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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의 미신, 대입개혁을 다시 묻다] ⑥ 대입개혁,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더에듀 | 대입개혁은 늘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새로 넣을 것인가를 물었다. 선택형을 줄이고 서·논술형을 넣자고 하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자고 한다. 수능의 영향력을 줄였다가 공정성 논란이 커지면 다시 수능을 강화한다. 낡은 제도를 새로운 제도로 교체하면 학교교육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평가방식을 바꾼다고 선발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능의 변별력을 낮춰도 같은 등급을 받은 학생이 대학 정원보다 많으면 대학은 다시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한다. 지원자가 정원보다 많고 추첨으로 선발하지 않는 한, 변별은 내신과 학생부, 면접과 대학별 논술 등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뿐이다.

 

수능의 선발 기능을 줄여도 경쟁은 다른 곳에서 계속된다. 새로운 평가가 추가되면 학교와 학원, 수험생은 그 규칙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서·논술형 수능 도입, 수능의 자격고사화, 내신 절대평가를 하나의 대입개혁 방향으로 추진한다면 이를 서로 무관한 낱개 의제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수능과 내신의 변별 기능을 함께 낮춘 뒤에도 지원자가 대학 정원보다 많다면 핵심 질문은 하나다.

 

마지막 합격자를 어디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가를 것인가.

이 질문은 개별 정책을 결정한 뒤에 물을 후속 질문이 아니다. 대입개혁 전체 설계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정책은 단계적으로 시행할 수 있지만, 국민에게는 낱개 정책보다 전체 개혁 방향과 선택 가능한 대안별 설계도가 먼저 제시돼야 한다. 공론화가 의제를 공개하고 사회적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라면, 숙의는 충분한 정보와 대안, 예상되는 결과와 상충관계를 학습하고 토론하며 판단을 형성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서·논술형 수능, 수능의 자격고사화, 내신 절대평가를 각각 공론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제대로 숙의하려면 가능한 대안별로 변별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마지막 합격자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가르는지까지 밝혀야 한다. 그에 따라 학교교육과 사교육, 선발의 공정성과 대학의 자율성이 무엇을 얻고 잃는지도 충분히 알리고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상충관계와 최종 선발구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낱개 의제의 찬반만 묻는다면, 그것은 공론화일 수는 있어도 충분한 숙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평가·자격·선발·교육, 기능부터 구분해야 한다

대입 전체 구조를 설계하려면 먼저 학교평가, 자격시험, 선발시험, 대학교육의 기능과 책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학교평가의 본래 기능은 학생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확인해 다음 학습을 돕는 데 있다. 다만 그 결과가 대입자료로 활용되는 순간 학교평가에도 선발 기능이 더해진다.

 

자격시험은 일정한 성취수준에 도달했는지를 판단하고, 선발시험은 제한된 자리를 배분하기 위해 지원자를 구분한다. 대학은 입학한 학생에게 전공지식을 가르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창의적·비판적 사고와 표현력, 학술적 탐구 능력을 기르도록 할 교육 책임을 진다.

 

초·중등에서도 서·논술 교육과 평가는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학생의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을 기르겠다는 목적과, 한 번의 답안과 1점 차이로 대학 당락을 가르는 고부담 선발시험은 서로 충돌할 수 있다.

 

당락을 의식하는 순간 학생은 미완성된 생각이나 새로운 관점을 시도하기보다 채점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답안을 선택하게 된다.

 

반면 대학은 입학 당락에서 벗어난 학생이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교수와 동료의 피드백을 받으며 반복해서 수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학습공간이다.

 

따라서 깊이 있는 논증과 표현 능력은 입학 전에 완성된 형태로 선발시험에서 증명하도록 요구하기보다, 대학이 학습과정에서 책임 있게 가르치고 평가해야 할 핵심 역량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능과 책임을 구분한다는 것은 학교교육과 대입을 단절하자는 뜻이 아니다. 각각의 목적과 책임을 분명히 한 뒤 학교교육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결하자는 것이다.

 

특히 목적과 책임이 다른 학교평가와 자격시험, 선발시험을 ‘평가’라는 말 하나로 묶어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교육적으로 좋은 평가라고 해서 곧바로 대학의 합격자를 가르는 좋은 선발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측정 결과로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해도 된다는 것 사이에는 별도의 타당성 검증이 필요하다.

 

해외 사례도 같은 기준으로 봐야 한다. 다른 나라가 서·논술형 시험을 치른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수능에 도입해야 할 정당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선택형과 서·논술형은 학생이 답하는 형식이지 대입제도의 기능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점수가 졸업이나 대학입학 자격을 확인하는지, 여러 평가요소 가운데 하나로 활용되는지, 아니면 한국의 정시 수능 위주 전형처럼 미세한 점수 차이로 지원자의 순위와 당락을 결정하는지다.

 

이러한 차이를 지운 채 ‘사고력’과 ‘미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응답 형식만 비교하면 시험점수가 실제로 수행하는 선발 기능을 가리게 된다. 해외 사례는 도입의 명분을 만드는 데 이용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제도가 어떤 조건에서 왜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는 데 사용해야 한다.

 

서·논술형 수능, 무엇을 먼저 검증할 것인가

서·논술형 수능 논의는 이러한 혼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학생의 사고력과 논증 능력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먼저 교원의 행정업무를 줄이고 채점시간과 피드백 여건을 확보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 수와 평가 전문성을 뒷받침하고, 학교에서 이미 시행해 온 서·논술형 평가가 수업과 학습, 학교 간 격차와 사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반대로 대학의 학생 선발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른 검증이 필요하다.

 

서·논술형 수능이 기존 수능보다 대학 학업준비도를 더 타당하게 측정하는지, 미세한 점수 차이를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지, 학교와 지역·가정 배경에 따른 격차를 키우지 않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복수채점과 이의심사에 필요한 비용과 행정 부담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수능의 변별력을 낮춘다면 마지막 합격자를 무엇으로 가를 것인지 밝혀야 한다. 교육적으로 좋은 평가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선발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검증 없이 수능부터 바꾸는 것은 학교교육과 대입을 연계하는 개혁이라기보다 대입시험의 강제력으로 학교의 수업과 평가를 움직이려는 구조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선택형을 서·논술형으로 바꾸더라도 대입이 학교교육을 지배하는 방향이 그대로라면 시험 형식만 달라질 뿐 개혁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입개혁이 지켜야 할 기준은 무엇인가.

 

첫째, 학교교육의 목적이다.

학교수업이 대학의 채점기준을 역산해 정답 형식을 훈련하거나 입시자료를 생산하는 시간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역량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대학수학에 필요한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이 소외돼서도 안 된다.

 

사고력은 지식과 대립하는 능력이 아니다. 축적된 지식을 이해하고 연결하며 활용하는 과정에서 사고력도 길러진다. 대입이 학교교육을 존중한다는 것은 학교에 더 많은 기록을 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대입 준비가 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학생 자신의 학습과 성취다.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 거주지역과 컨설팅 능력, 학교 밖 준비기회가 학생 자신의 학업성취보다 더 크게 작동한다면 그 제도를 공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가정배경의 영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제도가 학생 밖의 자원을 얼마나 요구하는지는 따져야 한다.

평가요소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공정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평가정보가 많고 전형이 복잡해질수록 이를 준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또 다른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공정성은 평가항목의 수보다 무엇이 합격에 가장 크게 작동하도록 설계했는가의 문제다.

 

셋째, 선발의 타당성과 설명 가능성, 예측 가능성이다.

국가는 경쟁을 없앴다고 말하기 전에 변별을 어디로 옮길 것인지 밝혀야 한다. 학생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하고,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자신의 점수와 당락이 결정됐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서·논술형 점수를 사용한다면 부분점수의 근거와 이의심사 절차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마다 다른 기준 속에 변별을 숨기는 것은 경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정보격차를 키울 수 있다. 다양성은 필요하지만 복잡성이 그 대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대학의 교육책임이다.

대입은 대학교육을 마친 학생의 최종 역량을 재는 졸업시험이 아니라, 대학에서 공부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판단하는 입학제도다. 대학에서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길러야 할 분석력과 논증 능력까지 고등학생에게 미리 완성해 오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대학은 학생을 선발하는 기관인 동시에 입학한 학생을 가르치고 성장시킬 책임이 있는 교육기관이다. 대학이 가르쳐야 할 역량을 대입에서 미리 증명하도록 할수록 그 준비 책임은 고등학교와 학생, 학부모, 사교육시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다섯째, 학생과 가정이 감당해야 할 부담의 한계다.

새로운 평가를 도입한다면 기존의 무엇을 없애거나 줄일지도 함께 밝혀야 한다.

 

교과지식과 내신·학생부 준비는 그대로인데 서·논술형 답안훈련과 AI 첨삭, 면접과 대학별고사까지 추가된다면 개혁이 아니라 부담의 누적이 될 수 있다. 정책의 효과는 무엇을 도입했는지가 아니라 학생의 삶에서 실제로 무엇이 줄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대입개혁의 기준은 ‘새로움’이 아니다

이 다섯 가지 원칙을 관통하는 최종 기준은 학교교육을 얼마나 덜 훼손하는가다.

 

대입에는 완벽한 제도가 없다. 선택형이든 서·논술형이든 고부담 선발시험은 반복훈련을 낳을 수 있고, 정성평가는 판단의 불확실성을, 다양한 전형은 복잡성과 정보격차를 키울 수 있다. 절대평가는 변별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고, 상대평가는 경쟁을 강화할 수 있다.

 

어떤 제도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따라서 개혁의 기준은 어떤 제도가 가장 새롭고 이상적으로 보이는가가 아니다.

 

불가피한 선발의 대가를 어디에 둘 때 학생의 학습과 학교교육이 가장 덜 훼손되는가. 대입의 본래 목적은 학교교육을 개혁하는 데 있지 않다. 대입은 학교교육의 성과와 대학교육의 요구를 연결하면서 제한된 교육기회를 배분하는 제도다.

 

대입이 학교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그 강제력을 학교개혁의 우선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교육과정의 목적에 따라 학생을 가르치고 평가하며, 대입은 그 성과를 선발에 필요한 범위에서 활용해야 한다.

 

수능부터 바꾸고 학교를 따라오게 하는 것은 연계가 아니라 역순의 종속이 될 수 있다. 선발이 존재하는 한 경쟁과 변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변별을 허용할 것인가. 그 변별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불가피한 선발의 비용을 어디에 둘 때 학교교육과 학생의 학습이 가장 덜 훼손되는가."

 

대입개혁의 근본 문제는 평가방식에만 있지 않다. 학교교육을 개선해야 할 정책과 대학의 합격자를 선발하는 제도를 구분하지 않은 채 대입의 강제력으로 학교를 바꾸려 한 데에도 있다.

 

교실을 바꾸려면 교실부터 바꿔야 한다. 입시부터 바꾸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학생의 사고력이 아니라 입시전략일 수 있다. 대입개혁은 무엇을 새로 바꾸었는지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 학생의 학습과 학교교육의 무엇을 지켜냈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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