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이병학] 흔들리는 공교육 그리고 학부모

  • 등록 2026.01.09 21: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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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교육 주권 회복과 학교 전문성의 재정립이 필요

 

더에듀 |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 현장은 유례없는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 악성 민원, 성적을 둘러싼 갈등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공교육 위기의 해법으로 제도 개선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제도는 중요합니다만 현장에서 오랫동안 체감해 온 공교육 위기의 뿌리는, 제도 이전에 학교와 가정의 관계가 흐려진 데에 있습니다.

 

공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이 서로의 역할과 경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학부모는 학생 교육의 ‘소비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교육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해야 하며, 학교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공적 교육기관으로서의 전문성을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학교 현장은 갈등과 불신 속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많은 학부모께서 자녀 교육에 대해 높은 열의를 보이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열의가 자녀의 ‘성장’보다는 ‘결과’와 ‘즉각적인 만족’에 치우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모로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다만 그 마음이 지나쳐 학교의 정당한 지도와 교육적 개입까지 가로막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이는 아이의 성장을 돕기보다 오히려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갈등을 겪고, 실패를 경험하며, 그 과정을 스스로 극복해 나갈 때 비로소 성장합니다. 부모가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편안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아이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회복 탄력성과 책임감을 기를 기회를 줄여버릴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자녀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학교는 국가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공동체 생활의 규칙과 배움의 과정을 안내하는 공적 기관입니다. 반면, 기본적인 예절과 배려, 타인을 대하는 태도, 삶의 자세는 가정에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통해 형성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인생의 첫 번째 스승이죠.

 

가정에서 부모의 교육적 역할이 약화할수록, 아이들은 권위와 질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을 자연스럽게 배우기 어려워집니다. 학교에 민원을 제기하기에 앞서, 우리 아이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법을 가정에서 충분히 배웠는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공교육 정상화의 출발점은 학부모 역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모는 내 아이에 대한 교육 주권을 분명히 인식하되, 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교사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 자녀 교육의 최종 책임과 주체는 부모 자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자녀 교육을 전적으로 학교에 맡긴 상태에서, 학교에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건강한 교육 관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이러한 인식은 분명합니다. 미국의 학부모들이 학교 상담 자리에서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입니다. 이는 자녀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이 학교가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임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둘째, 학교와 교사의 전문성을 신뢰해야 합니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학생의 변화를 관찰하며, 교육적으로 판단하는 전문가입니다. 개인의 요구가 공적인 교육과정을 흔들 때, 그 피해는 결국 학생 전체에게 돌아갑니다. 동시에 교사들 역시 전문성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셋째, 감정적 대응이 아닌 교육적 소통이 필요합니다.

 

불만이나 문제 제기가 있을 경우에는 공식적인 절차와 창구를 통해 합리적으로 제안해야 합니다. 감정적인 분출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교사의 교육 의지를 위축시키고 학교 전체의 교육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넷째,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합니다.

 

교육의 목적은 아이가 부모로부터 점진적으로 독립해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다소 힘들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부모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학부모가 학교를 불신하고 교사를 공격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가 배움과 교육에 대해 존중의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공교육 정상화는 제도 하나를 바꾼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정에서의 역할이 회복되고, 학교의 전문성이 존중받으며, 학부모가 교육의 긍정적인 파트너로 참여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교육의 미래는 새로운 구호나 일시적인 처방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회복할 때 비로소 열릴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교육 현장과 교육 행정을 지켜보며, 이 원칙이 흔들릴 때마다 학교와 아이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그 어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학부모 여러분의 성숙한 인식과 참여, 그리고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입니다. 순간의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들의 내일을 위한 선택인지 우리 어른들이 함께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공교육 혁신의 출발점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이러한 성찰과 책임 있는 논의에서 시작됩니다.

이병학 충남교육혁신연구소장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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