를 놓지 않으려는 치열한 투쟁의 장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그러한 철학의 장에서 가장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부모의 보호, 사회의 보호, 자연의 보호에서 막 벗어나 스스로 삶의 주체로 서려는 존재들이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전통과 관습, 가치에 저항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 거침이 없다. 나는 아이들이 가진 저항의 에너지와 창조의 숨결을 억압하지 않고 지지해 주는 시공간이야말로 철학함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년에 걸친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중2병'이라는 말로 점철된 중학생 시기를 철학적 존재의 시기로 재조명하고 싶었다. 저항과 새로움, 유연함과 변화는 철학의 두 얼굴이자 사춘기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춘기는 철학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재가 청소년들과의 철학함이 가지는 교육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