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실천교육교사모임은 현장교사들을 주축으로 현장에서 겪는 다양한 교육 문제들을 던져왔다. 이들의 시선에 현재 교육은 어떠한 한계와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때론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시선을 연재한다. |

교사단이 뭔데?
“70년 전의 선생이나 70년 후의 선생이나 다 같은 교사단이다.”
조재호 선생님 덕분에 접하게 된 일본 교육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교사단을 가리켜 이런 말을 남겼다. 이 격언은 교사라는 존재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는 교육을 단일한 시점에서 이뤄지는 개인의 활동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동의 실천으로 보았다.
교사는 고립된 전문가가 아닌, 학생 한 명의 성장을 위해 느슨하지만 끈끈하게 협력하는 연대체다. 마치 한 아이를 여러 어른이 키우는 것처럼, 교육은 수많은 교사가 이어가는 공동 작업이며, ‘교사단’은 그 연대의 실천적 단위라 할 수 있다.
전학공은 교사단 실현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개념은 단순한 이론적 비유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 교육 현장에는 이미 ‘교사단’의 정신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가 존재한다. 바로 전문적 학습 공동체(전학공)이다.
전학공은 교사들이 함께 수업을 연구하고, 교육 문제를 나누며 상호 성찰과 협업을 통해 전문성을 키워가는 공동의 학습 구조이다. 겉보기에 이는 그저 하나의 학교 안 활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교사의 고립을 깨고, 함께 가르치는 문화를 실천하려는 나름대로 깊은 의도가 깃들어 있다.
다시 말해, 전학공은 오늘날 학교 안에서 교사단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통로이다.
커피 타임과 페이퍼 컴퍼니 사이
하지만, 교사단의 이상이 전학공이라는 틀 안에서 구현되고 있는가? 경험적으로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내가 근무했던 어느 학교에서도 전학공 팀이 운영됐다. 학년별로 팀을 꾸리고 월 1회 모임을 하기로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형식적인 주제를 정하고, 모임 사진 몇 장 찍고 나면 끝이었다. 각자 이야기는커녕 한 선생님의 개인사만 몇 시간 동안 듣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나는 일도 있었다.
어떤 모임은 바쁜 일정 속에 자료만 돌고, 책은 읽지 않은 채 보고서만 제출되기도 했다. 한두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전학공이 너무 싫었다. 요식행위라는 생각에 이런 정책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유체 이탈하고 싶지 않다. 나는 전학공이 ‘형식적인 주제를 정하고, 모임 사진 몇 장 찍고 나면 끝’인 요식행위로 운영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온 사람이다. 그리고 정말 깊은 마음속에서는 내가 앞으로 만나는 모든 전학공이 최대한 아무것도 안 하고 조용히 지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터. 홍경종 선생님이 스포츠클럽을 페이퍼 컴퍼니에 비유했듯이, 전학공 역시 못지않은 페이퍼 컴퍼니로 운영되는 곳이 상당하리라 본다. 아니 대부분이리라 본다.

교사단으로서 전학공이 되려면?
그렇다면 전학공이 ‘교사단’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첫째, 자율성과 흥미에 기반한 운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교사들이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로, 함께하고 싶은 동료들과 자발적으로 모여야 한다. 획일적인 팀 구성은 지속성을 해치고, 억지로 운영되는 모임은 교사들에게 또 다른 업무로 다가온다.
둘째, 문화도 무시할 수 없다.
타성적인 운영은 공동체의 생기를 앗아간다. 반대로, 안전하게 질문하고 실수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는 교사들의 배움과 성장에 강력한 촉매제가 된다.
셋째, 리더십이 존중받아야 한다.
자발적이고 열정 있는 교사가 리더를 맡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하며, 소위 총대를 멘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억지로 맡은 리더가 이끄는 모임은 생명력을 얻기 어렵다. 그런데 학교 현장의 내가 만나본 전학공 리더들은 100% 억지로 맡은 경우였다. |
정책은 어떻게 이를 뒷받침해야 하나
결국, 전학공이 교사단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와 정책의 뒷받침이 필수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간 확보이다.
지금도 많은 교사가 “업무가 너무 많아 전학공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많은 학교가 한 학기에 15시간을 전학공에 할애하고 있다. 이는 연속성 있는 연구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내가 한동안 머물렀던 학교는 전학공의 날이라든지 문화의 날이라든지 이런 특별한 날이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였다. 경험상 이러한 이벤트는 자연스레 교사들 간 교류를 촉진했다.
실질적 인센티브도 마련되어야 한다. 전학공 리더에게는 연수 기회, 연구비, 활동비 등을 제공하고, 전체 구성원에게는 참여에 따른 연수 인정시간을 파격적으로 부여하여 원격연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준다면 그나마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학공이 학교 울타리를 넘어 다른 학교, 지역, 전문가 집단과도 유기적으로 연결하도록 해야 한다.
지역 교육청이나 교원단체를 통해 학교 간 공동체 네트워크를 구축하거나 관심 주제별 콘퍼런스를 통해 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물론 원하는 선에서 말이다. 이는 우치다가 말한 ‘세대와 학교를 넘는 교사단’ 개념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맺음말
솔직히 전학공 시간이 적다고 글을 쓰는 데에 매우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이 글이 “그래? 그럼 전학공 시간 늘리면 되겠네”라든지, “뭐야, 전학공 시간 늘리자고? 지금도 제대로 운영이 안 되는데 또 할 일만 늘어나겠네”라는 식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는 이 글을 완전히 반대로 읽은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전학공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업무를 덜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실질적 운영의 기준도 현재 명문화된 것보다 더 높이길 권고하고 있다. 즉, 자율적이고 교사의 흥미에 맞는 공동 연구 기회에 대한 시간과 기회, 그리고 제도적 뒷받침을 전폭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전학공이 잘 운영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커피 타임이나 페이퍼 컴퍼니가 아닌 진짜 ‘교사단’으로의 초대가 될 수 있다.
수업을 함께 고민하고 학생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동료들이 모일 때, 교사는 고립된 교실에서 혼자 애쓰는 존재가 아니라 수백 명의 동료와 함께 가르치는 교육 집단이 된다.
김정훈 선생님의 말씀처럼 “고민과 어려움들을 어떻게 다른 교사들과 나누느냐에 따라 우리는 더 나은 교사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은 ‘사람’으로 같이 성장할 수도 있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전학공이라는 제도가 형식이 아닌 실천으로 채워지도록, 교사와 정책이 함께 손을 맞잡으면 어떨까. 김현규 선생님의 말씀대로 “고군분투와 각개격파는 이제 그만, 교사단으로 교육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 날이 온다면 ‘전학공의 날’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제발 좋아 보이는 것을 신중한 정책적 고찰 없이 전면적으로 도입하여 의무로 느끼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취지의 정책도 이렇게 부정적 인식이 가득해지니 아쉬움이 크다.

교사단과 교사 공동체에 관한 글들이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실천 아레나에 많이 쌓였다. 그 불씨를 살려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자 이 글을 썼다. 많은 분이 함께 이야기 나누면 더 좋겠다.
교사, 공동체, 교사단
교육권과 교사단(김현규)
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1662
우치다 타츠루의 교사단 개념과 티볼(조재호)
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3461
학교 내 교사 공동체, 그 연대의 힘(김지훈)
www.koreateachers.org/news/articleView.html?idxno=3919
# 위 글은 실천교육교사모임 홈페이지의 실천아레나를 요약 및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