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입시 경쟁이 맞물린 시대.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큰 고민과 불안을 마주하고 있다. <더에듀>는 ‘좋은 대학’과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익숙한 기준을 넘어, 아이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살펴본다. 당장 꿈이 없어도 괜찮은 이유부터 성적과 적성 사이의 간극, 문해력과 진로 관계, 오래가는 능력과 직업 선택의 현실까지 진로를 둘러싼 고민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옷 가게에서 마음에 쏙 드는 옷은 좀처럼 없다. 그런데 아닌 옷은 걸쳐 보는 순간 안다. 점심때 뭘 먹고 싶으냐고 물으면 "아무거나"라고 답하던 사람도 국밥집 앞에서는 바로 말한다. "국물은 좀…."
직장인도 그렇다.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말문이 막힌다. 그런데 지금 이 일의 어느 대목이 견디기 힘든지는 술술 말한다. 아이도 다르지 않다. 장래 희망을 물으면 조용해지지만, 어느 수업이 지겨웠는지는 곧바로 답한다.
네 장면 모두 같다. 좋음은 말로 꺼내기 어려운데 싫음은 바로 나온다. 좋아하는 마음은 대개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생긴다. 반면 싫다는 느낌은 하나만 어긋나도 올라오곤 한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2025년 진로교육 현황조사를 보자. 희망 직업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응답자 2만2911명 중 70.5%였다. 열에 셋은 없다고 답했다. 2023년 같은 조사에서는 그 열에 셋에게 이유를 물었다. 희망 직업이 없다고 답한 중학생 가운데 54.6%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몰라서"를 꼽았다. 1위였다.
아이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아이에게 계속 같은 것을 묻는다. 그래서 뭘 좋아하는데.
"뭘 좋아하니"가 나쁜 질문이라는 게 아니다. 답할 재료가 아직 없는 아이에게 그것부터 묻는 게 문제다. 재료는 반대 방향에서 모인다. 해본 것 중에서 아니었던 것을 하나씩 지워 나가는 것이다.
방법은 단순하다. 무언가를 그만둘 때마다 아니었던 이유를 한 줄씩 남겨 두면 된다. 아이의 말 그대로 적는 게 좋다. "혼자 하는 건 괜찮은데 조 짜서 하는 게 제일 싫었어." "정해진 시간에 앉아 있는 게 답답했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재밌었어." 휴대전화 메모장이면 충분하다. 학년이 바뀔 때 한 번씩 열어 보면 된다. 몇 줄만 모여도 방향이 보인다. 해볼 목록은 줄어드는데 아이의 윤곽은 또렷해진다.
문제는 그 한 줄이 좀처럼 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이가 그만두겠다고 할 때 우리가 먼저 꺼내는 말이 정해져 있다. 등록비가 얼마인 줄 아느냐고 먼저 묻는다. 그만두려면 대신 다른 걸 하나 하라고 조건을 건다. 아이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학원에 먼저 전화를 건다. 셋 다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은 아이는 다음부터 아니었던 이유를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아이는 여전히 속으로 지운다. 사라지는 건 지우기가 아니라 기록이다.
나도 한 번 지운 사람이다. 인턴 시절 나는 서투르고 미숙한 나를 인정하지 못했다. 누구나 초반엔 실수하기 마련인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중도에 포기하고 제약회사로 방향을 틀었다. 그 길을 걸어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건 수의사라는 일이 아니라 미숙한 나였다는 것을. 그래서 돌아왔다.
여기서 한 가지는 구분해야 한다. 모든 "싫다"가 지울 신호는 아니다. 세스 고딘은 『더 딥』에서 두 가지를 구분한다. 지나가면 뚫리는 침체 구간이 '딥'이고, 아무리 애써도 진전이 없는 막다른 길이 '컬드색'이다. 넘어설 수 있는 딥이라면 견디고, 컬드색이라면 접는 편이 낫다. 아이에게는 이렇게 물으면 된다. 이 일 자체가 싫은 거니, 아직 잘 못하는 네가 싫은 거니. 그 대답도 함께 적어 두자. 다음에 또 흔들릴 때 꺼내 볼 수 있다.
물어도 "몰라"라고만 하는 아이가 있다. 그때는 한 번 더 좁혀 주면 된다. 그 일에서 제일 하기 싫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장면을 짚어 주면 아이는 대개 답을 찾는다. 반대로 무엇을 물어도 전부 싫다고 한다면, 그건 취향이 아니라 소진의 신호에 가깝다. 그때는 목록을 만들 때가 아니라 잠시 멈출 때다.
지우려면 먼저 해봐야 한다. 그런데 그 기회는 집집마다 다르다. 학원 하나 그만두는 일에도 돈이 걸린다. 정작 아이들은 해보고 싶어 한다. 같은 조사에서 진로체험에 참여하고 싶다고 답한 학생은 초 83.7%, 중 87.4%, 고 88.1%였다. 열에 아홉이다. 학교 관리자와 진로전담교사가 가장 많이 꼽은 요구도 다양한 진로체험 기회였다. 아이도 교사도 원하지만, 그 사이가 집안 사정으로 갈린다.
누군가에게는 학교의 체험 활동이 지울 목록을 만들 유일한 기회다. 그러니 체험 소감문에 "좋았다"만 적게 하지 말자. 무엇이 나와 맞지 않았는지도 한 줄 적게 하면 그 종이가 곧 아이의 목록이 된다.
9편에서 나는 곁가지를 자르지 말라고 썼다. 지금 말하는 지우기는 그 가위질과 다르다. 가위질은 해보기도 전에 어른이 잘라내는 것이고, 지우기는 해본 뒤에 아이가 걷어내는 것이다. 주어와 순서가 다르다.
6편에서는 진로가 발견되는 것이라고 썼다. 발견에는 두 동작이 필요하다. 나가서 해보는 것, 그리고 해본 뒤 아닌 것을 걷어내는 것. 그때 나는 앞의 절반만 말한 셈이다.
아이는 이미 지우고 있다. 어른이 하지 않는 건 지우게 두는 일이 아니라 적어 두는 일이다. 아이가 지금까지 열다섯 가지를 해보고 그만뒀다고 하자. 열다섯 가지를 알아낸 것이다. 그런데 남는 기록은 "끈기가 없다"는 한 줄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오늘 아이가 무언가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등록비도 조건도 잠시 미뤄 두자. 그리고 이렇게 묻자. 뭐가 제일 아니었어? 그 대답을 받아 적는 순간, 그만둔 날은 잃은 날이 아니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