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여원동 기자 | 한국 학생의 ‘읽는 힘’에 경고등이 켜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8일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5에서 한국 만 15세 학생의 읽기 평균점수는 501점이었다. 2022년 515점보다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수학은 527점에서 522점, 과학은 528점에서 526점으로 내려갔다. 세 영역 가운데 읽기 하락이 가장 두드러졌다.
순위만 보면 여전히 높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읽기 1~9위, 수학 1~2위, 과학 1~3위 수준이다. 세 영역 모두 OECD 평균을 웃돈다. 하지만 순위보다 눈여겨볼 숫자가 있다.
읽기에서 기초 성취수준인 2수준에 미치지 못한 학생은 2022년 14.7%에서 2025년 17.8%로 3.1%포인트 늘었다. 반대로 높은 수준의 글을 이해하고 사실과 의견 등을 구분할 수 있는 5수준 이상 학생은 13.3%에서 10.3%로 3.0%포인트 줄었다.
남녀 격차도 크다. 여학생은 515점, 남학생은 487점이었다. 28점 차이다. 그렇다고 PISA 한 번의 결과를 놓고 ‘한국 학생의 문해력이 붕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읽기 하락은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OECD 회원국의 읽기 평균은 2015년 489점에서 2025년 461점으로 28점 떨어졌다. 2018년 이후 비교 가능한 OECD 35개국에서는 2022년부터 2025년 사이에만 평균 14점 하락했다.
OECD도 이 현상을 코로나19 하나로 설명하지 않는다.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이전부터 하락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14점 하락을 가볍게 볼 수도, 한국만의 ‘문해력 위기’로 단순화할 수도 없는 이유다.
디지털 문제해결력은 538점
이번 PISA에서 함께 봐야 할 숫자가 있다. 538점이다. PISA 2025가 처음 평가한 ‘디지털 세계에서의 학습’ 가운데 한국 학생의 컴퓨팅 문제해결력 점수다. OECD 평균은 500점이었다.
한국 학생은 컴퓨팅 도구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오류를 찾아 수정하는 능력에선 높은 성취를 보였다. 읽기에서는 하락했는데 디지털 환경의 문제해결에서는 강했다.
그러나 이 결과를 ‘한국 학생은 디지털에는 강하고 글에는 약하다’고 단순화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질문해야 한다. 미래교육에서 필요한 능력은 둘 가운데 어느 하나인가.
OECD가 읽기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ISA가 측정하는 읽기는 단순히 글자를 읽고 뜻을 아는 능력이 아니다. 글의 핵심을 찾고, 정보를 연결하고, 긴 글과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고, 정보의 출처와 내용을 토대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수학과 과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글을 읽고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읽기는 국어 한 과목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학습으로 들어가는 문인 셈이다.
‘문해력 저하’ 논란, PISA가 확인한 건 어디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이미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반복돼 왔다. PISA 2025는 적어도 만 15세 학생의 읽기 성취도가 최근 크게 하락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위 성취 학생이 늘고 상위 성취 학생이 줄었다는 점도 확인된다. 하지만 원인까지 밝혀낸 건 아니다.
교육부는 디지털 매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 환경, 학생의 읽기 동기와 태도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원인은 PISA 결과와 교육 맥락 자료를 연계해 추가 분석할 예정이다. 스마트폰이나 SNS 때문에 읽기 점수가 떨어졌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생성형 AI는 더욱 조심해서 봐야 한다. PISA 2025는 학생들의 학교 공부에서 AI 챗봇 사용도 조사했다. OECD 전체를 보면 AI를 학습에 적당한 수준으로 활용한 학생이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매우 빈번하게 사용한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성취를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도 AI 사용이 성적을 올리거나 떨어뜨린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한 건 아니다. OECD가 강조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AI와 디지털 기술은 학습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 집중하고 노력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PISA의 읽기 결과와 AI 시대 교육이 만난다. AI는 긴 글을 몇 초 만에 요약한다. 모르는 개념을 설명하고 글도 써준다. 정보를 찾는 데 걸리던 시간도 크게 줄였다. 그렇다면 학생에게 더 이상 읽는 힘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AI가 내놓은 답을 이해하려면 읽어야 한다. 틀린 정보를 찾아내려면 여러 정보를 비교해야 한다. 주장과 근거를 구분하고, 출처가 믿을 만한지 판단하고, 무엇을 다시 물어야 할지 결정하는 데도 읽고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AI가 답을 만드는 시대일수록 사람에게 필요한 건 그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능력일 수 있다.
지식을 많이 가르치는 학교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학교로
여기서 한국 학교교육의 오래된 질문과 만난다. 산업화 시대의 학교는 같은 나이의 학생을 같은 시간과 공간에 모아 정해진 지식을 전달하는 데 효율적인 시스템이었다. 교사가 설명하고 학생은 배우고 기억했다. 시험은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이 구조의 한 축을 흔들고 있다. 지식을 찾고 정리하고 요약하는 일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식교육이 필요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읽기 역시 마찬가지다.
기초지식이 있어야 AI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다. 글을 제대로 읽어야 질문을 만들 수 있고, 근거를 비교해야 자기 판단을 세울 수 있다. 따라서 AI 시대 학교가 가르쳐야 할 것은 ‘AI 사용법’만일 수 없다.
읽고, 질문하고, 토론하고, 근거를 찾고, 판단하고, 다시 표현하는 능력이 함께 가야 한다. 교육부가 PISA 결과를 발표하며 독서교육과 질문·토론 중심 수업, 탐구·문제해결 교육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방향과 맞닿아 있다.
문제는 이를 몇 개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느냐다.
새로운 ‘교육 100년대계’가 필요한 이유
PISA 2025 하나로 한국 교육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결과가 던지는 질문은 작지 않다. 한국 학생은 여전히 국제적으로 높은 학업성취를 보인다. 컴퓨팅 문제해결력도 강하다. 동시에 읽기 성취도는 하락했고 기초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은 늘었다.
세계의 교육환경은 더 빠르게 변한다. 생성형 AI는 학생이 지식을 얻고 글을 쓰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그런데 국가교육의 중심이 여전히 무엇을 얼마나 가르칠 것인가에 머문다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이제 더 근본적인 설계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학생에게 어떤 지식을 가르칠 것인가와 함께 어떤 사람으로 길러낼 것인가를 다시 정해야 한다.
읽고 이해하는 힘, 질문하는 힘,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힘,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힘, 다른 사람과 토론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힘, AI를 사용하면서도 사고 자체를 AI에 넘기지 않는 힘 같은 능력을 학교의 어느 교과, 어느 수업에서 누가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 국가교육 차원에서 답해야 한다.
‘교육 100년대계’라는 말은 오래됐다. 그러나 AI가 기존 학교의 역할 자체를 묻기 시작한 지금, 그 말의 의미는 오히려 새로워지고 있다.
PISA 2025가 보여준 것은 한국 학생의 읽기 점수가 떨어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AI가 지식을 대신 찾아주는 시대에도 학생은 스스로 읽고 생각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미래교육의 출발점은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만이 아니다. AI가 대신 생각하게 두지 않는 힘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