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도 : AI가 인간 대신 답하고 생각하며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만든 문법 위에 서 있다. 교육은 다시 거대한 갈림길이다. 미래 세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더에듀는 10회에 걸쳐 학교의 뿌리부터 AI 시대 교육의 미래까지 추적한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의 다음 100년을 결정한다. /편집자 주]
더에듀 윤철순 기자 | 학생에게 보고서 과제가 주어졌다.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찾는다. 여러 자료를 비교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뒤 글로 제출해야 한다.
과거에는 적어도 며칠이 걸릴 일이었다. 이제 학생은 인공지능(AI)에게 주제를 입력한다. 개요를 만들고 자료를 정리해 달라고 한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쓰게 한다.
몇 분 뒤 제법 그럴듯한 보고서가 완성된다. 교사는 제출된 글을 읽는다. 논리적이다. 문장도 매끄럽다. 요구한 형식까지 갖췄다.
그런데 점수를 매기려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이 글을 쓴 학생은 정말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을까. 자료를 비교하고 결론을 내린 건 학생일까, AI일까.
교사는 지금 누구의 능력을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답안은 완성됐지만, 그 답안이 학생의 실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숙제를 잘했다고 잘 배운 건 아니었다
올해 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디지털 교육 전망 2026’은 AI 시대 교육의 문제를 명확하게 짚었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면 학생이 수행하는 과제의 완성도는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학습 성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AI가 학생 대신 사고 과정을 수행하면 결과물은 좋아져도 학생 자신의 능력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교육적 목적에 맞게 설계한 AI 도구는 학습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차이는 평가의 근본을 건드린다.
학교는 오랫동안 학생이 제출한 결과물을 통해 그 학생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해왔다. 수학 문제를 풀었다면 풀이 능력이 있다고 본다. 글을 썼다면 글쓰기 능력이 있다고 본다. 프로그램을 완성했다면 코딩 능력이 있다고 본다.
물론 교사는 그 과정에서 학생의 도움받기나 베끼기 가능성을 고려해왔다. 하지만 AI는 그 경계를 훨씬 넓혔다.
이제 결과물이 훌륭하다는 사실만으로 학생의 능력을 추정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AI를 이용한 모든 과제가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학생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AI가 제시한 여러 답을 검토하고 오류를 찾아 수정했다면 그 과정에도 분명 배움이 있다.
결국 평가가 물어야 할 것은 하나 더 늘어났다. 무엇을 만들어냈는가에 더해, 그 과정에서 학생은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
어디까지가 도움이고 어디부터가 대필인가
한 학생이 영어 보고서를 작성한다.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았다. 맞춤법 검사기를 이용했다. AI에게 문장을 자연스럽게 고쳐 달라고 했다. 이어서 보고서의 개요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마지막엔 본문 전체를 작성하게 했다.
어느 단계부터 부정행위일까.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학생도 혼란스럽고 교사도 판단하기 어렵다. 같은 AI 활용이라도 수업 목적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영어 문장 작성 능력을 평가하는 과제라면 AI가 문장을 대신 쓰는 건 평가목적을 훼손할 수 있다.
반대로 여러 자료를 분석해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과제라면, AI를 활용한 자료 정리와 초안 작성 자체가 평가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AI 사용 여부만이 아니다. 무엇을 평가하려는 과제인지에 따라 AI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교육부가 지난 8월 24일 대학의 효과적인 AI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대학 AI 활용 윤리 가이드라인’을 안내한 것도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다. 대학 교육에서 AI 사용을 학생 개인의 선택에만 맡길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는 과제를 내기 전에 기준을 알려줘야 한다. AI 사용을 허용하는가. 허용한다면 자료 탐색과 아이디어 정리까지인가, 초안 작성까지인가. 사용 사실과 범위를 밝혀야 하는가. 학생이 반드시 직접 수행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과제마다 목적이 다른데 모든 수업에 하나의 금지 규칙만 적용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완성된 글보다 그 글이 만들어진 경로
그렇다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학생이 처음 설정한 질문은 무엇이었는가. 어떤 자료를 선택하고 어떤 자료를 제외했는가. AI에게 무엇을 물었는가. AI가 제시한 답 가운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수정했는가. 최종 결론은 어떤 근거로 내렸는가.
이런 과정을 살피면 같은 보고서라도 학생이 수행한 일이 드러난다. 처음부터 완성된 글을 제출하게 하는 대신 주제 선정, 자료 검토, 초안, 수정본을 단계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중간에 교사가 질문을 던지고 학생이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게 할 수도 있다. 다만 과정 평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다. AI는 초안도 만들고 수정 과정도 만들어낼 수 있다. 학생이 제출한 대화 기록만으로 실제 학습 과정을 완벽하게 증명하기도 어렵다.
과정을 확인한다는 건 서류를 더 많이 제출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학생이 실제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 순간을 수업 안에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썼니?”라는 질문의 귀환
학생이 훌륭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교사가 묻는다. “이 자료를 선택한 이유가 뭐니?” 학생이 답한다. 교사는 반대되는 자료를 하나 보여준다. “그렇다면 네 결론은 달라질까?” 학생은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AI가 대신 작성한 문장을 외워서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질문이 바뀌고 새로운 조건이 주어지면 이해의 정도가 드러날 가능성이 커진다. 구술평가, 발표, 토론, 실습, 수업 중 글쓰기 등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새로운 평가 방식은 아니다. 다만 AI가 완성된 결과물을 너무 쉽게 만들어내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됐던 평가 방식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특히 AI를 사용할 수 있는 과제와 그렇지 않은 평가를 적절히 결합할 필요가 있다.
AI와 함께 자료를 분석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AI가 없는 상황에서 학생이 스스로 읽고 쓰고 계산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두 능력은 서로 대체되지 않는다.
OECD 역시 AI 시대 학습에서 기초적인 지식과 독립적 사고를 보존하면서, 교육적 목적에 맞게 AI를 활용하는 방향을 강조한다.
AI가 썼는지 AI에게 물어보면 될까
학교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응은 AI 탐지기다. 학생의 글을 프로그램에 넣으면 AI가 작성했을 가능성을 수치로 보여준다. 그런데 탐지기가 높은 확률을 표시했다고 곧바로 부정행위가 입증되는 건 아니다.
2023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당시 널리 사용되던 AI 탐지기 7개를 조사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토플(TOEFL) 에세이 91편을 검사한 결과, 평균 61.3%가 AI 작성물로 잘못 분류됐다.
연구진은 탐지기가 문장의 통계적 특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비원어민의 글을 AI 작성물로 오인할 위험을 지적했다. 이는 특정 시기의 탐지기와 영어 글쓰기 자료를 대상으로 한 결과다. 즉, 모든 최신 탐지기의 정확도나 한국어 글쓰기에서 같은 오판율이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는 분명한 경고다.
학생이 직접 쓴 글을 AI가 작성했다고 잘못 판단할 수 있다면, 탐지 결과만으로 징계하거나 성적을 불이익 처리하는 건 위험하다. 반대로 AI가 작성한 글도 표현을 수정하면 탐지를 피할 수 있다. 결국 탐지기는 의심을 확인하는 보조자료일 수는 있어도 학생의 부정행위를 확정하는 증거가 되긴 어렵다.
AI 사용 여부를 확인하려면 과제의 성격, 사전 안내된 기준, 학생의 설명, 실제 작성 과정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기계가 내놓은 확률로 학생의 정직성까지 판정할 수는 없다.
평가를 바꾸면 교사 일도 달라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학생 한 명의 보고서가 만들어진 과정을 확인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런데 한 학급의 학생이 서른 명이라면 어떨까. 과제마다 초안을 확인하고, AI 사용 범위를 살피고, 학생과 대화하고, 수정 과정까지 평가해야 한다.
교사의 시간은 한정돼 있다. 과정 중심 평가가 중요하다는 말만으로는 학교가 움직이지 않는다. 평가 기준을 설계할 시간, 학생과 대화할 시간, 결과를 기록할 시간부터 확보해야 한다.
AI가 이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평가 문항을 만들고, 학생의 답안에서 공통적인 오류를 찾아내고, 교사가 검토할 피드백 초안을 작성하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경계가 있다. OECD는 생성형 AI가 평가 문항과 채점 업무를 지원할 수 있지만 그 결과가 교육목표에 맞는지, 정확하고 공정한지 인간이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일반적인 지시문만으로 수행하는 자동채점은 신뢰성에 한계가 있어 교사의 판단을 대신하기보다 보완하는 수단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 AI로 답안을 작성한다. 교사는 AI로 답안을 평가한다. 그 결과를 학생이 다시 AI에게 분석하게 한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교사가 학생의 생각을 직접 확인할 기회까지 사라진다면 뭐가 남을까. 평가의 효율이 높아졌다는 사실과 교육의 질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다르다.
더 어려운 문제는 공정성
AI를 활용한 평가가 늘어날수록 학생 사이의 조건도 살펴야 한다. 누군가는 유료 AI 도구를 사용한다. 누군가는 무료 서비스만 이용한다. 어떤 학생은 AI에게 질문하는 방법을 잘 알고, 다른 학생은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부터 어렵다.
가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도도 다르다. AI 활용을 허용한 과제가 학생의 사고력보다 도구의 성능이나 가정의 지원 수준을 더 많이 반영한다면 새로운 평가 격차가 생길 수 있다.
반대로 AI 사용을 모두 금지하면 학교 밖에서 이미 AI를 활용하며 살아가는 현실과 평가가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공교육에는 두 가지 책임이 동시에 생긴다.
학생에게 AI를 올바르게 사용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AI를 사용할 수 없는 조건에서도 학생의 기초역량을 확인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건 어떤 학생에겐 AI를 허용하고 다른 학생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식의 임의적 운영을 피하는 것이다.
과제별 허용 범위와 평가 기준을 사전에 공개하고, 학생이 학교 안에서 필요한 도구와 사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가가 달라지려면 학생에게 주어지는 학습 기회부터 살펴야 한다.
정답을 찾는 능력에서 판단을 증명하는 능력으로
AI 시대에도 시험은 필요하다. 학생이 무엇을 배웠는지 확인하지 않는 교육은 방향을 잃기 쉽다. 다만 확인하는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수학에서는 답을 맞히는 것뿐 아니라 풀이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글쓰기에서는 완성된 문장뿐 아니라 주장을 세우고 자료를 판단하는 능력을 살펴야 한다.
AI 활용 과제에서는 결과물의 품질과 함께 AI가 내놓은 답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평가 목적에 따라 AI를 허용할 때와 허용하지 않을 때를 구분해야 한다. 이 모든 평가를 하나의 시험이나 과제로 해결할 수는 없다.
2025년 UNESCO가 공개한 AI 시대 평가 논의 역시 생성형 AI가 기존 평가 방식에 던진 질문을 다루며, 고차원적 사고와 창의성, 윤리적 판단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결국 학교가 확인해야 할 것은 학생이 얼마나 그럴듯한 답안을 제출했느냐만이 아니다. 그 학생이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스스로 해낼 수 있으며, AI와 함께할 때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두 능력을 구분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학은 여전히 같은 시험을 기다린다
여기까지 오면 또 하나의 벽이 나타난다. 학교가 평가를 바꾼다고 해보자. 수업 중 학생의 질문을 살피고, 수행 과정을 확인하고, AI를 활용한 문제해결 능력까지 평가한다. 그런데 학생이 대학에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할 시험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고등학교 교육이 새로운 능력을 길러내려 해도 대학입시가 다른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학교는 두 방향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과정 중심 평가를 확대하면 공정성과 비교 가능성의 문제가 따라온다. AI를 활용한 사고력을 평가하려 하면 도구 접근성과 학생 본인의 기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쟁점이 된다.
모두에게 같은 조건을 제공하는 국가시험은 이런 문제를 보완할 수 있지만, 그 시험이 측정할 수 있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은 교실 밖으로 향한다.
AI가 답을 만들어내는 시대에도 대한민국의 대학입시는 지금과 같은 능력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다음 회에서는 AI가 교실의 수업과 학습 환경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본다. 〈산업화 학교의 종말 ⑦〉의 주제는 ‘교과서에서 AI 에이전트까지, 교실이 바뀐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