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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새로운 교직 윤리] ④ AI 시대, 직업은 어떤 의미이며, 직업윤리는 왜 중요한가?

AI, 직업윤리, 교직윤리, 인공지능교육, 미래교육

대한민국 교육계는 교사 스스로 교육활동에 대한 자부심과 성장의 용기를 잃어가고 있다. 교육과 교직에 대한 사회적 신뢰 역시 낮아지고 있다. 여기에 AI의 빠른 진화와 보급은 지식과 문화의 전달자로서 교사와 교직의 가치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AI 시대일수록 교육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AI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이해를 넘어 신뢰와 책임, 존중과 협력의 가치를 함께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에듀>는 ‘AI 시대, 새로운 교육윤리’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연재를 통해 AI를 이해하고 올바르게 활용하는 방법과 함께, AI 활용 과정에서 요구되는 인간의 책임과 교육의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더에듀 인간에게 직업이란 무엇인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는 평범한 가사 노동의 순간을 포착하여 ‘일의 경건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보다 100여 년을 앞서 사셨던 퇴계 선생이 보셨으면, 당신께서 성인이 되기 위한 마음공부의 방법으로 제시했던 “‘경(敬)’의 모습이 여기 있구나” 하고 빙그레 웃으실 것만 같다. 어떤 이는 이 그림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뒷받침했던 ‘칼뱅의 직업 소명’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베르메르는 하녀가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성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일에는 귀천이 없으며, 어떤 일이든 성심을 다하는 이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한다는 것을 표현하였다고 짐작해 본다. 동시에 “인간에게 직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떠올려본다.

 

직업이란, 생계를 위한 수단인가? 사회적 신분인가? 신이 부여한 소명인가?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는 수단인가? 아니면 AI가 인간의 노동 대부분을 대신하게 될 미래에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이 물음은 단순히 사회·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직업은 인간이 자신을 사회와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 가운데 하나이며, 따라서 직업의 의미가 변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변한다는 것을 뜻한다.

 

직업은 ‘소명’이 되면서 모든 사람의 희망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나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그것을 통해 소득을 얻으며, 자기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자연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과거에는 직업이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고대인들은 육체노동을 노예나 하층민의 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자유로운 시민이나 군자가 할 일은 정치와 철학, 공동체를 위한 공적 삶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각자의 신분에 알맞은 역할과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큰 덕목이었지만, 모든 직업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중세 유럽에서도 직업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감당해야 할 삶의 의무였지만, 성직자의 삶과 세속적 직업 사이에는 분명한 위계가 있었다. 종교개혁은 이러한 직업관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특히 루터가 사용한 ‘베루프(Beruf)’라는 개념은 노동(직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신의 부르심은 성직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각자의 일상적 직업을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다. 칼뱅은 이러한 ‘직업 소명’ 의식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 결과, 농부의 농사일도, 상인의 장사도, 장인의 기술도, 하녀의 우유 따르는 일조차도 단지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직무)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 자체가 신 앞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행위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직업’을 바라보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칼뱅의 직업 소명과 근대인의 탄생

칼뱅주의는 직업은 물론 일상생활 전체를 신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자신의 직업과 일상생활 속에서 신에게 응답해야 했다. 따라서 근면, 절제, 정직, 검소, 자기통제와 같은 덕목은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라 종교적 의무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설이 발생한다. 세속적 직업이 오히려 더 건강한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버는 목적은 사치와 향락에 있지 않았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산은 신의 은총으로 이해되었다. 따라서 그 재산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고, 다시 생산적인 활동에 사용하는 일이야말로 선으로 평가되었다. 막스 베버는 훗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물론, 근대 자본주의의 탄생을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상업의 발달, 도시의 성장, 과학혁명, 법과 제도의 변화, 금융제도의 발전 등 수많은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그럼에도 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가 근대사회에 남긴 정신적 유산은 본질적이었다. ‘내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곧 나의 도덕적 의무이다!’라는 생각은 개인의 성공뿐 아니라 사회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직업적 책임’, ‘전문성’, ‘성실성’, ‘신용’이라는 가치의 뿌리는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베르메르는 ‘자신의 일을 하는 하녀’를 그렸다!

기독교의 ‘직업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를 보면 그림의 주제가 더 부각되어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우유를 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다. 이 가치야말로 근대 유럽에서 형성되고 세계로 전파된 새로운 직업 정신이다. 인간의 존엄은 그가 속한 신분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어떻게 수행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근대 시민사회를 형성하였다. 역사의 주인공은 자신의 직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상인과 장인이 되었다. 농부와 노동자 역시 사회를 움직이는 고귀한 주체가 되었다. 이제 직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사회적 책임과 개인의 정체성을 연결하는 채널이 되었다. 신에 의한 구원의 척도도 성실하게 하는 일이 되었고, 그 일이 가져다주는 부가 하나의 증표였다.

 

그러나 현대인은 직업에서 신을 찾지 않는다!

현대사회로 들어오면 직업의 의미가 다시 크게 변화한다. 산업화와 도시화, 세속화와 개인주의의 확산은 인간에게 새로운 자유를 가져왔다. 직업도 반드시 신이 정해준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부모가 정해준 직업을 꼭 이어받을 필요도 없었다.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바꿀 수도 있었다. 직업의 의미가 ‘소명’에서 ‘선택’으로 이동했다. 현대인은 직업에서 단순히 생계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중요해졌다. 직업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채널이 되고 있다. 나아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행복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현대인은 자기의 일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는 동시에, 자기를 넘어선 어떤 가치와 공동체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직업관의 중요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직업이 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는 순간, 직업이 오히려 나를 지배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직업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일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부담도 안겨주었다.

 

일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자기의 삶 자체가 실패한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인은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일을 위해 내가 사는 것인가, 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가?” 오늘날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 유연근무, 번아웃과 같은 문제가 중요한 사회 의제가 된 것도 직업관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AI의 등장, 인간의 경쟁자인가? 동료인가?

우리는 직업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바로 AI, 인공지능의 여파 때문이다. 기계가 인간의 육체적 힘을 대신했던 산업혁명과 달리, AI는 인간의 정신적 노동까지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다. 문서를 작성하고, 번역하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일도 수행한다. 여기에 로봇 기술이 결합하면 육체노동의 영역도 빠르게 바뀔 것이다.

 

인류는 마침내 직업의 역사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인간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에게 직업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살아남는가?”라는 질문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에게 직업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업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공간이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장(場)이며, 사회에 기여하는 채널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창구이다. 따라서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고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 자체가 변화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AI는 인간에게 무엇인가? AI를 단순한 수단이나 인간의 경쟁자로만 보는 것은 충분치 않다. AI는 이미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능가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은 AI가 제시한 여러 가능성 가운데 뭔가를 선택하기 위해 판단해야 한다. 즉, AI가 “무엇이 가능한가?”를 알려준다면 인간은 “무엇이 바람직한가?”를 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알려준다면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최선의 선택지를 계산해 준다면 그 선택이 인간에게 좋은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역할이 새롭게 정의된다. AI 시대의 인간은 모든 일을 직접 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일하는 인간’에서 ‘일의 인간화’로!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일하는 인간’으로 자신을 규정해 왔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흔히 이렇게 물었다. 그 답은 곧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능력, 심지어 정체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AI 시대에는 이 질문의 의미가 흔들릴 수 있다.

 

AI가 내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한다면, 나는 더 이상 나의 직업만으로 나 자신을 설명하기 어렵게 된다. 더 이상 인간의 정체성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을 그 일, 특히 그가 하는 일의 생산성으로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AI가 인간이 한 달 걸려 할 일을 한 시간 만에 해낸다고 해서 결코 인간보다 더 존엄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 AI 시대에는 인간의 가치와 노동의 가치를 일치시켜서는 안 된다.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더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노동생산성으로부터 해방된다.

 

AI가 진전될수록 인간은 고된 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일이 생계의 수단이었을 때, 그것은 고된 경험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인간은 일을 통해 소득만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공동체에 기여하고,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AI 시대, 지향해야 할 것은 결코 ‘일의 소멸’이 아니라 ‘일의 인간화’다. AI가 인간을 대신하여 반복적이고 위험하고 소모적인 일을 더 많이 맡는다면, 인간은 오히려 인간다운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돌봄, 교육, 창의적 활동, 공동체 활동, 자연과의 교감 등과 같은 일이 인간의 삶에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때 AI는 인간에게서 일을 빼앗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불필요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기술이 될 수 있다.

 

다만,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AI가 만들어낸 생산성의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 지나치게 커져서도 안 된다. AI의 혜택을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일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며, 일에서 밀려난 사람도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AI 시대의 미래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AI를 어떤 사회적 가치와 제도 속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AI 시대 인간을 지켜줄 직업윤리

AI 시대에는 직업윤리가 어떻게 달라질까? 과거의 직업윤리는 대체로 ‘내가 맡은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는가’에 중점이 있었다. 특히, 근대의 직업인에게는 성실과 정직이 요구되었다. 시간을 지켜야 했고, 기술을 연마해야 했으며, 맡은 일에 책임을 져야 했다. 이러한 가치들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AI가 이 분야에서도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는 직업윤리가 더 중요해진다. 막강한 기술은 막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그 막강한 기술에는 더 강한 윤리가 수반되어야 한다. 만약 인간이 AI라는 막강한 기술을 악용할 경우, 그 해악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AI를 활용하는 인간은 먼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AI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AI를 사용하여 무엇을 하는가?”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4가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첫째, AI 전문성이다. AI를 두려워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배우고 활용해야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둘째, AI 책임성이다. 자신이 AI와 함께 만들어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AI가 틀렸다고 해서 그것을 함께한 자신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셋째, AI 정직성과 인간 존중이다. 거짓 데이터와 조작된 정보로 AI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저작권과 개인정보도 존중해야 한다. 기술적 효율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희생해서도 안 된다.

 

넷째, AI 공공성이다. AI는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술의 혜택이 공동체 전체에 돌아가도록 하고, 기술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도 함께 배려해야 한다. 적어도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도록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 네 가지를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이렇다. AI 시대의 직업윤리란, AI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에 그치지 않고, AI를 무엇을 위해, 또 어떤 원칙에 따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다.

 

다시 베르메르의 하녀를 바라보다!

다시 베르메르가 그린 17세기 네덜란드의 작은 부엌으로 돌아가 보자. 부엌의 하녀는 우유를 따르고 있다. 그녀의 일은 단순하다.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일을 정성스럽게 하고 있다. 베르메르의 이 그림은 인류가 경험한 직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베르메르는 “네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현대인은 “네가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AI 시대의 인간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계가 내 일을 대신하더라도,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라고. AI는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줄 수 있다. 그 자유는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이다. AI가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한다면 인간에게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삶의 목적’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직업윤리는 먼저,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를 묻고, 다음에 “AI를 어디까지 사용해야 하는가?”를 판단하라고 명한다.

 

직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일의 의미를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해 왔다. 일은 한때 천한 의무였다. 종교개혁을 거치며 신이 부여한 소명이 되었고, 사회를 발전시키고 부유하게 만드는 책임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자신을 실현하는 자유가 되었다. 이제 AI 시대를 맞아 다시 질문 앞에 서 있다. “인간이 직업을 통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 “나는 AI를 활용하며 더 나답게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이 AI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도전일 것이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인류에게 전례 없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은 ‘더 많이 일하는 인간’이 아니라 ‘더 인간답게 사는 인간’, ‘더 나다운 인간’이 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AI가 인간을 해방시키는 기술이 될지, 아니면 인간을 더욱 정교하게 통제하는 기술이 될지는 결국 AI를 사용하는 인간의 윤리, 직업윤리에 달려 있다.

 

따라서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나 빼앗을 것인가?”가 아니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더 많은 일을 할 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바로 이 질문에서 AI 시대의 새로운 직업윤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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