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에듀 | 18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 소위 말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되어 교육감을 보좌하는 비서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반절 가량을 글쓰기란 업을 갖고 살아왔는데,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한동안 글쓰기를 멈췄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한구석에 공허함 그 비슷한 마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2월 호기롭게 시작한 이 다짐은 지금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일은 제 삶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

‘신형철, 은유, 무라카미 하루키 추천 “성경에 비견되는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우화”, 소설과 희곡 부문 양쪽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 손턴 와일더의 첫 번째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적힌 띠지에 눈길이 가서 골랐다.
누구에게나 첫사랑 같은 마음이 있듯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고생 때 첫사랑을 앓듯 가슴 졸이며 읽은 책의 작가여서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하루키의 팬이다.
하루키는 옴진리교 지하철 테러 사건을 다룬 ‘언더그라운드’를 쓸 때, 이 소설을 떠올리며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장 ‘어쩌면 우연'부터 마지막 장 ‘어쩌면 신의 의도’까지 작가가 공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인간은 어차피 죽음 앞에 유한한 존재이며,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는 우연히 살고 우연히 죽는 것일까,아니면 계획에 의해 살고계획에 의해 죽는 것일까.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첫 장/ 클레이하우스
살면서 마주한 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 사고를 접한 뒤,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이었고, 신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 끝에 닿아 내린 결론은 신이 만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서로 사랑하며, 주어진 현실 속에 덜 아파하고, 더 감사하며 살자는 것’이었다.
눈앞에서 13살 딸이 머랭 쿠키를 만들려고 믹싱볼에 달걀흰자의 거품을 낸다.
“팔 아파 죽겠네. 어휴, 거의 다 됐다” 하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한 앳된 딸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엄마 왜 웃어?”
“그냥 이뻐서”
쉬는 한낮의 오후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다 읽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이 내 인생의 아름다운 한 페이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소설과 희곡 부문 모두 퓰리처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여서 그런지 연극적인 요소가 군데군데 보여 읽는 재미가 난다.
‘손턴 와일더’ 작가 이름이 유독 눈에 익어 무슨 이유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무대에 섰던 첫 연극 <우리 읍내>의 극작가였던 것이다.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기 전 청년극장에서 어깨너머로 연기를 배울 때, 대본이란 것을 처음 만지작거렸던 기억, 어색하게 무대 의자에 앉아 있던 순간, 대사는 몇 마디 안 되지만 연극 분장이란 것을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극장 조명 아래 섰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한 권의 책은 잊고 있었던 인생의 한 부분을 소환한다.
‘잠시 멈춤’이라는 시간을 주고,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전공을 살리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대학 시절 연극에 열심히도 아니었지만, 젊은 시절 크고 작은 강렬한 기억들은 삶을 살아가는 데 극적인 요소가 되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우리는 곧 죽을 것이고, 그 다섯 명에 대한 모든 기억도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우리 자신도 한동안 사랑받다가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사랑이면 충분하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잊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p207
사랑, 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이 아닐까?
사랑이 원초적인 요소가 되어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을 잘 조절하며 살아야 할 텐데. 이 또한 쉽지 않은 것이 또 현실이다.
그래도 사랑, 사랑하며 살리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딸에게 집착하는 ‘몬테마요르 후작부인’과 자신이 키우다시피 한 여배우에게 집착하는 ‘피오 아저씨’의 사랑도 진짜 사랑일까? 사랑과 집착, 보상 심리 등 그 오묘한 경계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들. 어쨌거나 인간은 죽는다.
1714년 7월 20일 금요일 정오,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가 무너지며 다섯 명의 여행자가 그 아래의 골짜기로 추락했다. 이 다리는 리마와 쿠스코를 잇는 큰길에 놓여 있었고, 매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건넜다. -p.11
글 중간중간 명문장이 가슴에 꽂힌다.
이제 그는 사랑에 관한 돌이킬 수 없는 비밀을 발견했다. 가장 완벽한 사랑에서조차 한쪽이 다른 한쪽을 덜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p76
이 부분을 읽고 B에게 불쑥 물어볼 뻔했다. ‘내가 널 더 사랑할까? 네가 날 더 사랑할까?’라고 묻지 않고 소파에 누워있는 신랑을 곁눈질로 쏘아보기만 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SNS가 뜨겁다. 승리를 만끽하는 자와 조롱하는 자, 증오하는 자, 환호하는 자들의 감정이 마구마구 쏟아지고 있다.
반으로 쪼개진 국민의 마음이 하나가 되길 바라는 게 무리인가 싶다가도, 이들이 한 번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이다.
우리는 놀라운 수준의 훌륭한 것들이 존재하는 세계에 와서, 우리가 다시 경험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희미하게 기억한 채 살다가,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간다. -p124
