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대입개혁은 늘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새로 넣을 것인가를 물었다. 선택형을 줄이고 서·논술형을 넣자고 하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자고 한다. 수능의 영향력을 줄였다가 공정성 논란이 커지면 다시 수능을 강화한다. 낡은 제도를 새로운 제도로 교체하면 학교교육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해 왔다. 그러나 평가방식을 바꾼다고 선발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능의 변별력을 낮춰도 같은 등급을 받은 학생이 대학 정원보다 많으면 대학은 다시 누군가를 떨어뜨려야 한다. 지원자가 정원보다 많고 추첨으로 선발하지 않는 한, 변별은 내신과 학생부, 면접과 대학별 논술 등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뿐이다. 수능의 선발 기능을 줄여도 경쟁은 다른 곳에서 계속된다. 새로운 평가가 추가되면 학교와 학원, 수험생은 그 규칙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서·논술형 수능 도입, 수능의 자격고사화, 내신 절대평가를 하나의 대입개혁 방향으로 추진한다면 이를 서로 무관한 낱개 의제로 제시해서는 안 된다. 수능과 내신의 변별 기능을 함께 낮춘 뒤에도 지원자가 대학 정원보다 많다면 핵심 질문은 하나다. 마지막 합격자를 어디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가를 것인가. 이 질문은 개별
더에듀 | 1875년, 프랑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앙리 드 보르니에(Henri de Bornier)는 그의 희곡 《롤랑의 딸(La Fille de Roland)》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대사를 남겼다.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개의 국가가 있다. 자신의 나라, 그리고 프랑스.”(Tout homme a deux pays : le sien et puis la France.) 자국이 곧 세계 지성과 예술의 중심이라는 자긍심 넘치는 이 한 문장은 오랫동안 프랑스가 자랑해 온 문화적 영향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를 반영하듯 자국 콘텐츠와 언어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 통상 협정에서도 ‘문화적 예외(Exception culturelle)’를 강조하고, 축구 경기마저 ‘아트 사커(Art Soccer)’라 부르며 예술의 칭호를 붙이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한마디로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는 나라가 프랑스인 것이다. 그런 예술의 본고장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문화계에서 최근 주목받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Hallyuwood’이다. 이는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뜻하는 ‘한류(Hallyu)’와 세계적인 영화산업의 대명사인 ‘할리우드(Hollywood)’를 결합한 표현
더에듀 | “엄마는 왜 엄마 잘못을 ‘인정’ 안 해?” 아들의 짜증이 도를 넘으면서 매일매일이 전쟁 같다는 엄마가 찾아왔다. 중2 아들이 말하는 엄마의 잘못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엄마는 억울하기까지 하단다. 아들은 엄마가 자기를 무시하면서도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단단히 화가 나 있었고, 이런 시간은 수년째 이어져 왔다. 그래도 엄마는 원인 모를 아들의 짜증 앞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 노력했지만, 아들은 진정성을 운운하며 분노의 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이 모자의 일상을 잠깐 들여다보자. 배가 고프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밥을 준비하던 중 엄마가 급한 전화를 먼저 받게 된 상황이다. “엄마는 아들보다 통화가 더 중요하지?” “엄마도 미룰 수 없는 전화인 걸 어떻게 해?” “엄마는 왜 엄마 잘못을 몰라?” “도대체 엄마가 뭘 잘못한 건데? 밥을 안 차려 주는 것도 아니고 잠깐 기다리면 될 것을!” 두 사람의 대화는 각자의 입장에서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아들이 잘잘못을 말할 때, 급한 전화를 받은 것을 왜 잘못이라고 하는지 엄마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두 사람이 놓친 건 사실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인정과 공감이었을 것이다. 아
"서면으로 답할 의무가 없다.” 대한민국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교육부의 '5급 공무원' 입에서 나온 발언이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기자가 묻는 모든 질문에 공무원이 반드시 답해야 한다"는 법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교육부 공무원은 국민에게 정책을 설명할 의무도 없는가. 지난 2일 교육부에 '교원 정원 산정 구조'를 물었다. '비교과교사'의 정원이 교과교사 정원과 어떤 관계로 결정되는지, 비교과교사가 늘면 교과교사가 줄어드는 이른바 ‘제로섬’ 구조인지 등에 대해서다. 느닷없이 공문부터 들이민 것도 아니었다. 기자가 질의를 위해 교육부에 처음 연락했을 때 담당 공무원은 "대변인실에 문의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전화해 "장·차관 관련 대응이 아닌, 정책 답변은 실무부서에서 하면 된다고 한다"며 질의서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그러나 "답변이 늦어진다면 가능한 회신 일정이라도 알려달라"는 문구까지 덧붙인 질의서에 교육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기다리다 못해 재차 연락한 기자에게 담당자는 '보건은 이 부서, 사서는 저 부서, 상담은 또 다른 부서에 물어보라'는 식으로 떠넘기며 회피에 급급했다. 급기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오후 3시까지 학교에 머물게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의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해 정규수업 시간을 늘리는 방식이다. 맞벌이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분명하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일찍 하교한 뒤 어디에서, 누구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는 오래된 사회적 문제다. 그러나 돌봄의 공백이 있다는 사실과 정규수업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결론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돌봄의 공백을 수업으로 메워야 하는가 초등 저학년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학교에 오래 머무는 시간이 아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놀고, 쉬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런 시간을 정규수업으로 채우는 것이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일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돌봄이 부족하다면 국가가 책임지고 돌봄체계를 확대해야 한다. 국가는 재정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 여건에 맞는 돌봄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돌봄 국가책임제가 아이들을 학교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과 돌봄은 모두 중요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수업시간을 늘리려면 왜 그만큼의 수업이 필요한지 교육적인 이유가 먼저
더에듀 | 아이가 말한다. “급식 남는 거 줄이는 일 할래.” 어른이 답한다. “그런 직업 없어.” 다른 아이가 말한다. “할머니들 스마트폰 알려 주는 사람.” 어른이 되묻는다. “그건 봉사지, 직업이 아니잖아.” 아이는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하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어른이 아는 이름 중에서 고른다. 그때 아이가 접은 것은 꿈이 아니다. 어른에게 말해 볼 마음이다. 목록은 어른이 살아온 시대의 것이다 어른이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이가 남들 다 아는 길에서 벗어나면 그 뒷감당이 내 몫이 될 것 같아서다. 그 불안이 아이가 고를 수 있는 목록을 좁힌다. 진로검사지에 뜨는 직업도, 진로체험의 날 부스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직업을 모아 놓은 것이다. 아이가 살아갈 시대가 아니라 어른이 살아온 시대의 목록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0년 발간한 ‘한국직업사전 통합본 제5판’에는 직업명 1만 6,891개가 실렸다. 2012년 제4판보다 5,236개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새로 등장한 신생 직업은 270개였고, 생산 중단과 디지털화로 종사자가 사라진 18개 직업은 사전에서 빠졌다. 그중에는 필름 영화에 수작업으로 자막을 넣던 ‘영화(필름)자막제작원’도
더에듀 | 대입개혁을 이야기할 때마다 경쟁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반복된다. 등급을 줄이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꾸고, 한 번의 시험이 갖는 영향력을 낮추고, 여러 자료를 통해 학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는 주장도 상당 부분 이 문제의식과 연결돼 있다. 대입개혁의 목표는 정말 경쟁을 줄이는 것인가. 원하는 사람보다 자리가 적으면 경쟁은 생긴다. 이것은 한국 대입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선호하는 대학이나 학과의 정원이 지원자보다 적다면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탈락해야 한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한 일정한 변별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입개혁에서 다뤄야 할 것은 경쟁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어떤 경쟁과 변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과 대가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에 더 가깝다. 경쟁 완화는 목표인가, 수단인가 경쟁이 과열돼 학생의 학습을 왜곡하고 과도한 사교육을 유발한다면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쟁 완화는 대입의 최종목표라기보다 더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며 학교교육을 덜 훼손하는 선발을 만들기 위해 필요할 경우 선택하는 조건부 정책목표에 가깝다. 미래가 왔다고 선발의 희소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교육의 변화가 곧
더에듀 | 교사가 시험문제를 팔아 돈을 챙겼다. 그것도 학생을 가르치고 평가해야 할 현직 교사들이 사교육업체 등에 문항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문수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교육업체 등에 문항을 판매해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징계를 받은 교원은 126명이다. 이 가운데 18명은 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26명. 전체 교원 규모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한 줌’도 안 된다. 절대다수 교사는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이들의 일탈을 교직사회 전체의 도덕성 문제로 확대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숫자가 작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도 아니다. 교사가 파는 건 단순한 ‘문제 몇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문제에는 학생의 성취를 평가하고 진학과 미래를 가르는 교육의 공적 권한이 담겨 있다. 특히 사교육업체가 돈을 주고 현직 교사의 문항을 사들이는 시장이 형성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돈을 낼 수 있는 사교육시장과 학교 평가를 둘러싼 공정성 사이에 의심의 틈이 생긴다. 특히, 학생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의 전문성과 공적 지위를 이용해 문제를 팔고 돈을 챙겼다
초등학생의 돌봄 공백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 수업시간을 늘리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최근 논란이 된 ‘초등 3시 하교’가 던진 질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확정된 정책이 아니라 의견수렴 단계라고 밝혔다. 논의 자체는 필요하다. 문제는 출발점이다. 맞벌이 가정 등의 돌봄 공백과 초등 저학년의 짧은 정규 교육시간은 겹칠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문제는 아니다. 돌봄이 부족하다면 돌봄을 늘리는 게 먼저 떠오르는 해법이다. 교육시간이 부족하다면 왜 부족한지,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하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두 문제를 하나로 묶어 모든 학생의 정규 교육시간을 늘리려 한다면 설명이 필요하다. 수업을 늘리는 게 돌봄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지, 교육적으로 지금보다 긴 수업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학교폭력도 비슷하다. 폭력에 대한 책임을 엄정하게 묻는 것과 학생 사이의 갈등을 교육적으로 풀어내는 건 다른 문제다. 처벌이 약한 것을 원인으로 보면 해법은 처벌 강화로 향한다. 관계를 조정하고 회복할 장치가 부족한 것도 원인이라면 답은 달라진다. 교원의 아동학대 신고 문제도 마찬가지다. 신고 자체를 막는 게 해법일 순 없다. 실제 학대는 찾아내야 한다. 동시에
더에듀 | 숙제를 하다가 막히면 요즘 학생들은 어떻게 할까. 예전에는 참고서를 뒤지거나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꺼내 AI에게 묻는다.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이 나온다. 편리하다. 그런데 그 편리함 뒤에 무언가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은 없는가. 앞선 칼럼에서 필자는 이를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이라 불렀다. AI가 내놓은 답을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통째로 넘겨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학교 교실은 AI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교실에서 이미 지켜야 하는 AI 활용의 3대 기준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이미 학교 현장에 적용되는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두고 있다. 그 취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AI는 정답을 대신 써주는 ‘자판기’가 아니라, 학생의 탐구를 돕는 ‘보조적 도구’라는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이 담고 있는 세 가지 방향은 결국 학생의 사고력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가깝다. 하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의 과정을 남기는 일이다. AI가 써준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제출하는 것은 표절이나 부정행위가 될 수 있으며, 어떤 질문을 던졌고 AI의 답변 중 무엇을 취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