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손기서] 꼴찌에게도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 등록 2026.0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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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 우리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며

 

더에듀 | “꼴찌라도 괜찮다, 꿈은 절대 포기하지 말아라.”

 

1978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의 방황과 아픔을 기억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축농증 진단을 받았으나, 당시에는 성장기라는 이유로 수술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두통이 심해져 결국 서울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고, 3주 후 학교로 복귀했습니다. 복귀하자마자 기말고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병결 시 평가 대체가 가능한 제도가 없던 1970년대에는 무조건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3주간의 학습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친구들 노트를 빌려 공부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3일차 체육 과목부터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시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들 가운데 꾸지람을 주시는 분도 계셨지만,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는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포기한 과목은 모두 0점 처리되어 62명 중 62등. 학급과 전교에서 꼴찌가 되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내신이 무너졌고, 제 인생에서 처음 맞는 큰 좌절이 찾아왔습니다.

 

전학을 시도하기 위해 누님과 함께 외삼촌이 계신 평택으로 찾아가 상담도 했지만, 해결책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휴학을 선택했고, 고향 당진 집에서 6개월을 보내며 깊은 고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시 복학했을 때 친구들은 이미 3학년이었지만, 저는 후배들과 지내야 했습니다. 선후배 규율이 엄격했던 시절이라 마음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학업에 몰입한 결과 다행히 2학년과 3학년의 내신과 학력고사 성적이 만족스럽게 나왔습니다.

 

욕심을 내 상향 지원을 했다가 대학 입시에 실패하는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두 번째 큰 좌절이었습니다. 이후 대학에 진학했을 때 친구들은 이미 3학년이 되어 있었고, 저는 또다시 후배들과 생활해야 했습니다. 여러모로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아픈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성적 고민, 학교생활 등에 관해 우리 아이들과 상담할 때, 그리고 학교를 경영할 때 제 경험을 토대로 꼴찌라도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격려해주면서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휴학을 통해 6개월 학교 밖 생활을 경험했던 기억은 조희연 서울교육감인수위원회 책임교육분과위원 활동 시 학업을 포기한 학교 밖 청소년을 이해하고 관련 정책에 반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을 때 위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방황은 길었고 시련은 깊었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꿈꾸는 자! 꿈은 이루어진다!

꿈꾸는 자!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독수리처럼 한계를 넘어 비상하길 소망합니다. 새해에 여러분의 꿈을 마음껏 펼치길 응원합니다.

손기서 전 서울 강서양천교육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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