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교육위원회가 17일 ‘학교시민교육 기본원칙’을 확정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를 참고했다기에 무엇을 받아들였고, 한국 학교 현실을 반영해 어떤 걸 다르게 설계했는지 물으려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했다.
‘보도자료’에는 팀장과 담당자명, 전화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 담당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은 통화에서 대뜸 “기사를 쓰려는 건지, 단순 궁금증인지”를 되물었다. 그는 “기자가 연락하는 게 기사를 위한 취재 목적 말고 다른 게 뭐가 있겠냐”고 반문하자 한참 뜸을 들이더니 “기자 대응은 원칙적으로 과장(팀장)이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과장이 회의 중이니 나중에 다시 연락하라”는 황당한 반응을 드러냈다. 정책을 직접 담당하는 사무관이 보도자료 문의처에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공개해 놓고, 정작 정책을 물으니 팀장에게 물어보란다.
기자가 “그러면 왜 보도자료에 이름을 올렸냐”고 물었더니, 이번엔 “저도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다른 목소리가 나가면 곤란하다”는 설명을 덧붙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얼마 전 교육부 취재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교원 정원 산정 구조를 묻는 공식 질의에 답변도, 지연 안내도 없었다. 다시 묻자 담당 부서를 찾아다니라는 식으로 떠넘겼다. 급기야 사무관은 “서면으로 답할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한 번이면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그건 시스템을 의심해 봐야 한다.
공직사회에 묻고 싶다. 공무원은 무엇을 위해 그 자리에 있는가. 자기 이름을 걸고 담당하는 정책을 설명하는 것도 팀장의 허락이 필요하고, 국민을 대신해 묻는 언론 질의엔 답할 의무가 없다고 하면 사무관에게 필요한 역량은 대체 뭐란 말인가.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에게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라고 한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라고도 한다. 그런데 현실의 공직사회에서는 국민보다 상관을 먼저 바라보는 건 아닌지 묻게 된다.
틀린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안전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설명하기보다 ‘윗선’에 넘기는 게 편한 조직이라면 유능한 공무원보다 책임지지 않는 공무원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채용과 인사 시스템도 돌아볼 때다.
5급 공채는 PSAT(공직적격성평가)와 논문형 필기, 면접 등을 거쳐 뽑는다. 공직에 필요한 지적 능력과 판단력을 검증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시험을 잘 보는 능력과 정책을 이해하고 국민에게 설명하며 돌발상황에 책임 있게 대응하는 능력은 같지 않다.
우리는 시험을 잘 치르는 사람을 뽑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맡은 일을 제대로 소화해 내는 공무원을 길러내는 것까지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AI는 이미 지식을 찾고 정리하고 비교하는 능력에서 인간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정답을 많이 기억하고 문서를 잘 만드는 능력의 희소성은 갈수록 떨어질 것이다. 학교만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니다. 공직사회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필요한 공무원은 규정을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판단하는 사람,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정책을 설명하는 사람, 상관의 입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업무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채용부터 교육, 평가, 승진까지 다시 물어야 한다. 무엇을 얼마나 아느냐만큼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소통하며 책임지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국민에게 설명하는 능력도 엄연한 공직역량이어야 한다.
더 아이러니한 건 이날 국교위가 확정한 게 ‘학교시민교육 기본원칙’이라는 점이다.
학교엔 학생을 시민으로 길러내는 새로운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맞다. 그런데 시민 교육 전에 그 시민을 상대하는 공직사회부터 돌아볼 일이다. AI 시대를 맞아 교육시스템의 전면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공직사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학교에 미래를 가르치겠다는 공무원이 과거의 방식으로 일해서야 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