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전영진 기자 | 정부가 이른바 ‘4세·7세 고시’를 막기 위한 시행령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2일, 서울의 한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에서 정부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추석 연휴 4세 대상 영어특강’ 광고를 버젓이 띄워 제도의 현장 안착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영어학원은 추석 연휴인 24일부터 27일까지 4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특강을 진행한다는 광고물을 공개했다.
공개된 4세 수업 홍보물에서는 ‘파닉스와 리딩 준비’, ‘복습과 부족한 부분 보완’, ‘다음 단계 수업 준비’ 등이 담겼다. 또 5~7세에게는 독해와 추론, 예측, 근거 찾기, 작문을 가르친다. 5~6세를 대상으로 한 한글 속성수업도 있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4세 아이들을 시험으로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이른바 ‘4세 고시’를 막겠다고 나섰지만, 새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사교육시장에선 네 살 아이의 학습 수준을 끌어올려 ‘다음 단계’를 준비시키는 상품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특강 자체가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개정 학원법과 시행령을 위반하는 건 아니다. 정부가 이번에 금지한 것은 유아 대상 인지학습 자체가 아니라 학원 모집과 분반을 위한 시험·평가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4세 고시’의 시험은 막았지만 네 살부터 시작되는 조기 학습경쟁까지 막은 건 아니라는 한계가 시행을 앞두고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4세 고시’ 금지, 10월 1일 시행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국무회의에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의결됨에 따라 개정 학원법과 시행령은 다음 달 1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이에 따라 학원과 교습소는 유아를 모집하거나 수준별로 반을 편성하기 위해 필기·구술·실기·면접 등의 시험을 실시할 수 없게 된다. 특정 능력을 검증한 외부 시험 결과 등을 활용하거나 모집·분반을 목적으로 유아의 특정 능력 수준을 서열화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학원에서 직접 시험을 치르지 않고 외부 시험 결과를 제출하도록 하는 우회적인 선발·분반까지 막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반하면 횟수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렇다고 유아의 학습 수준을 확인하는 모든 행위가 금지되는 건 아니다. 학원 등록 이후 실제 교육을 위해 아이의 상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경우엔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 관찰이나 면담 방식으로 진단할 수 있다.
정부가 이번 개정안을 통해 규제한 범위가 분명해지는 대목이다. 유아를 학원에 들어오게 할 것인지, 어느 수준의 반에 넣을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시험과 서열화’는 금지하지만 등록한 유아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학습관리는 별개 영역으로 남겨뒀다.
시험 막은 날 등장한 ‘4세 추석특강’
이번에 확인된 서울 소재 영어학원의 추석특강은 바로 이 경계선 밖에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공개한 광고에는 추석 연휴 동안 4~7세를 대상으로 연령과 학습 수준에 맞춰 영어특강을 진행한다고 안내돼 있다. 수업은 한 차례 45분씩 진행된다.
특히 4세 대상 프로그램은 파닉스와 리딩을 준비하고 기존 학습내용을 복습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후 ‘다음 단계 수업’을 준비하는 것도 수업 목표로 제시했다.
5~7세로 올라가면 독해를 바탕으로 추론과 예측을 하고, 글 속에서 근거를 찾아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까지 포함된다. 5~6세를 대상으로 한 한글 속성수업도 별도로 마련했다.
네 살부터 현재 학습 수준에 맞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다음 단계의 학습을 준비하는 구조인 셈이다. 학원 입학이나 분반을 위한 별도의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면 이번 시행령이 직접 금지하는 대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현재 확인된 건 서울 소재 학원 한 곳의 사례다. 같은 형태의 추석특강이 영유아 사교육시장 전반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일반화할 수 없으며, 해당 학원이 10월 시행되는 제도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특강을 개설했다고 볼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4세 고시’를 막겠다며 시행령을 의결한 바로 그날 네 살 아이의 파닉스와 리딩 실력을 보완해 ‘다음 단계’를 준비시키는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대책이 규율하는 범위와 실제 영유아 사교육시장의 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험’만 안 보면 되는 것인가
결국 관건은 정부가 막으려는 ‘4세 고시’의 본질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다. 네 살 아이에게 시험지를 풀게 하거나 면접을 보게 한 뒤 그 결과로 학원 입학 여부와 반을 결정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면 이번 학원법 개정은 직접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시험을 없애면 적어도 어린 유아를 점수와 평가결과로 선발·서열화하는 관행은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4세 고시’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배경엔 시험 그 자체뿐 아니라 취학 전부터 시작되는 조기 학습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더 높은 수준의 수업으로 올라가기 위해 미리 공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다시 다음 단계의 학습을 준비하는 구조다.
이번 추석특강 광고에 등장한 ‘부족한 부분 보완’과 ‘다음 단계 수업 준비’라는 표현이 눈길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선발시험의 문은 닫았지만 아이를 그 문 앞까지 끌어올리는 조기 학습경쟁까지 닫은 건 아니다.
시험과 면접이 사라지더라도 파닉스와 리딩을 먼저 익히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더 높은 수준의 수업을 준비하는 경쟁이 계속된다면 ‘4세 고시’의 형식은 사라져도 이를 만들어 낸 사교육 수요까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도 알고 있던 ‘빈칸’
정부도 시험·평가 규제만으로 영유아 사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4월 발표한 ‘아동 발달권 보호를 위한 영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에서 레벨테스트 금지와 함께 ‘유해교습행위 금지’와 과대·허위광고 규제 등을 별도의 제도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언어·수리 등 지식을 주입하기 위해 강사가 주도하는 인지교습의 경우 36개월 미만 영아에 대해서는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취학 전 유아에게도 하루 3시간·주 15시간을 넘는 장시간 인지교습을 제한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이 같은 유해교습행위 규제는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4세 고시’ 금지와는 별도의 입법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가 영유아 사교육 대책을 발표하면서 레벨테스트와 유해교습행위를 별도로 규제하겠다고 밝힌 것 자체가 시험 금지만으로는 조기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때문에 이번 시행령 시행 이후에도 네 살 아이를 대상으로 한 영어·한글 등 인지학습 자체는 계속될 수 있다.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취학 전 유아를 대상으로 한 선행·속성학습까지 함께 금지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통과 날 확인된 ‘정책과 현실의 거리’
결국 22일 정부와 사교육시장에서 동시에 벌어진 두 장면은 이번 대책이 앞으로 넘어야 할 벽을 보여준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유아를 시험으로 평가하고 서열화해 학원 입학과 분반에 활용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하지만 같은 날 서울의 한 영어학원에서는 네 살 아이의 파닉스와 리딩 실력을 보완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시키는 추석특강이 학부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학원이 법을 위반했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 정책의 허점을 의도적으로 노렸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오히려 현행 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4세 고시’를 낳은 조기 학습경쟁의 상당 부분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대책의 한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영유아의 교습시간을 제한하는 등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도 지난 4월 유해교습행위 규제를 후속 과제로 제시한 만큼 향후 영유아에게 허용할 인지교습의 내용과 시간을 어디까지 규율할지가 다음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훨씬 복잡해진다. 선발시험과 면접은 금지할 행위의 경계가 비교적 분명하지만 네 살 아이에게 파닉스를 몇 시간 가르치면 ‘과도한 교육’인지, 국가가 아동의 발달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부모의 교육 선택과 학원의 교습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4세 고시’를 막겠다며 내놓은 첫 번째 제도적 장치는 이제 시행을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점에도 사교육시장에서는 네 살 아이의 부족한 학습을 채우고 다음 단계로 올려보내는 상품이 버젓이 팔리고 있다.
시험만 없애면 ‘4세 고시’를 낳은 경쟁까지 사라질 수 있을까. 정부가 시험의 문은 닫았다. 이제 그 문 앞에 네 살 아이들을 줄 세우는 조기 학습경쟁을 어디까지 막을 것인지 답해야 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