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발의된 고등학생 대상 학원 교습시간 밤 10시에서 12시로 연장하는 조례 개정안을 접하고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학생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할 공적 기관인 서울시의회가 오히려 아이들의 건강권과 쉴 권리를 침해하고,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게 만들겠다는 발상은 ‘국가는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반인권적 조례이다.
현재 조례인 ‘초·중·고 학원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 허가’도 아동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상황에서, 규제를 완화하려는 시도는 ‘선택의 자유’라는 허구 아래 아이들을 입시 경쟁 속으로 더욱 깊이 몰아넣는 행위이다.
그동안 교육 현장에서 함께한 교육자로서, 이 조례안은 우리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공교육 시스템 자체를 더욱 파괴하는 야만적 정책임을 강하게 주장한다.
사교육 심화: 공교육 붕괴와 미래 역량 말살
현재 대한민국의 사교육 실태는 이미 너무나 심각하며, 특히 서울이 가장 심각하다.
2024년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액은 약 29조 2000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학생들의 참여율은 80.0%에 달했다.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평균 사교육비는 59만 2000원으로 전년 대비 7.2% 증가했다.
전체 학생 수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사교육 규모가 커지는 것은 공교육과 무관하게 사교육은 자체의 논리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사교육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처럼 몰아가기 때문이다. 이는 공교육에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사교육이라는 ‘괴물’이 공교육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다.
첫째, 학교 수업 시간에 악영향을 미치고 수동적 학습 태도를 만든다.
밤 12시까지의 학원 교습은 다음 날 공교육 현장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쳐 학교 교육의 질을 치명적으로 하락시킨다.
수면 부족 상태로 등교한 고등학생들은 오전 수업 시간 내내 피로와 졸음을 호소한다. 이는 학교 수업의 기본적인 집중 환경을 와해시키고, 교사가 아무리 양질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려 해도 학생들의 학습 의지를 꺾는다.
둘째, 이로 인해 교사의 역할 수행 불가능해진다.
UNESCO와 OECD가 요구하는 미래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의 협력적 행위 주도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교실에서는 어떠한 미래지향적 학습 활동도 설계될 수 없으며, 이는 교사들에게 ‘학생을 가르칠 수 없다’는 좌절감을 주고 교육 현장의 사기와 기능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셋째,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말살하고 있다.
고도의 기술과 인공지능이 일상화될 미래 사회는 UNESCO와 OECD가 강조하듯 협동, 연대, 비판적 문해력, 변혁적 역량을 요구한다.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주입식, 경쟁 중심의 학원 수업은 이러한 미래 역량 대신, 단편적인 지식 암기와 개인 경쟁만을 주입하여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와 협력과 공동체성을 파괴한다.
넷째, 사교육은 공교육의 기능 약화와 공교육 붕괴를 가속화한다
학교 수업이 학원의 선행 및 반복 학습에 종속되면서, 학교 교육의 가치는 급락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지식을 창조하고 탐구하는 주체가 아니라, 이미 배운 내용을 ‘확인’하거나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는 수동적 학습자로 전락한다. 학교는 평가기관으로만 작용하는 실정이다. 이는 공교육의 책임 경영과 교육 내용의 자주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다섯째, 사교육 심화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한다.
막대한 사교육비는 계층 간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주범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곧 자녀의 학력이라는 공식을 공고히 하며, 사회적 이동 사다리를 걷어차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수면권과 행복추구권’ 침해는 명백한 행정적 아동학대
학원 교습 시간 연장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닌,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는 반교육적 행위로 아동의 건강권과 전인적 성장을 더 침해하게 된다.
청소년의 적정 수면 시간은 최소 8~10시간이다. 수면 부족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 악화는 물론, 학습 효율의 극심한 저하를 초래한다.
학생들은 공부 외에도 문예체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활동과 동아리 활동을 통해 비로소 전인적으로 성장하며 사회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현재의 밤 10시 가능 조례가 이미 학생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데, 이를 더 연장하려는 서울시의회의 시도는 교육 행정이 학생들이 아닌 사교육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의심을 확인해 준다. 이 조례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반하는 것으로 학생들의 휴식과 여가를 위한 시간을 강제로 박탈하고,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행복추구권을 짓밟는 명백한 행정적 아동학대이다.
이 조례안으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명확하게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밤 12시까지 학원 운영시간을 연장하는 서울시의회 조례안에 청소년 95%가 반대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토끼풀>이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온라인 조사에는 청소년 2655명이 참여했는데, 중학생이 약 32%, 고등학생이 약 64%였다. 한 고등학생은 “학원 운영시간이 연장된다면 공교육 집중도도 떨어지고 사교육 의존이 더더욱 심해진다, 교육 현실을 직접 검증해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은 입시 경쟁의 논리 뒤에 숨겨진 자신들의 기본적인 권리 침해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다.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 등도 이 조례안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침해하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며 즉각 페기할 것을 요구했다.
교습 시간 연장이 학업 성취도 향상이라는 미명 아래 청소년의 쉴 권리, 놀 권리, 그리고 사회에 참여할 권리를 빼앗는 행위이며, ‘아동·청소년은 성인과 마찬가지로 노동권에 준하는 휴식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고등학생은 이미 밤 10시까지의 학원 스케줄만으로도 심각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한다.
“밤 12시까지 학원에 다니면 언제 쉬라는 건가요?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다 하고 나면 새벽 1시가 넘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숨 쉴 시간이 부족합니다”라는 학생들의 절규는, 이 조례안이 아이들을 오직 입시 기계로만 취급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청소년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설계하고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학습 이외의 여백과 자유로운 시간이 필수적이다.
이 조례에 대해 서울교육청은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상 유지 차원의 ‘소극적 입장문’은 서울교육을 총괄하여 책임지는 행정기관의 역할로 볼 때 아쉬움이 크다.
서울교육청은 입장문을 통해 “학생들이 이미 하루 9시간의 공교육을 받고 있으며, 현행 오후 10시까지의 학원 교습만으로도 하루 13시간의 학습이 가능해 학습권은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13시간은 이미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이중 점심, 저녁 시간 2시간을 제외해도 학생들은 매일 11시간을 학습에 매여있다. 이를 주 5일 평일만 기준으로 계산해도 주 55시간이다. 이는 성인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정 최대 노동 시간인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수치이다.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보호해야 할 교육청이 스스로 성인의 과로 기준보다 높은 ‘과로 학습 시간’에 대해 ‘충분한 학습권 보장’이라는 소극적 대응의 입장문을 낸 것이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학생자치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가 학원 수업인 상황에서 교육청은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최소한 노동권에 준하는 학원 교습 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적극적 대응의 입장문을 내는 것이 맞다.
교육행정은 ‘진짜 교육’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교육행정과 교육적 리더십의 역할은 아이들의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보장하고, 공교육의 자율성을 회복시키며, 획일적인 경쟁 구조로부터 학교를 보호하는 데 있다.
진짜 교육은 아이들의 시간을 24시간 경쟁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다.
서울시의회는 사교육 업체의 이해관계나 잘못된 교육관에 끌려다니거나 일조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와 공교육 정상화라는 시대적 책무 앞에 서야 한다. 이 비상식적인 고등학생 대상 학원 교습 밤12시까지 연장 조례 개정안은 논의를 중단하고 즉각 폐기되어야 하며, 오히려 현행 밤 10시 규제마저 학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앞당기는 것을 논의해야 할 때이다.
학생들이 행복하게 잠자고, 학교에서 깨어 배울 수 있는 건강한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시대의 ‘진짜 교육’을 만드는 기본 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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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남 = 강원도의 농부 집안에서 7녀 1남 중 3녀로 태어났다. 춘천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에 진학했으나 광주학살을 접하고 교육에 배신감을 느꼈고 학생운동에 뛰어 들었다. 이후 서울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2000년 마침내 과학교사로 임용된다.
2011년 서울 오류중학교에서 혁신부장을 맡아 혁신학교 시스템과 문화를 구축했으며, 2019년에는 오류중학교 공모교장이 된다. 2024년 2월 서울남부교육지원청 교육지원국장으로 명퇴하며 그는 “정치적 천민에서 탈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후 같은 해 8월 서울교육감 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등록, 민주진보진영 단일 후보 최종 경선까지 치렀으나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현재 '다같이배움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교육혁신을 주제로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석사를, 교육정책전문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과학 톡톡 카페(공저, 2009),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학교혁명(공저, 2018), 교장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2024) 등이 있다.
홍제남 소장은 <더에듀> 연재를 결심하며 “교육자로서 24년의 시간을 보내며 학생, 동료교사와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며 ”이 중 ‘교육다운 교육’, ‘진짜 교육’을 만드는 일을 학교 차원에서 집단지성으로 실천한 혁신학교 실천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학생, 교사, 보호자, 지역사회가 온전한 교육 주체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실천했다"고 평했다.
또 “과학교사, 교장, 장학관, 연구자로 현장에 뿌리내리고 실천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교육자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은 교육이 교육의 논리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정치적 이해집단의 논리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짧은 몇 년의 모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라며 “교육의 지향과 목적,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교육을 위해 해야 할 일, 그 결과로 학생들은 교육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같이 길을 찾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