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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산업화 학교의 종말 ②] 인류는 왜 학교를 만들었나 - 점토판에서 시작된 지식의 전승

기억이 인간의 뇌 밖으로 나왔다…‘모두를 위한 학교’까지 수천 년
소수 특권 → 모든 아이의 권리로…근대 대중교육이 바꾼 학교 역사
전쟁 폐허 터에 학교부터 세운 대한민국…교육은 국가·사회 책임으로
문명 바뀔 때마다 달라진 교육…수백년 걸린 변화가 이제 ‘몇 년’으로
현실로 닥친 AI 혁명, ‘새로운 교육’에 어느 정도의 시간을 허락할까

 

「AI가 인간 대신 답하고 생각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만든 문법 위에 서 있다. 교육은 다시 거대한 갈림길이다. 미래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더에듀>는 10회에 걸쳐 학교의 뿌리부터 AI 시대 교육의 미래까지 추적한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의 다음 100년을 결정한다. /편집자 주」

 

더에듀 윤철순 기자 | 약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누군가 손바닥만 한 진흙 덩어리를 펼쳐놓는다. 아직 마르지 않은 진흙 위에 갈대 끝을 누른다. 하나, 둘. 작은 흔적들이 남는다. 보리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물품을 얼마나 내주었는지 기록한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볼품없는 점토판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억이 사람의 머리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말(言)은 입을 떠나는 순간 사라진다. 기억도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 하지만 기록은 달랐다. 사람이 떠나도 남았다. 오늘 있었던 일을 내일의 사람이 알 수 있었고, 한 사람의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도 있었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의 수명보다 오래 남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누군가는 그것을 읽을 수 있어야 했다. 그 사람은 누가 가르칠 것인가. 학교의 아주 오래된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이 질문과 만나게 된다.

 

지식이 많아지자 ‘배우는 사람’이 필요해졌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문자보다 오래됐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착하고 사회가 커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배움이 필요해졌다. 마을은 도시로 성장했다. 수확한 곡식을 관리하고 물건을 사고팔아야 했다. 세금을 거뒀고 땅과 재산을 기록했다. 국가와 종교 조직도 생겨났다.

 

한 사람이 머릿속에 기억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로 전하는 것만으로는 복잡해진 사회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기원전 3200년 무렵 수메르 도시에서 나타난 초기 문자 역시 식량의 수집과 분배 같은 현실적인 필요와 맞닿아 있었다.

 

문자가 발전하면서 기록할 수 있는 것도 늘었다. 법을 남길 수 있었다.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종교와 문학, 수학과 천문에 관한 지식도 세대를 넘어 전할 수 있었다.

 

지식은 점점 한 인간의 기억보다 커졌다. 그리고 지식을 읽고 쓰고 관리하려면 훈련이 필요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문자를 익히고 기록을 담당하는 서기관들이 등장했고, 이들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도 이뤄졌다.

 

배움이 경험의 전수만으로 이루어지던 시대에서 누군가에게 일정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와 닮은 공간이 역사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문이 열렸다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학교가 있어도 대부분의 아이는 들어가지 못했다

오랫동안 체계적인 교육은 소수의 것이었다. 문명과 시대마다 모습은 달랐지만 기록을 다루는 서기관과 관리, 종교인과 지식인처럼 특정한 역할을 맡을 사람들이 주로 교육받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도 교육이 있었다. 중세 유럽에도 학교가 있었다. 동아시아에도 관학과 사학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제도가 만들어졌다.

 

한반도에서도 삼국시대부터 국가가 인재를 교육했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국자감·성균관·향교·서원·서당 등 여러 형태의 교육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한 가지는 오늘과 달랐다. 학교가 있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학생이 되는 건 아니었다. 가난한 농민의 아이에게 하루는 학교보다 노동에 가까웠다.

 

집안일을 돕고 농사를 거들어야 했다. 어떤 사회에서는 태어난 신분이나 성별이 배움의 기회를 결정하기도 했다. 교육은 분명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그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시계를 1820년까지 돌려보자.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던 때다. 그런데 당시 세계 인구 가운데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던 사람은 약 12%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열 명 가운데 한 명 남짓이다. 나머지 대부분에게 기록된 지식의 세계는 여전히 높은 벽 너머에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무렵부터 교육의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이 본격화한다.

 

‘모두를 가르치자’는 거대한 실험

19세기 유럽. 도시는 빠르게 커지고 있었다. 국가의 역할도 확대됐다. 산업화가 진행됐고 사회는 더욱 복잡해졌다. 국가는 읽고 쓰고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 ‘국민국가’가 성장하면서 공통의 언어와 규범을 익히게 하는 일도 중요해졌다.

 

교육을 바라보는 생각도 달라졌다. 소수의 사람만 배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국가가 학교를 세우고 교육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프로이센과 여러 독일 지역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의무 초등교육’ 체제가 비교적 일찍 확대됐고 프랑스와 영국 등도 뒤를 따랐다.

 

물론 산업혁명이 어느 날 갑자기 지금의 학교를 만들어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된다. 대중교육의 확대에는 산업화뿐 아니라 국민국가의 성장과 사회통합, 국가 행정의 확대, 종교, 시민교육 등 여러 힘이 작용했다.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었다. 교육의 대상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왕과 귀족의 자녀만이 아니었다. 관리나 성직자가 될 사람만도 아니었다. 농민의 아이도, 노동자의 아이도 가르쳐야 했다.

 

인류는 처음으로 거의 모든 아이를 일정 기간 학교에서 교육하는 사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로 대담한 발상이었다. 자기 아이를 가르치는 건 인류가 오래전부터 해온 일이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가 비용을 부담해 얼굴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아이까지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교육이 가족만의 책임을 넘어 사회의 책임이 돼가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는 그 책임을 수행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가 됐다. 그리고 그 장치의 힘을 극적으로 보여준 나라 가운데 하나가 대한민국이었다.

 

 

먹을 것도 부족한데 학교부터 늘렸다

1950년 6월 대한민국은 초등 의무교육 시행에 들어갔다. 불과 몇 주 뒤 전쟁이 터졌다. 나라 전체가 전쟁터가 됐다. 학교도 무너졌다. 아이들의 교육도 멈춰 섰다.

 

전쟁이 끝났다고 사정이 갑자기 좋아진 건 아니었다. 먹을 게 부족했다. 집도 부족했다. 교실과 교사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다시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들였다.

 

1954년 정부는 ‘의무교육완성 6개년계획’을 시작했다. 목표는 학령아동 취학률을 96%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몰려왔다.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학급에 80명 넘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곳도 있었다. 하나의 교실을 하루 세 번 나눠 쓰기도 했다. 천막이 교실이 됐다. 책걸상 놓을 공간이 없어 바닥에 엎드려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제대로 된 교육환경이라고 부르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1959년 6개년계획이 끝날 무렵 초등학교 취학률은 96.4%에 도달했다. 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몇 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배우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난을 물려주더라도 가난하게 살아가는 방법까지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보다 더 많이 배운 아이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국가 역시 교육받은 다음 세대가 나라를 다시 일으킬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이후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학교에서 배운 세대는 산업화 현장으로 갔다. 대학으로 갔다. 기업과 연구소로 갔다. 대한민국은 교육을 통해 사람을 길렀고, 그 사람들이 다시 대한민국을 바꿨다.

 

그래서 지금의 학교를 단순히 ‘낡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라고 부르는 건 이 기획의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학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사회제도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문제는 성공 이후에 찾아왔다.

 

너무 성공해서 당연해진 것들

아이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학교에 간다. 이제는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좀처럼 묻지 않는다. 하지만 점토판에서 시작해 수천 년의 시간을 지나온 과정을 되짚어보면 한 가지가 보인다.

 

교육은 언제나 그 시대와 함께 움직였다. 사람의 기억만으로 지식을 전하던 시대가 있었다. 문자가 등장하자 기록을 배우는 교육이 필요해졌다. 도시와 국가가 성장하자 더 많은 지식과 그것을 다룰 사람이 필요했다.

 

근대사회가 열리자 소수를 위한 교육만으로는 부족해졌다. 그래서 인류는 거의 모든 아이를 학교로 보내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세상이 달라지자 교육도 달라졌다.

 

어쩌면 이게 수천 년의 교육사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단순한 결론인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이번에는 조금 이상하다.
 

 

수천 년, 수백 년, 그리고 몇 년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 지식을 기록하기 시작한 건 약 5000년 전이다. 모든 아이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중교육 체제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불과 200여 년 전이다. 그 변화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제도가 만들어지고 사회가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생성형 AI가 대중 앞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2022년 말이다. 불과 몇 년 만에 AI는 일상과 교육, 기업과 연구기관, 전문직과 사무직의 일하는 방식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AI가 인간사회에 어떤 변화를 최종적으로 가져올지는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일자리를 얼마나 바꿀지도, 어떤 직업이 생기고 사라질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만큼은 이미 확인할 수 있다.

 

변화의 속도다.

 

과거의 교육제도는 문명의 변화를 따라갈 시간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까. AI 기술이 몇 달 단위로 발전하는 동안 교육과정 하나를 바꾸는 데는 몇 년이 걸린다.

 

더 어려운 문제도 있다. 교육의 결과는 바로 확인할 수 없다. 오늘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가 옳았는지는 그 아이가 성인이 돼 사회에 들어갈 때 비로소 드러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다시 초등학교 1학년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다. 백 년을 내다봐야 할 교육이 이제 몇 년 앞의 변화부터 따라잡아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인류는 문명이 바뀔 때마다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방법을 바꿔왔다. 농경사회가 그랬고, 문자와 국가의 등장이 그랬으며, 산업화와 대중교육의 시대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AI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가 시작됐다.

 

이번 변화의 충격이 산업혁명보다 클 것이라고 지금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능성에 대비할 시간마저 충분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 이상 ‘학교가 변해야 하는가’에 머물 수 없다.

 

얼마나 빨리, 무엇부터 준비해야 하는가. 그 첫 번째 대상은 학교가 오랫동안 교육의 중심에 놓아온 ‘지식’이다. AI가 인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질문에 순식간에 답하는 시대.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제 지식을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른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AI가 내놓은 답 가운데 옳고 그름을 가리고 더 나은 답을 선택하려면 인간 안에도 판단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에게 필요한 지식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다음 회 〈산업화 학교의 종말 ③〉에서는 ‘AI가 답을 안다면 지식은 필요 없는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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