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여원동 기자|180명이 미래 대입제도를 놓고 1박2일 동안 토론했다. 고교 내신에서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72.8%였다. 수능에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절반을 넘었다. 55.5%였다.
그렇다면 180명의 판단대로 미래 대입제도가 바뀌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180명은 대입제도를 결정하는 위원이 아니다. 이들의 숙의 결과 역시 정책결정 그 자체가 아니다.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미래 대입제도를 만들기 위해 국민의 의견을 듣는 여러 과정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이 생긴다. 온라인에서 의견을 낸 국민, 500명의 국민참여위원, 이번 숙의에 참여한 180명,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책을 논의하는 국교위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미래 대입제도는 결국 누구의 판단으로 바뀌는 것일까.
온라인에서 4122명이 7626건 의견
국교위의 대입제도 의견수렴은 180명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국교위는 지난달 14일부터 28일까지 국민의견플랫폼을 통해 ‘국민과 함께 그리는 미래 대입 제도’를 주제로 온라인 집중의견수렴을 진행했다.
집중운영기간 참여자는 4122명, 접수된 의견은 7626건이다. 누구나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국교위가 던진 질문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10년 후에도 지금의 대입제도를 유지해도 되는가,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대입제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였다.
두 번째는 ‘앞으로의 대입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였다.
숫자를 읽을 때 주의할 점도 있다. 4122명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표본을 추출한 여론조사 응답자가 아니다. 국교위 플랫폼을 찾아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또 국교위는 ‘집중운영 기간’이 끝난 뒤에도 의견을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4122명과 7626건은 전체 국민의 찬반 비율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수치가 아니라, 국교위가 미래 대입제도 논의를 위해 공개적으로 모은 의견의 규모로 봐야 한다.
500명 국민참여위원 중 180명이 숙의
온라인 의견수렴과 180명의 숙의도 서로 다른 절차다. 국교위에는 법률에 따라 국민참여위원회를 둔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사회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고 시민 참여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국교위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국민참여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한다.
시행령상 정원은 500명 이내다. 현재 제2기 국민참여위원회(국참위)는 만 16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공개 모집 등을 거쳐 구성됐다. 법은 국민참여위원을 지역·연령·성별·직능별로 균형 있게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시행령은 위원의 5분의 3 이상을 공개 모집절차를 통해 선정하도록 한다. 나머지는 교육·문화·언론·고용·산업·복지·과학기술 등의 전문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 시도지사와 교육감 추천 등을 통해 위촉할 수 있다.
이번 대입 숙의에 이 국참위원 전체가 참여한 건 아니다. 500명 위원 중 203명이 신청했고 실제 1박2일 숙의에 참여한 사람은 180명이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대학원생, 학부모, 전·현직 교원, 대학 교직원, 교육행정기관 종사자 등이 포함됐다. 연령별로는 20~30대가 65명으로 36.1%, 40~50대 58명 32.2%, 60대 이상 40명 22.2%, 10대 이하 17명 9.5%였다.
남성은 105명으로 58.3%, 여성은 75명으로 41.7%였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74명, 비수도권 광역·특별시 48명, 그 밖의 비수도권 지역 58명이 참여했다. 이 때문에 180명을 단순히 ‘국민 대표 180명’이라고 부르는 것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국참위 자체는 법률상 지역·연령·성별·직능별 균형을 고려해 구성되는 기구다. 하지만 이번 180명은 국민 전체에서 이번 대입 의제만을 위해 새로 표본 추출한 180명이 아니라 기존 국참위원 가운데 숙의 참여를 신청해 실제 참석한 사람들이다.
자료 읽고 강의 듣고 토론했다
그렇다고 180명의 의견을 일반적인 온라인 설문과 똑같이 볼 수도 없다. 이번 과정은 ‘숙의’였기 때문이다. 국교위는 제임스 피시킨의 공론조사 방식을 국내 상황에 맞게 변형한 ‘숙의형 공론진단’ 방식으로 토론을 설계했다.
참가자들은 8월29~30일 경기도 화성에서 1박2일 동안 숙의했다. 토론 전에는 국교위가 제공한 사전자료집을 통해 대입제도 논의 배경과 서·논술형 평가의 개념·현황·쟁점 등을 학습했다.
현장에선 전문가 강의와 발제, 질의응답을 거쳤고 7~8명 단위의 소그룹에서 토론했다. 그리고 숙의 전과 후에 같은 질문을 던져 판단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확인했다. 일반적인 찬반조사와 이번 숙의 결과를 구분해서 봐야 하는 이유다.
내신 72.8% “확대 필요”…그런데 숙의 뒤 찬성 ↓
숙의를 마친 뒤 고교 중간·기말고사에서 서·논술형 문항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참여자는 180명 가운데 131명, 72.8%였다. 54명(30.0%)은 ‘매우 필요하다’, 77명(42.8%)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숙의 전과 비교하면 ‘필요하다’는 응답은 오히려 3.3%포인트 줄었다. 수능에서는 변화가 더 분명했다. 5지선다형 문항과 함께 서·논술형 문항을 출제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사람은 숙의 전 105명, 58.3%였다. 숙의 뒤엔 100명, 55.5%로 줄었다.
반대로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68명, 37.8%에서 75명, 41.7%로 늘었다. 숙의 과정에서 불필요에서 필요로 의견을 바꾼 사람은 15명이었지만 필요에서 불필요로 바꾼 사람은 22명이었다.
단순히 정보를 더 많이 알게 되면 서·논술형 도입 찬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은 셈이다.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수능에 적용하는 문제에서는 더 신중해진 모습도 나타났다. 수능 서·논술형 평가의 가장 큰 우려로 87명, 48.3%가 ‘채점 공정성’을 꼽았다.
일부 영역에 먼저 도입한 뒤 전 영역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이 36.7%로 가장 많았고, 일부 영역에만 도입하자는 의견이 30.0%였다. 전 영역에 도입하자는 응답은 5.5%였다.
180명 판단은 ‘결정’이 아닌 ‘자문’
그렇다면 이 숙의 결과에는 얼마만큼의 정책적 무게가 있을까. 법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국가교육위원회법’은 국참위 역할을 국교위 소관 사무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과 관련된 자문’으로 규정한다.
국참위 운영 고시 역시 이 위원회가 의견수렴과 자문 등의 활동을 수행한다고 규정한다. 숙의 결과가 자동으로 정책이 되거나 국교위를 법적으로 구속하도록 돼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 17일 열린 국교위 제10차 회의에서도 이번 숙의 결과는 ‘심의·의결안건’이 아니라 ‘보고안건’으로 본위원회에 올라왔다. 따라서 ‘국민 180명이 수능 서·논술형 도입을 결정했다’고 해석하는 건 제도적 사실과 다르다.
반대로 아무 의미 없는 참고자료라고 보기도 어렵다. 국참위 자체가 법률에 근거해 사회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기 위해 설치된 공식 자문기구이기 때문이다.
국교위는 이번 숙의 결과를 향후 대입제도 논의와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만드는 과정의 자료로 활용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건 55.5%라는 숫자 하나보다 국교위가 이 숙의 결과를 다른 국민 의견과 어떻게 함께 놓고 판단하느냐다.
4122명, 180명, 그리고 21명의 국교위
지금까지의 과정을 다시 놓으면 구조가 보인다. 온라인 집중의견수렴에는 4122명이 참여해 7626건의 의견을 냈다. 별도로 법정 자문기구인 국참위원 500명 가운데 203명이 대입 숙의를 신청했고 180명이 실제 참여했다.
국교위는 인천과 전남·광주, 대구에서도 학생·학부모·교원 등이 참여하는 현장토론회를 열었다. 그리고 180명의 숙의 결과는 지난 17일 국가교육위원회 본위원회에 보고됐다.
국교위 본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법정 정원 21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숫자들을 단순히 ‘4122명 → 180명 → 21명’으로 줄어드는 의사결정 구조라고 볼 순 없다. 온라인 의견수렴과 국참위 숙의, 현장토론은 성격과 목적이 다른 의견수렴 절차다.
국참위는 자문기구이고 최종적인 국가교육발전계획과 주요 교육정책에 관한 심의·의결은 국교위 권한이다. 따라서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몇 명의 의견이 더 많은가가 아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모은 의견에 국교위가 각각 어떤 무게를 부여하고, 서로 충돌하는 의견은 어떤 기준으로 조정할 것인가다.
미래 대입제도, 누구의 판단으로 바꿀 것인가
숙의 결과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줬다. 180명이 정보를 접하고 서로 토론한다고 해서 한쪽으로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내신 서·논술형 확대에는 72.8%가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숙의 전보다 찬성 비율은 낮아졌다.
수능 서·논술형 역시 과반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숙의 뒤 찬성은 줄고 반대는 늘었다. 숙의는 ‘정답’을 찾는 절차라기보다 정보를 접하고 다른 의견을 들은 뒤 판단을 다시 해보는 과정이라는 점을 결과 자체가 보여준 셈이다.
이제 공은 국교위로 넘어간다. 학생에게는 서·논술형 평가가 실제 학습과 대입 준비를 어떻게 바꿀지가 중요하다. 학부모에게는 새로운 평가가 사교육과 정보격차를 키우지 않을지가 문제다. 교사에게는 출제와 채점, 이의제기를 감당할 평가체계를 만들 수 있는지가 남는다.
국가에는 대규모 수능에서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라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이 질문에 180명이 최종 답을 내린 건 아니다. 온라인에 의견을 낸 4122명이 결정한 것도 아니다.
국교위가 해야 할 일은 여러 방식으로 모은 국민 의견을 숫자로 합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구의 어떤 의견을 왜 정책에 반영했는지 설명하고, 그 판단에 책임지는 일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미래 대입제도를 둘러싼 질문은 ‘180명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4122명의 공개 의견과 180명의 숙의된 판단, 학생·학부모·교원의 현장 목소리를 거친 뒤 국교위는 무엇을 근거로 미래 대입제도를 결정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