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윤철순 기자 | “인공지능(AI)을 써도 된다. 그러나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는 AI를 쓰면 안 된다.”
언뜻 보면 모순처럼 보이는 이 기준이 AI 시대 학교 교육의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학교는 앞으로 학생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했는지를 평가할 것인가.
전북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마련한 ‘전북 AI 리터러시 교육 가이드라인’이 다음 달 1일부터 학교 현장에 적용된다. 7장 20조로 구성된 가이드라인은 학생·학부모·교사·학교·교육청의 역할과 AI 활용 원칙을 담았다.
핵심은 ‘AI 사용 금지’가 아니다. 오히려 AI를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AI가 학생을 대신해 판단하거나 교사의 전문적 판단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선을 그은 것이다.
특히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와 같은 학생의 정성적 기록에는 AI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반면 과제나 평가에서 AI를 활용했다면 어떤 서비스를 어떤 목적으로, 어느 범위에서 사용했는지 밝히도록 했다.
AI를 사용하는 것 자체보다 ‘누가 최종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했는가’를 중요하게 본 셈이다.
AI가 만든 ‘완성도’가 학생의 실력은 아니다
생성형 AI가 학교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평가 방식이 적지 않은 도전을 받고 있다. 보고서 작성부터 발표자료 제작, 코딩, 영상 제작, 탐구활동에 이르기까지 학생이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은 빠르게 늘고 있다.
문제는 결과물만 놓고 보면 학생이 직접 만든 것인지 AI가 상당 부분 만들어 준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AI에게 보고서의 주제 선정부터 자료조사, 글쓰기까지 맡겼다고 가정해 보자. 결과물만 보면 매우 논리적이고 완성도가 높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보고서의 완성도가 곧 학생의 사고력이나 탐구 역량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AI를 검색과 아이디어 정리에만 활용하고, 핵심적인 분석과 판단은 학생이 직접 했다면 결과물의 일부가 AI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학생의 학습 과정은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학교 평가에서 중요한 건 ‘무엇을 만들었느냐’에서 ‘어떻게 만들었느냐’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전북교육청의 이번 가이드라인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민감한 영역은 생기부
특히 학교생활기록부는 단순한 문서 작성 문제가 아니다. 학생의 수업 참여와 활동, 성장 과정, 특성 등을 교사가 관찰하고 판단해 기록하는 정성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AI가 학생의 활동 내용을 정리하고 문장을 만들어 준다면 기록 자체는 훨씬 편리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장이 실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관찰과 판단을 얼마나 반영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 큰 문제는 AI가 만들어 낸 문장의 ‘그럴듯함’이 실제 학생의 역량보다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장이 매끄럽고 전문적으로 작성됐다고 해서 학생의 사고력이나 탐구 역량이 높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문장 표현이 다소 서툴더라도 학생이 어떤 질문을 던졌고,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무엇을 스스로 판단했는지는 교육적으로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생기부를 둘러싼 AI 활용 문제는 결국 “AI가 얼마나 잘 써줬느냐”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을 얼마나 정확하게 관찰하고 판단했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예상되는 문제는 ‘AI 사용 여부’를 둘러싼 새로운 갈등
그렇다고 이번 가이드라인이 현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새로운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가장 먼저 ‘AI 사용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가 문제다.
학생이 맞춤법을 확인하기 위해 AI를 사용한 경우와 보고서 전체를 작성하도록 한 경우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아이디어를 얻은 경우와 문장 대부분을 AI가 작성한 경우도 다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이를 일관되게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면 학생과 교사 사이에 또 다른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AI 사용 사실을 학생이 제대로 밝히지 않았을 때 이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도 문제다.
AI 탐지 프로그램을 활용할 경우에도 논란은 남는다. AI 탐지 결과만으로 학생의 부정행위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거쳐 과제를 수행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평가가 바뀌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교사의 업무 부담도 변수다.
AI 활용 여부와 범위를 일일이 확인하고, 학생의 실제 사고 과정을 추가로 확인하려면 오히려 교사의 평가 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
AI가 교사의 업무를 줄여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AI 시대의 공정한 평가를 위해 교사가 학생의 학습 과정을 더 세밀하게 확인해야 한다면 현장의 체감은 달라질 수 있다.
학부모·학생 간 격차 문제도 남는다
AI 활용 역량의 차이가 교육 격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어떤 학생은 AI를 단순한 답변 도구로 사용하지만, 다른 학생은 질문을 설계하고 결과를 검증하며 여러 AI 서비스를 조합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같은 ‘AI 사용’이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가정의 디지털 환경이나 부모의 지원 수준에 따라서도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학교가 단순히 “AI를 사용해도 된다”는 원칙만 제시한다면 오히려 학생 간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
학생들에게 ▲AI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AI의 답을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과 AI의 결과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육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전북교육청이 AI가 제공한 정보를 공식 자료 등으로 교차 검증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생성형 AI의 이른바 ‘환각’이나 편향 가능성을 고려하면 AI의 답을 정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능력 역시 새로운 학습 역량이 된다.
교사에게 필요한 것도 ‘AI 활용 능력’만은 아니다
교사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AI는 수업자료를 만들고 수업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 자료가 정확한지, 학생의 수준에 적절한지, 교육적으로 문제가 없는지는 교사가 판단해야 한다.
이는 생기부와 같은 정성평가에서 더욱 중요하다. AI가 학생에 대한 문장을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학생을 실제로 관찰한 것은 AI가 아니다.
▲학생이 수업에서 어떤 질문을 했는지, ▲친구와 어떤 방식으로 협력했는지, ▲실패한 뒤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처음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교사의 관찰과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결국 AI 시대 교사의 전문성은 ‘AI보다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정보를 교육적으로 판단하고, 학생의 실제 성장을 발견하는 능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가 풀어야 할 진짜 숙제
전북교육청의 가이드라인 자체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규정이 아니라 자율 규범이다. 특정 AI 서비스의 사용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방식도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학교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 자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학생이 AI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허용하면서 문장 작성은 제한할 것인가.”, “AI로 만든 초안을 학생이 수정하면 학생의 결과물로 볼 수 있는가.”, “AI가 만든 발표자료를 학생이 발표했다면 발표 능력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AI로 코드를 작성한 뒤 학생이 수정하고 설명했다면 코딩 역량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는 아직 전국적으로 통일된 답이 없다.
AI 시대 학교 평가의 기준은 ‘결과물’에서 ‘사고 과정’으로
이번 전북교육청 사례가 단순한 지역 교육정책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학교가 고민해야 할 것은 AI 사용을 금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AI를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인간의 책임을 요구할 것인가다.
특히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학생이 무엇을 배우고 성장했는가’라는 점에서 그렇다.
앞으로 다른 시·도교육청도 유사한 기준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학교 역시 AI 활용과 평가에 대한 자체 기준을 마련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나아가 교육부 차원의 전국 공통 AI 교육·평가 기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해질 수 있다.
결국 AI 시대 학교가 평가해야 할 것은 AI가 얼마나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냈느냐가 아니다. 전북교육청의 이번 가이드라인은 ▲그 답을 학생이 이해했는가, ▲그 답을 검증했는가, ▲자신의 생각과 AI의 생각을 구분했는가, 그리고 ▲최종적으로 무엇을 스스로 판단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학교 현장에 던지고 있다.
AI를 학교에서 없애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다. 중요한 건 AI를 쓰더라도 ‘학생의 사고와 교사의 판단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AI 시대 학교 평가의 새로운 기준은 어쩌면 ‘AI를 썼느냐, 안 썼느냐’가 아니라 “AI를 활용한 뒤에도 최종적으로 누가 생각하고 판단했느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답은 여전히 ‘사람’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