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간 대신 답하고 생각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만든 문법 위에 서 있다. 교육은 다시 거대한 갈림길이다. 미래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더에듀>는 10회에 걸쳐 학교의 뿌리부터 AI 시대 교육의 미래까지 추적한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의 다음 100년을 결정한다. /편집자 주」
더에듀 윤철순 기자 | 튀르키예의 한 고등학교 수학 교실. 학생들에게 문제가 주어졌다. 일부 학생 곁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있었다. 질문을 입력하면 AI가 답을 내놨다. 막히는 부분을 물을 수도 있었다. AI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은 문제를 더 잘 풀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예상했던 결과다. 그런데 연구진이 AI를 치우고 다시 시험을 보게 했다. 결과가 뒤집혔다. 일반적인 GPT-4를 학습 보조 도구로 사용했던 학생들은 처음부터 AI 없이 공부했던 학생들보다 시험 성적이 17% 낮았다.
이상한 일이다. AI와 함께 있을 때는 더 잘 풀었는데, AI가 사라지자 오히려 못 풀었다. 그렇다면 앞서 문제를 잘 풀었던 건 누구의 실력이었을까. 학생이 배운 것일까. AI가 대신 해낸 것일까.
문제를 풀었다고 배운 건 아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내놓은 ‘디지털 교육 전망 2026’은 이 실험을 생성형 AI 시대 교육이 마주한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 등이 튀르키예 고교생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이다.
학생들을 AI 없이 공부하는 집단과 일반적인 GPT-4를 사용할 수 있는 집단, 학습을 돕도록 별도로 설계된 AI 튜터를 사용하는 집단으로 나눴다.
연습 과정에서는 AI의 위력이 분명했다. 일반 GPT-4를 사용한 학생들의 문제풀이 성과는 AI를 사용하지 않은 학생보다 48% 높았다. 학습용으로 설계된 AI 튜터를 사용한 학생은 무려 127% 높은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AI를 사용할 수 없는 시험에서는 달랐다. 일반 GPT-4에 의존해 공부한 학생의 성적이 AI 없이 공부한 학생보다 17% 낮아졌다. 반면 학생에게 곧바로 답을 내주는 대신 학습 과정을 돕도록 설계된 AI 튜터를 사용한 집단에선 이런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AI를 쓰면 공부를 못한다’는 결론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AI는 학생의 학습을 강력히 도울 수 있다. 문제는 AI가 무엇을 해주느냐, 그리고 인간이 그 과정에서 무엇을 하느냐다. 정답을 얻는 것과 배우는 건 같지 않았다.
‘검색하면 되는데 왜 외우나’가 다시 돌아왔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비슷한 질문은 있었다. 계산기가 있는데 구구단을 외울 필요가 있을까. 인터넷 검색으로 금방 찾을 수 있는데 수많은 사실을 머릿속에 넣어야 할까. 스마트폰 하나면 세계의 정보를 불러올 수 있는데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성형 AI는 이 질문을 훨씬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검색은 정보를 찾아줬다. 인간은 찾아낸 정보를 읽고 연결하고 판단해야 했다.
AI는 한 걸음 더 들어왔다. 질문하면 필요한 내용을 골라 설명한다. 복잡한 내용을 정리하고 서로 다른 주장을 비교한다. 사용자가 원하면 결론까지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정말 머릿속에 지식을 쌓아둘 필요가 없어지는 것일까. 여기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인간의 머리는 빈 서랍장이 아니다. 필요할 때마다 외부에서 정보를 꺼내 넣는다고 곧바로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걸 이해하려면 이미 알고 있는 게 필요하다.
광합성이라는 개념을 전혀 모르는 학생에게 식물의 탄소 순환을 설명하긴 어렵다.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어떤 정치적 사건의 의미를 판단하기 어렵다. 확률을 모르면 통계가 보여주는 숫자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 가늠하기 힘들다.
새로운 정보는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는 지식과 연결될 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지식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외웠는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지식은 생각이 딛고 서는 바닥이다.
좋은 질문은 빈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AI 시대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질문은 어디에서 나올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가장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역사를 알아야 현재의 사건을 과거와 비교할 수 있다. 과학의 기본 원리를 알아야 AI가 내놓은 설명에서 이상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힘이 있어야 질문을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서로 다른 주장과 사례를 알고 있어야 “정말 그런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
질문에도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지식이다. AI가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인간이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돌아오는 답은 달라진다. 더 큰 문제는 답을 받은 다음이다.
그 답이 맞는가. 무엇이 빠졌는가. 다른 설명은 가능한가. 누구의 관점이 들어가 있는가.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가.
마지막 판단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그런데 인간 안에 아무런 판단의 근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AI가 내놓은 그럴듯한 답을 의심할 이유도,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챌 방법도 줄어든다.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인간에게 지식이 덜 필요한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AI의 답을 다룰 수 있는 인간의 지식이 더 중요해질 수 있는 이유다.
머릿속에 무엇이 남았는가
교육에서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학생이 숙제를 제출했다. 답은 모두 맞았다. 그 학생은 알고 있는 걸까.
과거에는 적어도 답을 만드는 과정 상당 부분을 학생이 직접 거쳐야 했다. 책을 읽고, 공식을 떠올리고, 문장을 만들고, 틀린 답을 고치면서 결과에 도달했다.
이젠 결과만 놓고 보면 인간이 만든 것인지 AI의 도움을 받은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진다.
어디까지 스스로 생각했는가. 무엇을 몰라 AI에 물었는가. AI의 답을 어떻게 확인했는가. 틀린 부분을 찾아냈는가. 여러 답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다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과제를 끝낸 뒤 학생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앞선 튀르키예 실험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반적인 AI를 사용할 때 학생들은 눈앞의 문제를 더 잘 풀었다. 하지만 AI가 사라진 뒤에는 그 성과가 자신의 실력으로 남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반면 학습을 목적으로 설계된 AI는 달랐다. AI 자체를 밀어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AI가 학생 대신 생각하게 할 것인가, 학생이 더 깊이 생각하도록 도울 것인가. 교육에서는 이 차이가 결정적이다.
뉴욕은 왜 AI에 브레이크를 걸었나
이 문제는 연구실 밖으로도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 공립학교 시스템인 뉴욕시는 2026~2027학년도부터 유아교육 과정부터 8학년까지 학생이 직접 사용하는 생성형 AI에 모라토리엄을 적용했다. 고등학생에게도 검증된 프로그램에 한해 제한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흥미로운 건 뉴욕이 AI 자체를 학교 밖으로 몰아내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고등학생에게는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개인정보와 편향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학교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진로교육 등에서는 교사의 감독 아래 AI를 사용할 수 있다.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기술이 학습을 대신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뉴욕시 교육당국은 학교가 학생이 생각하고, 읽고, 쓰고, 추론하고, 문제를 풀고, 서로 이야기하며 어려움을 견뎌내는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AI를 가르쳐야 하지만, AI 시대를 준비한다는 이유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역설이다.
그렇다면 암기교육으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여기서 또 다른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식이 중요하다고 해서 과거의 암기교육으로 돌아가잔 얘기는 아니다. 시험에 나오는 정보를 많이 기억하고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만으로 충분했다면 오히려 AI가 인간보다 훨씬 유리하다.
인간이 AI와 지식의 양을 겨루는 교육은 승산이 없다. 필요한 건 ‘더 많이 외우는 교육’과 ‘아무것도 외우지 않아도 되는 교육’ 사이의 다른 길이다.
기초적인 지식은 인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걸 이해할 수 있다. 그 지식들은 서로 연결돼야 한다. 그래야 하나의 사실을 다른 사실과 비교하고 맥락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질문하고, 의심하고, 확인하고, 판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지식과 사고력을 서로 반대편에 놓는 것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식 없는 사고는 공중에 떠 있기 쉽다. 반대로 생각하지 않는 지식은 시험이 끝나면 사라지는 정보가 되기 쉽다. AI 시대 교육이 찾아야 할 것은 둘 사이의 새로운 관계다.
AI의 머리와 인간의 머리는 다르다
AI는 인간 한 사람이 평생 읽기 어려운 규모의 정보를 다룬다. 앞으로 그 능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그 지식이 인간의 것이 되는 건 아니다.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역사적 사실 하나를 10초 만에 찾을 수 있다고 해서 그 학생에게 역사를 보는 눈이 생기는 건 아니다. AI가 복잡한 과학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들은 학생에게 과학적 사고가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도구가 가진 능력과 인간이 가진 능력을 구분해야 한다. 내 손에 계산기가 있다고 수학적 사고력이 생기는 건 아니다. 내 손에 번역기가 있다고 다른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가진 지식을 인간이 언제든 빌려 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과 인간이 지식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오히려 교육이 해야 할 일이 더 어려워졌다. 무엇을 반드시 인간 안에 남겨야 하는가. 무엇은 AI에 맡겨도 되는가. 어떤 지식은 기억해야 하고 어떤 정보는 필요할 때 찾아도 되는가. AI의 답을 검증하기 위해 학생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뭔가.
이제 교육과정은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만이 아니라 ‘무엇만큼은 인간의 머릿속에 남겨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답을 가진 AI 옆에서 교사는 뭘 해야 하나
수천 년 동안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강력한 자산이 있었다. 먼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모르는 걸 교사는 알았다. 그래서 설명했고 학생은 배웠다.
그런데 이제 교실 안에 전에 없던 존재가 들어오고 있다. 학생이 모르는 걸 묻자 몇 초 만에 설명한다. 다시 물으면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학생 수준에 맞춰 문제도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교사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일까. 아마 질문을 거꾸로 해야 할지 모른다. 답을 알려주는 일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면, 교사는 원래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
학생이 뭘 알아야 하는지 정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잘못 이해한 걸 발견하고, 질문을 더 깊게 만들고,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적 성장까지 돕는 일.
AI가 답을 더 잘할수록 오히려 ‘가르친다는 것’의 본질이 선명해질 가능성도 있다. AI가 답을 갖고 있는 시대. 아이들에게 지식이 필요 없어진 게 아니다. 이젠 어떤 지식을 왜 배워야 하는지를 더 정확하게 결정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순간 또 하나의 오래된 직업이 질문 앞에 선다.
교사다.
다음 회 〈산업화 학교의 종말 ④〉에서는 ‘지식을 가르치던 교사, 이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