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대입개혁을 이야기할 때마다 경쟁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반복된다. 등급을 줄이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고, 한 번의 시험이 갖는 영향력을 낮추고, 여러 자료를 통해 학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는 주장도 상당 부분 이 문제의식과 연결돼 있다.
대입개혁의 목표는 정말 경쟁을 줄이는 것인가. 원하는 사람보다 자리가 적으면 경쟁은 생긴다. 이것은 한국 대입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선호하는 대학이나 학과의 정원이 지원자보다 적다면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탈락해야 한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한 일정한 변별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입개혁에서 다뤄야 할 것은 경쟁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어떤 경쟁과 변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과 대가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에 더 가깝다.
경쟁 완화는 목표인가, 수단인가
경쟁이 과열돼 학생의 학습을 왜곡하고 과도한 사교육을 유발한다면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쟁 완화는 대입의 최종목표라기보다 더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며 학교교육을 덜 훼손하는 선발을 만들기 위해 필요할 경우 선택하는 조건부 정책목표에 가깝다.
미래가 왔다고 선발의 희소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교육의 변화가 곧 선발경쟁 축소의 근거가 될 수도 없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달라졌다면 무엇을 교육하고 평가할 것인지는 다시 물을 수 있다. 그러나 희소한 대학의 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배분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기업의 인력채용을 떠올려보자.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채용제도의 목표를 ‘지원자 간 경쟁과 변별을 줄이는 것’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직무능력을 갖춘 사람을 적절한 기준으로 선발하는 것이 목적이고, 과도한 스펙경쟁이나 불필요한 준비비용을 줄이는 것은 그 과정에서 관리해야 할 문제다.
대학입학도 희소한 자리를 지원자 가운데 배분하는 선발이라는 점에서는 구조가 비슷하다. 선호대학과 학과의 자리가 지원자보다 적다면 선발은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입개혁의 목표 역시 경쟁 자체를 없애는 데 있기보다 어떤 능력과 성취를 기준으로 선발하고, 그 과정에서 학생·가정·학교가 감당해야 할 부담과 왜곡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정책의 방향이 달라진다. 학생의 능력과 노력이 더 정당하게 평가되는가보다 경쟁을 얼마나 줄였는가가 정책성과가 되고, 학교교육이 더 좋아졌는가보다 상대평가를 얼마나 축소했는가가 개혁의 정도가 된다.
조건부 목표가 최종목표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정책수단이 목적이 되면 왜 이 수단을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라지고, 얼마나 더 강하게 시행할 것인가만 남는다. 이것 역시 정책의 할루시네이션일 수 있다.
5등급이면 경쟁이 줄고, 2등급이면 더 줄어드는가
경쟁 완화를 독립적인 정책목표로 놓으면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내신 9등급을 5등급으로 줄이면 경쟁이 줄어드는가. 그렇다면 2등급으로 줄이면 더 줄어드는가. 등급을 없애면 경쟁은 사라지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경쟁 완화라는 정책논리를 어디까지 밀고 갈 것인지 묻는 것이다.
등급을 줄이면 같은 등급 안에 더 많은 학생이 들어간다. 학생 간 상대적 차이를 대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는 줄어든다. 수능까지 절대평가로 전환해 변별을 낮추면 대학은 지원자를 구분할 다른 기준을 필요로 한다.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학생부, 면접, 논술, 대학별 평가 등 다른 요소에서 다시 변별하거나, 성취 차이를 선발에 활용하는 정도 자체를 더 줄이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경쟁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후자의 논리를 끝까지 밀면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학생들 사이에서 추첨하거나 이에 가까운 비경쟁적 배분방식까지 논의하게 된다.
추첨이라는 문제의식은 실제 정부 업무보고에서도 등장했다. 2025년 12월 12일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지원자 가운데 추첨으로 대학 입학생을 선발하는 외국 사례를 언급했다.
또 2026년 8월 5일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 업무보고에서는 내신 등급을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줄이면 경쟁이 실제로 줄어드는지, 더 적은 등급으로 줄이면 경쟁이 더 줄어드는지, 나아가 등급 자체를 없애면 경쟁이 사라지는지를 되묻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를 정부의 ‘추첨제 추진’이나 ‘무등급제 추진’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다만 대입에서 경쟁과 변별을 어느 수준까지 인정하고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정부 차원의 대입논의에서 실제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질문도 분명해진다. 우리 사회는 대입경쟁과 변별을 어디까지 줄이기로 합의했는가. 그리고 그동안 줄였다고 믿어온 경쟁과 변별은 정말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다른 평가와 다른 준비의 영역으로 이동한 것인가.
추첨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경쟁을 최소화하는 것을 일관된 목표로 삼는다면 추첨은 논리적으로 이상한 제도가 아니다. 일정한 성취수준 이상을 충족한 학생들에게 동등한 자격을 인정하고 희소한 자리를 무작위로 배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평가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학생 간 성취 차이를 어디까지 선발에 반영하지 않을 것인지, 대학의 선발자율성을 얼마나 제한할 것인지, 우연에 의해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결과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선택이다.
경쟁을 줄이는 데 동의하는 것과 그 선택에 따르는 대가까지 감수하는 데 동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따라서 경쟁 완화를 대입개혁의 목표로 삼으려면 그 종착점과 그 선택에 따르는 대가까지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경쟁을 인정하면 질문은 달라진다
반대로 희소한 자리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경쟁과 변별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면 대입개혁의 질문은 달라진다. 경쟁을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경쟁이 더 정당한가를 묻게 된다.
학생 자신의 학업능력과 노력을 중심으로 경쟁하게 할 것인가, 가정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크게 작동하는 영역에서 경쟁하게 할 것인가. 기준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평가에서 변별할 것인가, 여러 평가자의 해석과 복잡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변별할 것인가.
학교교육 안에서 이룬 성취를 중심으로 선발할 것인가, 학교 밖의 추가 준비가 중요한 선발요소를 확대할 것인가. 대입개혁의 핵심은 경쟁의 양만이 아니다. 경쟁의 위치와 방식, 그리고 그 경쟁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비용의 분배가 더 중요하다.
경쟁을 줄이는 과정에서 경쟁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그 이동한 경쟁이 더 많은 정보와 비용을 요구한다면 그것을 경쟁 완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다시 물어야 한다.
수십 년의 개혁은 무엇을 남겼는가
여기서 지난 대입개혁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입개혁은 오랫동안 과도한 경쟁 완화, 사교육 경감, 학교교육 정상화 등을 주요 목표로 반복해서 제시해 왔다. 그렇다면 이제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추가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그동안의 정책은 실제로 경쟁을 줄였는가. 경쟁이 줄지 않았다면 왜 줄지 않았는가. 아니면 경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하고 불투명한 곳으로 이동한 것인가.
시험점수 중심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평가요소를 다양화했다면 경쟁은 실제로 줄었는가. 아니면 학생부, 면접, 논술과 전형전략을 둘러싼 새로운 경쟁이 생겼는가.
학생을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활용했다면 선발은 더 공정해졌는가. 아니면 학교가 대학에 제공할 기록과 자료를 더 많이 생산하는 기관이 되었는가.
학생 간 석차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상대평가의 영향력을 줄였다면 학생들은 학교수업에 더 충실하게 참여하게 되었는가. 아니면 실제 당락을 가르는 다른 선발요소를 향해 이동했는가.
같은 목표를 향해 비슷한 정책수단을 계속 강화했는데 기대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반복이 아니라 문제정의와 인과관계의 재검토다.
경쟁 완화라는 목표가 옳았는지, 변별을 줄이는 수단이 적절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학교교육과 학생이 어떤 부담과 대가를 치렀는지를 되돌아보지 않은 채 또다시 경쟁을 줄이자고 말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잘못된 반복일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착시가 생긴다. 경쟁 완화와 변별 축소가 공정성과 학교교육 정상화 등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되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수단 자체가 공정성의 증거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경쟁을 줄였으니 더 공정할 것이다. 변별을 낮췄으니 더 좋은 제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자동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변별이 다른 평가요소로 이동하고 그 과정이 더 복잡하고 불투명해진다면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에서 정책의 할루시네이션이 시작된다. AI의 할루시네이션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정책의 할루시네이션은 조금 다르다. 검증되지 않은 인과관계가 좋은 가치와 결합해 마치 확인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가깝다.
문제는 ‘그럴듯하다’와 ‘실제로 그렇다’ 사이에 검증해야 할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국교위가 먼저 합의해야 할 것은 평가형식이 아니다
현재 대입개혁 논의의 방향을 두 축으로 압축하면, 형식에서는 경쟁과 변별을 줄이고 내용에서는 서·논술형을 확대해 사고력과 표현력을 평가하려는 흐름으로 읽힌다.
내신은 이미 9등급에서 5등급 체제로 바뀌었고, 현재 수능 절대평가 전환 여부도 논의되고 있다. 한편 평가의 내용에서는 서·논술형 확대와 수능 도입을 통해 사고력과 표현력을 더 평가하자는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말하자면 형식의 축은 변별의 완화, 내용의 축은 사고력·표현력 강화다. 문제는 이 두 정책수단이 각각 현재 대입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지 충분히 설명됐는가 하는 점이다.
변별을 줄이면 현재 대입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가. 서·논술형 확대는 현재 대입의 어떤 결함을 해결하는가. 그리고 이 두 정책수단을 함께 사용하면 학교교육과 대학선발은 실제로 더 좋아지는가.
대입개혁에서 먼저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할 것은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 선택형이냐 서·논술형이냐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대입에서 경쟁과 변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면 그 종착점과 그 선택에 따르는 대가까지 합의해야 한다. 반대로 일정한 경쟁과 변별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한다면 어떤 능력과 성취를 기준으로 경쟁하게 할 것인지, 그 경쟁을 어디에 둘 것인지, 그리고 누가 어떤 대가를 감당할 것인지를 합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서·논술형 수능의 찬반을 묻기 전에 국가교육위원회가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 있다.
현재 대입은 학생의 어떤 사고력과 표현력을 측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대학선발과 대학교육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를 서·논술형 수능이 해결할 수 있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나아가 앞으로 10년의 국가교육에서 필요하다는 사고력과 표현력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고력’과 ‘표현력’은 누구나 동의하기 쉬운 좋은 말이다. 그러나 국가의 중장기 교육계획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개념이 정의되어야 하고, 문제가 진단되어야 하며, 왜 특정 정책수단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도 검증되어야 한다.
문제진단과 개념정의, 정책수단의 효과에 대한 검증 없이 ‘사고력과 표현력이 중요하다’는 상식적 명제가 곧바로 서·논술형 수능이라는 정책수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숙의는 국민에게 특정 평가방식의 찬반을 묻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그 평가방식을 선택할 기준 자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경쟁을 없애겠다면 그 종착점과 그 선택에 따르는 대가까지 합의해야 한다. 경쟁을 인정한다면 어떤 경쟁을 어디에 둘 것인지 합의해야 한다. 국가의 10년 교육계획이 먼저 합의해야 할 것은 평가형식이 아니라, 그 평가형식을 선택할 기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