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사 이야기] 다시, 바스러지다 - 제주 교사 사망 사건에 부쳐

  • 등록 2025.05.27 2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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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다시 바스러졌다. 한 목숨이 또 사그라졌다.

 

제주도에 자리 잡은 한 중학교. 이 중학교 교사 ㄱ씨는 ㄴ군의 지속된 문제행동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아프다며 학교를 나오지 않으려 하자 “병원 갔다가 학교 오라”는 ㄱ선생님의 그 단순한 카톡 속에서, 무뚝뚝하지만, 아이를 생각하는 살뜰한 마음이 느껴졌다.

 

무단 결석을 피하고자 ㄴ군에게 진료서 등 증빙서류를 가져올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아직 중3인 ㄴ군은 담배도 피웠다. ㄱ교사는 흡연 지도도 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배려 섞인 지도가 ㄴ군 누나에게 왜, 어떻게 다가왔길래 그런 것일까.

 

“아이가 ㄱ교사 때문에 학교를 가기 싫어한다.”, “ㄴ군에게 폭언을 했느냐”라는 취지로 ㄴ군 누나는 항의했다.

 

ㄱ교사는 5월 18일까지 줄곧 민원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화는 더욱 빗발쳤다.

 

하루에만 12통의 전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오전 6시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반 학생 누나와의 통화 기록이 교사 ㄱ씨의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급기야 ㄴ군 가족은 제주교육청 홈페이지에 ‘ㄱ교사가 학생을 상대로 언어 폭력을 저질렀다’라는 민원도 넣었다.

 

ㄴ군 가족과의 갈등을 학교에 굳이 알리지 않았던 ㄱ교사는 ‘어쩌면 이 민원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한층 더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내용은 ㄱ교사 유족 측의 설명이기는 하다. ㄴ군과 그 가족들도 나름의 입장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모르는 사연도 있을 수 있다.

 

나는 한쪽 얘기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그게 온전히 사실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평소의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는 차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ㄱ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 또한 밤늦게까지 학부모의 항의성 전화를 받으며 낑낑거렸던 악몽이 되살아났고, 문제행동을 보인 아이에게 그래도 애썼던 내 마음을 송두리째 무시했던 한 학부모의 말과 표정이 떠올랐다.

 

제주 교사 ㄱ씨의 이야기는 곧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떤 직업이 퇴근하고 나서 자정까지, 그것도 개인 번호로 민원 전화를 감당해야 한단 말인가.

 

학부모의 민원 전화는 여타 다른 직종에서 받는 민원 전화와는 다르다.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지만, 다른 직종의 민원 전화는 민원인과 마음을 나눌 필요도, 깊은 신뢰를 쌓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교사의 민원 전화는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 아이와 연결돼 있다 보니 신뢰 관계를 쌓아야 하고, 마음과 마음이 닿아야 한다. 그 관계가 무너졌을 때, 그리고 괴물 학부모가 ‘아동학대’라는 무기를 꺼낼 때, 교사는 무너진다.

 

ㄱ교사의 아내는 “학생이 ‘ㄱ교사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다’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해당 학생 가족은 남편의 설명을 전혀 믿지 않은 채, 개인 휴대전화로 지속적인 전화를 걸어 ‘아동학대’라는 취지의 민원을 제기했다”라고 전했다.

 

‘아동학대’라는 칼에 찔렸다. ㄱ교사는 무너졌다. 서이초 박 선생님이 그랬듯이, ㄱ교사도 자신이 죽을 장소로 학교를 택했다.

 

학교에서 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이제 모두 안다.

 

허망하다. 언제쯤 우리는 안전해질 수 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위 글은 실천교육교사모임 홈페이지의 실천아레나를 요약 및 재구성한 것입니다.

곽노근 경기 문산초 교사/ 실천교육교사모임 정책지원팀 te@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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