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1875년,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앙리 드 보르니에(Henri de Bornier)는 그의 희곡 《롤랑의 딸(La Fille de Roland)》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대사를 남겼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개의 국가가 있다. 자신의 나라, 그리고 프랑스.”(Tout homme a deux pays : le sien et puis la France.) 자국이 곧 세계 지성과 예술의 중심이라는 자긍심 넘치는 이 한 문장은 오랫동안 프랑스가 자랑해 온 문화적 영향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를 반영하듯 자국 콘텐츠와 언어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 통상 협정에서도 ‘문화적 예외(Exception culturelle)’를 강조하고, 축구 경기마저 ‘아트 사커(Art Soccer)’라 부르며 예술의 칭호를 붙이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한마디로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는 나라가 프랑스인 것이다.
그런 예술의 본고장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문화계에서 최근 주목받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Hallyuwood’이다. 이는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뜻하는 ‘한류(Hallyu)’와 세계적인 영화산업의 대명사인 ‘할리우드(Hollywood)’를 결합한 표현이다.
다만 이 용어 자체는 최근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며, 한류의 확산과 함께 이전부터 사용돼 왔다. 그럼에도 이 표현이 주목받는 것은 대한민국이 보유한 강력한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세계 문화 무대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의 수필 '나의 소원'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구절이 떠오른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과 전쟁, 가난의 터널을 지나온 민족이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은 꺾이지 않는 노력과 창의성으로 세계 문화의 지형도를 새롭게 그려가고 있다. 한국의 문화는 이제 단순히 소비되는 상품을 넘어 세계인과 소통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찬란한 ‘한류’의 시대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과 교육 현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유산은 학교 문턱을 넘어 우리 교육의 지평을 어떻게 바꾸어 놓아야 하는가?
세계인을 사로잡은 한류 콘텐츠의 본질은 화려한 비주얼만이 아니라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에 있다.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나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의 핵심 동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인류 공통적 아픔과 인간성을 파헤친 날카로운 질문에 있었다.
또한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쾌거는 한국 문학이 지닌 역사적 상흔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사건이었다. 이러한 예술적 성취는 이제 우리의 교육에 명확한 과제를 던진다.
미래교육은 지금까지의 단순히 정답을 찾는 기술을 넘어, ‘자신만의 서사’를 구성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전 읽기와 깊이 있는 글쓰기 등의 교육이야말로 제2, 제3의 한강과 봉준호, 이창동을 키워내는 튼튼한 토양이 될 수 있다.
예술의 본고장에서 우리가 얻은 ‘한류’라는 자랑스러운 열매는 결코 주입식 교육이나 획일적인 통제 속에서는 얻을 수 없었다. 기존의 틀을 깨는 다양성과 개성,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그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세계인이 환호하는 K-Pop의 대명사인 방탄소년단(BTS)이 세계를 사로잡은 비결 역시 기획사의 기계적인 훈련만이 아니라 멤버들의 자기표현과 창작 참여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의 교실 역시 획일적인 서열화와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따라서 학생 개개인의 고유한 창의성과 예술적 감수성을 존중하는 교육과정의 전환이 필요하다.
음악, 미술, 연극, 미디어 교육은 더 이상 입시의 뒷전으로 밀려나는 ‘교양 과목’이 아니라,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핵심 역량을 기르는 교육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하는 ‘RAS 교육’, 즉 읽기(Reading), 예술(Arts), 스포츠(Sports)에 중점을 둔 학교교육의 전개는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지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경기도교육청은 2026학년도 2학기부터 RAS 경기 문예체 교육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자국 문화에 품었던 자긍심처럼, 이제 우리 아이들도 스스로의 문화적 정체성에 깊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참된 문화강국은 자만하지 않는 겸손함과 다양성을 품는 포용력에서 나온다.
백범 김구 선생이 말한 ‘높은 문화의 힘’은 타국을 총칼로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며 인류 전체의 행복에 기여하는 문화의 힘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제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단단히 안겨주는 동시에, 세계시민으로서 타 문화를 존중하고 연대하는 광범위한 공존의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개의 국가가 있다. 자신의 나라, 그리고 프랑스”라던 19세기 유럽의 자부심을 넘어, 21세기 세계인들은 이제 대한민국의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소비하고 열광하는 것이 단지 K-pop이나 K-drama라는 상품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속에 담긴 한국인의 창의성과 열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교육은 한 국가의 미래를 만드는 가장 거대한 문화·예술 사업이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는 책 한 권, 교사와 학생이 나누는 일상 대화 한 줄이 바로 미래의 ‘한류’를 지탱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우리 교육이 미래 세대인 아이들의 가슴속에 창의성의 불씨를 맘껏 지피고 인문학적 깊이(depth)를 더해줄 때, 대한민국은 단지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를 넘어 이 시대 인류의 정신적 풍요에 기여하는 ‘퍼스트무버(First Mover)’이자 진정한 ‘세계 속의 문화강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