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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死線)에서 만난 사직 의사, 그리고 나의 교장 선생님

 

대진(對陣)의 위기, 퇴근길 사직 의사가 건넨 구원

인생의 행로는 때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과 같다. 1999년, 필자는 종합병원의 치명적인 오진으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아찔한 순간을 마주했다. 교육부 전문직 시험을 앞두고 찾아온 극심한 복통에 급히 병원을 찾았으나, 의료진의 진단은 ‘요로결석’이었다.

 

몸이 찢어질 듯한 통증 속에서 직관적으로 오진을 확신했고, 의료진과 거친 설전을 벌여야 했다. 문제는 병원 측이 오진에 기반해 무리하게 쇄석술을 시도하면서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충격으로 맹장이 일부 손상되는 치명적인 의료 과실까지 겹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기적은 찾아왔다. 마침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근길에 올랐던 한 의사가 필자의 거친 항의 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춘 것이다. 그는 환자의 고통에 귀 기울였고, 증상을 면밀히 살핀 뒤 담당 의사에게 재검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의 혜안 덕분에 실시한 재검사에서 결국 ‘성 맹장염’이 밝혀졌다. 그 사직 의사는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직접 수술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병원을 떠났다.

 

만약 그날 밤 사직한 의사를 만나지 못하고 이튿날까지 결석 치료를 지속했다면, 맹장 파열로 인한 복막염으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투철한 사명감을 가진 한 의사의 결단이 한 인간의 운명을 바꾼 순간이었다.

 

질책을 품어 사랑으로 이끄신 진정한 스승
퇴원 후 교단에 복귀한 지 한 달 만에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주당 24시간의 수업에 담임 보직, 연구학교 기획과 방송부 업무까지 겹친 과도한 업무 분장이 통보된 것이다. 40학급 규모의 학교에서 한 교사에게 지워진 짐으로는 지나치게 과중했다.

 

필자는 학교 행정에 강하게 항의했고, 조정 끝에 담임은 제외되었으나 가중된 업무의 무게는 여전했다. 이튿날 교장실의 문은 무거웠다. 조직의 기강을 흔들었다는 이유로 당시 채희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엄한 질책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어진 온기는 대단히 교육적이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젊은 교사의 힘겨운 사정과 교육적 고충을 끝까지 묵묵히 경청해 주시고 따뜻한 격려를 건네셨다. 신뢰로 품어 안아주신 교장 선생님의 온기 덕분에, 필자는 마음을 다잡고 2년 차 교육부 지정 연구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5년 만기 근무를 마친 필자의 교육적 역량을 평가해 주시며 국립 서울사대부중으로의 전근을 추천해 주셨다. 더 넓은 무대로 길을 열어주신 혜안 덕분에 필자는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한 단계 더 신장하며 새로운 교육 인생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다. 위기를 성장의 발판으로 바꾸어주신 참된 은혜였다.

 

매일 아침 전해지던 문안 카드, 영원한 귀감
세월이 흘러 필자가 성장하는 동안 교장 선생님과의 신뢰는 더욱 깊어졌다. 자녀의 혼사 접수를 전적으로 믿고 맡기실 만큼 아껴주셨다.

 

무엇보다 가슴 깊이 남아있는 감동은 교장 선생님께서 2025년 10월 23일 소천하시기 전까지 이어졌던 교감이다. 두 세대가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교장 선생님과 필자는 매일 아침마다 문안 카드를 주고받으며 삶과 교육에 대한 소통을 멈추지 않았다.

 

돌아보면 필자가 정년퇴직까지 교육자로서의 명예를 지키며 마무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채희두 교장 선생님이 보여주신 지극한 정이었다.

 

오늘날 교권이 흔들리고 있지만 진정한 교육은 제도나 규정이 아닌, 한 인간을 향한 깊은 신뢰와 사랑에서 출발한다.

 

필자의 삶을 구한 퇴근길 사직한 의사의 사명감처럼, 그리고 젊은 교사의 허물을 덮고 성장을 도운 노(老)교장 선생님의 사랑처럼 서로를 품어주는 연대와 신뢰가 살아 숨 쉴 때 우리 교육의 미래도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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