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정치인이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히고, 다른 정치세력과 논쟁하고 때론 싸우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교육위원이라면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교육을 다루는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학교가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사와 학생의 교육활동이 정치의 잣대로 재단되기 시작하면 뭘 잃게 되는지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최근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에 이 영화의 학교 주관 단체관람 현황을 요구했다. 교육청은 다시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냈다. 일부 교육청은 관람한 학교가 없어도 ‘해당 없음’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결국 학교들은 국회에서 논란이 된 영화 한 편을 봤는지, 안 봤는지를 확인해 보고해야 했다. 왜 그걸 알아야 했을까. 학교가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영화를 강제로 보게 했다는 구체적인 문제가 확인됐나, 영화를 통해 특정 정치적 견해를 주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나. 아니면 교육과정을 현저히 벗어난 활동이라는 판단이라도 있었나. 그런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따져야 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부터 확인한 게 아니라 어느 학교가 영화를 봤
취재를 마치고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기간제교사의 ‘반복 마약검사’ 문제다. 마약류 중독자를 교단에 세워서는 안 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도 백번 이해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정규교사는 임용 때 검사를 받는다. 그런데 기간제교사는 계약이 끝나 다시 임용될 때마다 결격사유 확인 절차를 반복한다. 올해부터 검사 결과 유효기간마저 4개월로 짧아지면서 부담은 더 커졌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문제를 짚었다. 같은 학교에서 계속 근무하는 계약제교원에게 계약을 연장할 때마다 마약류 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건 고용형태만을 이유로 기준을 달리 적용하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교육부도 몰랐던 게 아니다. 반복검사 부담을 줄이려고 시행령 개정을 검토했다. 그러나 법제처 검토 과정에서 상위법인 교육공무원법에 막혔다. 교육부 설명대로라면 이제 국회가 법을 고쳐야 풀리는 문제다. 그래서 국회 교육위원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시원한 답은 듣지 못했다. 기간제교사들은 이미 지난해 국회 교육위원장실까지 찾아갔다. 법을 고쳐달라고 했다. 당시 위원장실에서도 교육부에 확인하고 교육위 간사실에 문제 해결 필요성을 전달했다. 그런데
국가교육위원회가 17일 ‘학교시민교육 기본원칙’을 확정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를 참고했다기에 무엇을 받아들였고, 한국 학교 현실을 반영해 어떤 걸 다르게 설계했는지 물으려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했다. ‘보도자료’에는 팀장과 담당자명, 전화번호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 담당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은 통화에서 대뜸 “기사를 쓰려는 건지, 단순 궁금증인지”를 되물었다. 그는 “기자가 연락하는 게 기사를 위한 취재 목적 말고 다른 게 뭐가 있겠냐”고 반문하자 한참 뜸을 들이더니 “기자 대응은 원칙적으로 과장(팀장)이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과장이 회의 중이니 나중에 다시 연락하라”는 황당한 반응을 드러냈다. 정책을 직접 담당하는 사무관이 보도자료 문의처에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공개해 놓고, 정작 정책을 물으니 팀장에게 물어보란다. 기자가 “그러면 왜 보도자료에 이름을 올렸냐”고 물었더니, 이번엔 “저도 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다른 목소리가 나가면 곤란하다”는 설명을 덧붙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얼마 전 교육부 취재 과정에서
"서면으로 답할 의무가 없다.” 대한민국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의 '5급 공무원' 입에서 나온 발언이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기자가 묻는 모든 질문에 공무원이 반드시 답해야 한다"는 법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교육부 공무원은 국민에게 정책을 설명할 의무도 없는가. 지난 2일 교육부에 '교원 정원 산정 구조'를 물었다. '비교과교사'의 정원이 교과교사 정원과 어떤 관계로 결정되는지, 비교과교사가 늘면 교과교사가 줄어드는 이른바 ‘제로섬’ 구조인지 등에 대해서다. 느닷없이 공문부터 들이민 것도 아니었다. 기자가 질의를 위해 교육부에 처음 연락했을 때 담당 공무원은 "대변인실에 문의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전화해 "장·차관 관련 대응이 아닌, 정책 답변은 실무부서에서 하면 된다고 한다"며 질의서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그러나 "답변이 늦어진다면 가능한 회신 일정이라도 알려달라"는 문구까지 덧붙인 질의서에 교육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기다리다 못해 재차 연락한 기자에게 담당자는 '보건은 이 부서, 사서는 저 부서, 상담은 또 다른 부서에 물어보라'는 식으로 떠넘기며 회피에 급급했다. 급기야
초등학생의 돌봄 공백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 수업시간을 늘리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최근 논란이 된 ‘초등 3시 하교’가 던진 질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 의견수렴 단계라고 밝혔다. 논의 자체는 필요하다. 문제는 출발점이다. 맞벌이 가정 등의 돌봄 공백과 초등 저학년의 짧은 정규 교육시간은 겹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문제는 아니다. 돌봄이 부족하다면 돌봄을 늘리는 게 먼저 떠오르는 해법이다. 교육시간이 부족하다면 왜 부족한지,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두 문제를 하나로 묶어 모든 학생의 정규 교육시간을 늘리려 한다면 설명이 필요하다. 수업을 늘리는 게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지, 교육적으로 지금보다 긴 수업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학교폭력도 비슷하다. 폭력에 대한 책임을 엄정하게 묻는 것과 학생 사이의 갈등을 교육적으로 풀어내는 건 다른 문제다. 처벌이 약한 것을 원인으로 보면 해법은 처벌 강화로 향한다. 관계를 조정하고 회복할 장치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라면 답은 달라진다. 교원의 아동학대 신고 문제도 마찬가지다. 신고 자체를 막는 게 해법일 순 없다. 실제 학대는 찾아내야 한다. 동시에
교육정책은 확정되기 전부터 움직인다. 문제는 ‘논의’가 어느 순간 ‘정책’이 되고, ‘추진’이 ‘확정’처럼 전달된다는 데 있다. 이번 주 교육계가 그랬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 논의가 이어졌고, 초등 저학년의 이른바 ‘3시 하교’가 다시 등장했다. 당정은 지방국립대 신입생 등록금 전액 지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세 사안의 진행 단계는 모두 다르다. 수능 서·논술형은 아직 확정된 제도가 아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미래 대입제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3시 하교’ 역시 정책포럼을 앞둔 논의 단계다. [더에듀]가 국교위에 직접 확인했을 때도 답은 분명했다. “확정된 건 전혀 없다.” 그런데 정책은 한번 제목이 붙으면 생명력을 얻는다. ‘논의’는 ‘검토’가 되고, ‘검토’는 ‘추진’으로 읽힌다. 몇 단계를 건너뛰면 어느새 시행을 앞둔 정책이 된다. 교육당국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책의 가능성을 먼저 꺼냈다면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무엇을 검토하는지뿐 아니라 무엇이 결정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정책의 속도만큼 설명의 속도도 빨라야 한다. 언론의 책임은 더 크다. 새로운 정책의 가능성은 좋은 뉴스가 된다
21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방식을 폐지하는 구체적인 개편안이 발표됐다. 54년을 이어온 제도를 뜯어고친다니 교육계가 발끈할 만하다. 학부모와 시민단체가 “교육재정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교육은 숫자가 아니고, 재정의 안정성은 교육의 질을 떠받치는 중요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논쟁을 ‘교육재정 사수’와 ‘재정권 빼앗기’의 프레임에만 가둬도 되는 걸까.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를 자동 배분하는 구조다. 이 제도는 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학생이 늘고 학교를 짓고 교원을 확충해야 했던 시대에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학령인구는 급감하고 있다. 학교는 남는데 학생이 사라지는 지역이 늘고 있다. 동시에 교육의 모습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AI와 디지털 전환, 기초학력, 특수교육, 다문화교육, 지역소멸, 대학 경쟁력, 평생교육, 영유아 교육, 국가 인재 유출까지 교육의 경계는 이미 학교 담장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1970년대의 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재정 공식’을 2026년에도 그대로 붙들고 있는 게 과연 ‘교육을 지키는 일’일까. 더구나 정부가 내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